2023. 1. 9. 20:31ㆍ나의 이야기
톨레도를 돌아보고 무려 6시간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포르투갈의 파티마는 저녁 늦은 시간대로
가랑비가 내리고 벌써 어두워져 있었기에 호텔에서 늦은 식사를 한 후 야간 파티마 투어에
나가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파티마 성당은 묵었던 숙소에서 지근거리였던지라 종교인은 아니었지만,
건축물과 문화유적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있다 보니.....
광장 한쪽에는 베를린 장벽(Berlin Wall)이 있습니다.
성모마리아가 러시아(당시 소련)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고, 결국 독일이 통일되고 구 소련이
붕괴되는 등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에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놓았다고 합니다.
파티마 대성당 전경
파티마(포르투칼어 Fátima)는 1917년 종교적 환시가 발생한 장소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작은 소도시입니다.
포르투갈 중부의 오렝 자치구에 속해 있으며 메디우테주의 소지역입니다.
파티마는 포르투갈 중부 레이리아의 도심 밀집지역에 속한 산타렝 현에 있으며, 이는
포르투에서 남쪽으로 187km, 리스본 북부로부터 23km 거리에 해당합니다.
파티마의 성모(포르투칼어 Nossa Senhora de Fátima, 영어 Our Lady of Fatima)는 포르투갈의 의
산타렝 현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마을 파티미에서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나타났다는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칭호로 파티마의 성모는 1917년까지 매월 13일 여섯 번 나타났으며,
그녀가 처음 나타난 5월 13일은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세 명의 아이는 루치아 도스 산토스와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토, 히야친타 마르토입니다.
Monument to the Sacred Heart of Jesus
Basilica of the Most Holy Trinity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독교 역사상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래 455년 만의
비(非)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입니다.
동시에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이기도 하며 27년 가까이 재임한 그는
34년 동안 재임한 베드로와 31년 동안 재임한 교황 비오 9세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기간 동안 선진국에서는 가톨릭교회의 교세가
점차 기울어간 반면 제3세계에서는 확장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치세 전반에 걸쳐 여행을 가장 많이 한 교황으로
전임자들보다 100개 이상의 나라를 더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역사상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세계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모국어인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크로아티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라틴어라틴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도 알았습니다.
동유럽의 반공주의 운동을 지원하였고, 세계 평화와 반전을 호소하였으며, 생명윤리 등의 분야에서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도덕관을 제시하는 등 종교의 범위를 넘어 세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종교 간의 문제에는 시종일관 온건한 태도로 일관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2011년 5월 1일에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복 되었으며, 2014년 4월 27일에는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교황 요한 23세와 함께 공동 시성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재임 동안 482명을 시성 했는데 이는 지난 4세기 동안 시성된 성인들보다
더 많은 수치로 마더 테레사 수녀를 비롯해 1,338명을 시복 했는데 이 역시 지난 4세기 동안 탄생한
복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습니다.
1984년 한국에 가톨릭교회가 전래된 지 200년이 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순교자 103명을 시성하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두 차례 방한하였는데 1984년 5월 3일에 그는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식을 맞아 방문했으며,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103명을
바티칸이 아닌 현지에서 성인으로 시성하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도착 성명 첫머리에서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를
인용해 한국어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인사했고 마무리도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6세 동상
요한 바오로 6세는 교황 재위기간이 1963년 6월216월 21일–1678년 8월 6일로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엔리코 안토니오 마리아 모티니로 이탈리아 사람으로 교황 요한 23세의 유지를 이어받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쇄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또한 교황 비오 12세 이래 교회의 국제화를 계속 이어가도록 기초를 다졌으며 동방정교회와 개신교등
다른 노선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역사적 모임을 갖고 협정을 맺음으로써 기독교 교파 간의 일치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였습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폐막식에서(1964년 11월 21일), 바오로 6세는 마리아께서 만국 공의회와 교회를 축복해 주시며, 이 세상의 끝없는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도록 복되신 동정녀께 열렬히 기도하자고 말씀하시고, 이 천상 어머니께 전 인간 가족을 봉헌하셨습니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의 쇄신을 당부하셨으며 1967년 5월 13일, 코바 다이리아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하여, 바오로 6세는 파티마로 가서 기도와 평화의 순례를 하셨습니다.
그때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공경과 본받음에 대한 권고를 전 교회에서 보내셨는데,
이 권고의 제목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입니다.
여기서 교황은 교회의 어머니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에 대한 봉헌을
새롭게 하라고 모든 신자들에게 촉구하셨습니다.
Chapel of the Apparitions
파티마 성지순례의 시작과 끝은 성모 발현 예배당(The Chapel of Apparitions)으로
성모가 나타났던 자리에 만들어진 작은 예배당입니다.
