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5. 12:13ㆍ나의 이야기
우측의 급수탑(Torre del agua)과 알람브라 궁전 출입문 전경
알람브라 궁전 안내도
알람브라 궁전 옛 해자의 흔적
급수탑 전경
알람브라(Alhambra)는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로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습니다.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 지역에서 머물던 아랍 군주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그라나다시의
남동쪽 경계에 있는데 현재에는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르네상스식 건물은 카를로스 1세 때 추가되었으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한국어로는 알람브라 궁전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지만 알함브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그냥 읽는 경우로
아랍어가 스페인어로 굳어져서 쓰이고 있는 Alhambra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에서 h가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따라서 한국어로 옮겼을 때 공식 명칭은 알함브라가 아닌 알람브라입니다.
전체 궁전은 해발 740m의 고원에 위치하는데 너비는 205m에 달하며 서북서,
동남동의 방향으로 건물이 뻗어 있으며 전체 면적은 142,000 m²입니다.
견고하게 쌓아진 벽이 있으며 주위에는 13개의 타워가 있고 다로 강이 흘러가며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그라나다 지역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아사비카 계곡이 있으며 주위에는 알람브라 공원이 남서 지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알람브라궁전은 무어인과 스페인 미술을 결합한 형태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나타나는데 당시
아랍 계열 인종의 거주가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이었으므로 알람브라 궁전은 안달루시아 지방
미술의 절정기 하반부를 장식합니다.
이슬람 왕국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었으므로 예술가의 창작 배경이 더욱 자극될 수 있었던 점도
알람브라 궁전 내의 독특하면서도 왕궁의 위엄을 드높인 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우아한 기둥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으며 종유석이 솟아 있는 듯이 외부가 이뤄져 있어
공기 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가미됩니다.
웅장한 아랍 문화의 유적이 새겨져 있으며 수많은 왕이 이곳을 거쳤는데 1492년 기독교 세력이
제정복하면서 정복자들이 궁전을 개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흰 빛깔의 도료로 바뀐 것도 이때 이뤄진 일로서 도금과 회화 작업도 이 시기에 추가되었고
기존의 가구는 개보수되거나 혹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카를로스 1세(1516-1556)는 당대 르네상스 양식으로 궁전의 건축 양식을 수정하는
한편 겨울 궁전을 허물어버렸습니다.
펠리페 5세(1700–1746)는 주위 전각과 내부 방을 이탈리아 식으로 바꾸는 한편 무어인의 양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완성도를 가미하였습니다.
수세기 동안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의 영향은 상당 부분 손상되었는데 1812년 프랑스의
세바스티앙 백작이 건물에 딸린 몇 개의 탑들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1821년 지진으로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가 복구는 1828년부터 이뤄져
183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페르난도 7세가 추진했던 이 계획은 이후 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을 무어인 출신의 시인들은 "에메랄드 속의 진주"라고 표현하였는데
건물의 반짝이는 광채와 고급스러운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여름에는 꽃과 잔디가 자라나며 대개 장미와 오렌지 나무 등
자민족이 좋아하는 작물을 많이 심었습니다.
그러나 1812년 웰링턴 공작이 영국산 느릅나무를 비롯한 다수의 종을 심게 되면서 궁전
주위에는 유럽산 지빠귀새인 나이팅게일이 노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별다른 관심 없이 많은 피해를 받았음에도 알람브라 궁전은 무어 예술의 극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곳으로 남아 있었는데 대부분의 건물은 폐쇄적인 건축을 지양하여 작은 전각도
중앙을 향해 드러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외부는 언덕의 굴곡을 없애어 평평하게 하도록 하였고 대신 내부에는
웅장함을 가미하기 위해 고도 차이를 이용하였습니다.
내부에는 대리석 기둥과 아치 형의 건물이 나타나기도 하며
투명하게 드러나는 천정도 볼거리입니다.
따라서 햇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통하고 전체 공간을 밝고 우아하게 하며 파란, 빨강,
금빛 노란색이 잘 어우러져 있어 시간과 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많은 건축가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예술 건축물로 동양의 타지마할과
서양의 알람브라 궁전을 꼽는데 둘 다 이슬람 건축물입니다.
시에나 산의 햇살을 받은 그라나다는 무척 환상적인 도시로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세련된 문화와 물질적 풍요로움이 어우러진 에스파냐의 고도(古都)입니다.
도시 한가운데를 다로 강이 동서로 가로지르고, 강 건너편 언덕은
알람브라 궁전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라나다를 알람브라의 도시라고 말한들 그 어느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이 그라나다에서 그것도 알람브라 궁전에서 벌어졌는데
1469년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면서 두 왕국은 합쳐졌고,
이는 알람브라를 정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에스파냐 군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마지막
이슬람 세력이던 나스르 왕조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1492년 새해 첫날밤, 마지막 왕 보압딜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궁전을 바치고 항복했습니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무렵, 에스파냐 병사들은 이곳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페르난도 5세의 약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습니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은 그렇게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그렇다고 무슬림들이 순순히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는데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처참한 역사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습니다.
그 피는 하얀 벽면을 붉게 물들였고, 아직도
군데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교가 이 땅을 휩쓴 지 이미 오래지만 알람브라 궁전은
여느 아랍 궁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랍어로 ‘붉은빛’이라는 뜻의 알람브라는, 겉으로 보면 붉은빛이 도는 견고한
돌조각을 쌓아 만든 밋밋하고 조악한 궁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축 양식이나 화려한 장식도 없어 큰 기대를 하고 온
관광객이라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실망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뀌는데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투박한 껍질 속에 숨은 화려한 알맹이’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사벨 여왕은 “내 생애보다 더 귀한 궁전에는
더 이상 손댈 게 없다.”며 그대로 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모스크를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지어 가톨릭의 상징적 승리를 충분히
새겨 두었기에 굳이 알람브라 궁전을 허물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후 카를 5세가 르네상스풍으로 투우 경기장 같은 왕궁을 세운 것을 제외하면 알함브라는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으로 그렇다고 카를 5세가 이 궁전을 싫어하거나
파괴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또한 알람브라 예찬론자로 “알함브라를 잃은 자여, 불쌍하도다. 알람브라를 버리는 삶을
택하느니 차라리 알람브라를 내 무덤으로 삼을 테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알람브라 궁전에
강한 애착을 보였고, 보압딜의 결정을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붉은 석양이 유난히 낮게 깔린 어느 날, 그라나다의 어느 무명 시인은
보압딜의 항복을 두고 목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불운한 왕이여!
죽을 용기가 없어 그라나다를 떠나는 못난 왕이여!
남아 있는 인생이 무어 그리 대단할진대 그까짓 왕관 하나 벗어던지지 못하고
그라나다를 떠나 가느뇨.
이슬람 왕궁이 함락된 1492년, 이사벨 여왕의 후광을 입은 탐험가 콜럼버스(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며 무적함대를 자랑하는 에스파냐의 전성시대가 막을 열었습니다.
한편 보압딜은 에스파냐에서 쫓겨나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는데 800년 전,
그의 선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을 거슬러 되돌아
간 것이지요.
그는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뒤 63세를 일기로 눈을 감을 때까지
꿈에도 알람브라를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초라한 페스궁전이 알함브라를 닮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고 합니다.
C. 레알 데 알람브라 코스 (C. Real de AlhaMbra)
성 프란시스 수녀원(Convento de San Francisco)
성 프란시스 수녀원(Convento de San Francisco)
호텔 아메리카(Hotel America Granada) 앞 전경
화신의 성모 마리아 교회 - 알람브라(Iglesia de Santa María de la Encarnación - Alhambra)
가톨릭 군주에 의해 중요한 모스크의 잔해 위에 건축하도록 명령받은 이 성당은 처음에는 기독교
성당으로 생각하였으나 결국 도시 중심부 아래에 건축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왕실 예배당이 건설되기 전에
그들의 유해가 잠시 이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찰스 5세 궁전으로 지금은 그라나다 미술관 (Museo de Bellas Artes de Granada)
(알람브라 성채의 르네상스궁전 임)
1층 원형광장 전경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전경
2층 회랑 전경
2층 회랑에서
1층 회랑 기둥에서
1층 원형 광장의 중심점 전경
찰스 5세 궁전 앞 광장에서 바라다본 나스르 궁전 전경
이번 여행에서 나스르 궁전은 외관만 보아야 했었기에 패키지여행 상품 선택 시 나스르궁전
관람 유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제 불찰은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서라도 마음속
한편엔 속이 쓰리기만 하였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도 제일 핵심으로 돌아보아야 할 장소임에도.....
※ 혹여 스페인 패키지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 계시면 이 궁전 관람 유무를
꼭 확인하시고 계약을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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