대성당은 신고전주의 형식으로 세워진 거대한 건물로 대성당의 중심 탑은 65미터로
1928년 5월 13일에 건축하였으며, 측면에는 수도원과 병원 건물이 회랑으로 넓게
이어져 있습니다.
대성당의 묘소에는 스페인 독감으로 1919년과 1920년에 사망, 2000년에 시복 되고 2017년에
시성 된 히야친타와 프란시스쿠 마르투, 2005년 사망한 루시아 두스 산투스, 총 세 명의 성모
목격자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포르투갈 파티마의 유명한 성지인 대성당은 1917년 세 어린이가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름이 무엇이냐는 어린이들의 물음에 대해, 여인은 “나는 로사리오의 성모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는데 어린이들은 코바 다 이리아라고 불리는 목초 지대에서 성모발현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성모 순례지인 파티마는 많은 가톨릭 신자가 찾는 곳이며, 매년 파티마의 성모 발현 날짜인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길에 가득 찬 100만여 명의 순례자가 성지를 찾아온다고 합니다.
프란시스쿠, 야신 타 동상의 후면 건물은 Museum of the Sanctuary of Fatima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명의 아이 중 남매였던 프란시스쿠와 야신 타는 2~3년 뒤 스페인에서
유행했던 독감으로 인해 사망했고, 당시 제일 나이가 많았던 루치아는 수녀가 되어 코임브라
수녀원에서 생활하였다고 하는데 이후에도 루치아 앞에 성모의 예언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루치아는 2005년 2월 13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세 명의 시신은
파티마 성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현재 루치아는 성인으로 추대되는 심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루치아는 당시 자신이 목격한 성모의 모습에 대해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었는데 그 부인이 입은 옷은 반짝거리는 물이 채워진 수정 유리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을 쏟아내는
찬란한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부인이 입은 옷은 발밑에까지 늘어뜨려졌으며 그 경계 부분은 별들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나이는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며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의 빛으로 가득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듯한 슬픔도 배어 있었으며 가늘고 섬세한 그 부인의 손은 진주
같은 것으로 엮어진 묵주를 들고서 가슴 부분에서 서로 맞잡고 있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매일 미사가 열리는 작은 경당의 제전
작은 경당에 모셔진 로사리오 성모상
파티마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위한 큰 규모의 횃불 행렬 행사가 매일 저녁 9시마다
이루어진다고 하였지만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미사가 없었습니다.
미사가 있는 날은 코바에 모인 순례자들은 성모 마리아가 어린이들 앞에 나타났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작은 경당에서 길게 줄지어 행진한다고 합니다.
성모 순례지인 파티마는 많은 가톨릭 신자가 찾는 곳이며, 매년 파티마의 성모 발현 날짜인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길에 가득 찬 100만여 명의 순례자가 성지를 찾아온다고 합니다.
종교를 믿던 안 믿던지 간에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인 1917년, 세 명의 아이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파티마는 3명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무려 7만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성모 마리아를 목격했다고 하니 집단 종교적 환시인지, 기적인지 그 진위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로마 교황청이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그 장소에 ‘파티마 대성당’을 세우면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의 발길은 아직까지도 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교황청이 인정한 곳은 아니지만 성모발현지로 알려진 곳 중에 하나인 보스니아 해리체고리나의
메주고리에를 2017.9.12에 갔다 온 적이 있는데 참고하시면 좋으실 것 같아 올려드립니다.
https://kyh0221.tistory.com/2404#none
파티마 도시의 경제는 종교 관광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특히 파티마는 성지 순례 때
많은 신자가 찾아오며, 성지가 과거에 비해 큰 규모로 발전하였습니다.
수많은 상점과 노점에서 종교에 관련된 여러 종류의 상품을 팔고 있으며,
거리에는 호텔과 호스텔, 식당들도 많습니다.
파티마의 성물 판매점 전경
파티마에서 묵었던 산타마리아 호텔(4성급) 표지판
파티마 산타마리아 호텔 전경
포르투갈의 상징 수탉
포르투갈의 상징이자 많은 기념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설적인 바르셀로스 수탉
포르투갈의 바르셀로스 마을을 지나던 어느 순례자가 도둑으로 오해를 받아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순간, 마침 그때 어린 수탉 구이를 저녁으로 먹으려던 판사 앞에서 그 순례자는 자신의
무고함을 계속 주장하였는데 "만약 내가 죄가 없다면 저 죽은 닭이 꼬꼬댁하며 울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예상대로 그 죽은 수탉은 벌떡 일어나 울었고 이 이야기로 인하여 바르셀로스
수탉은 지금 까지도 포르투갈에서 정의와 운, 희망, 신념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산타마리아 호텔 내부 전시물
내일은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까보 다 로까로 향해서 그곳에서 일출을 볼 예정으로 있는데,
이곳은 현재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보니 내일은 날이 좋아 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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