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5. 11:29ㆍ나의 이야기
혼인지 수면 위에 어린 수목들의 고운 반영
혼인지 마을 대로변의 안내판
혼인지는 온평리 마을의 일주 도로변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1,650㎡의 큰 연못과
남동쪽으로 약 50여 m 떨어진 곳의 작은 동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탐라[현재의 제주]의 개벽 신화에 등장하는 삼 신인이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결혼한 곳이며,
또한 바로 옆에 있는 3개의 입구를 가진 동굴은 결혼한 세 쌍의 부부가 결혼 첫날밤을
보낸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1971년 8월에 제주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혼인지는 2000년 이후에 대대적인 정비 사업을 통해
대형 현무암 표석[삼공주추원비(三公主追遠碑)]과 관람용 테크 등을 설치하여 제주도민과
관광객들의 편리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전통 혼례관을 비롯한 분수 광장, 정자, 생태 연못, 화장실 및 주차장(입장료 및 주차비 무료)
등을 부대시설로 갖추고 있습니다.
혼인지 관리사무소 전경
혼인지 안내도
혼인지마을 주차장 앞의 정자각
분수 광장
전통혼례관 전경
전통혼례관 식당
늦가을까지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수국
지금은 철이 지났지만 이 곳 혼인지를 수국 꽃이 만개할 때 찾아온다면
아주 환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철이 지나서 시들어 버렸지만 탐방로 주변 양옆으로 곱게 핀 수국 꽃길을 따라
걷는다는 상상을 해보면 아주 환상적이었을 거란 추측이......ㅎ
제주에는 이렇게 입장료와 주차비도 받지를 않는 좋은 곳들이 산재해 있는데 비싼 입장료를 주어가며
인파가 많은 사설관광지를 굳이 찾아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저는 당최 이해가 안 갑니다.
삼공주 추원사
지금부터 4300여 년 전 탐라를 창시한 삼을나 배필인 삼을 나비 벽랑국 삼공주의 위패가 보관된 묘사 전경으로
(2009년 12월 22일 준공) 매년 6월 10일에 추원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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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지( 婚姻池 )
제주시 삼성혈에서 솟아난 고·양·부(高梁夫 : 梁은 원래 良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순서가 良高夫로 적힌 문헌도 많음.) 세 신인이 동쪽나라에서 온 세 공주를
맞아들여 혼례를 올렸다는 못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세 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는데,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하여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와
이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돌함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돌함을 열었더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망아지와 오곡 씨앗이 들어 있었는데
이 세 여인은 벽랑국의 공주들로, 세 신인은 나이에 따라 세 공주를 맞아 혼인지에서
목욕하고 혼례식을 올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나무함이 발견된 곳은 온평리 바닷가 ‘쾌 성개’라 하며, 이것이 떠오른 곳을
‘황루알’이라 하고 세 처녀가 바닷가에서 처음 디뎠다는 발자국이 바위 위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못은 고대인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탈바꿈하는 과정과 씨족 형성의 실마리를
말하여주는 신화상의 근거로서 흥미를 지닌 곳입니다.
제주 삼성혈에서 솟아난 삼신인이 수렵을 하며 성산읍 온평리 경에 이르러 앞바다로부터
떠오는 석함을 발견하여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니 오통으로 석함이 떠 올라왔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사신이 말을 타고 세 처녀가 오곡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데리고 있었는데
사신이 먼저 말을 타고 내렸는데, 그 발자국을 성개라 하며, 삼신인은 세 처녀를 맞이하여
함께 ‘횐죽’에서 목욕을 하고 혼인식을 올렸습니다.
횐죽은 혼인지의 음이 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땅 속에서 솟아났다는 삼신인은 지중 용출(地中聳出) 모티프라 하며,
이는 비정상적 출생과 같은 신비감을 드러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배필인 바다 저편에서 떠 온 석함 속에서 나온 세 처녀 역시 도래인(渡來人) 모티프로,
이상향에서 들어온 신성한 인물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혼인은 신성한 인물의 혼인으로 신혼(神婚) 모티프에 해당하는데 따라서 이들이 들어오거나
남긴 발자국의 흔적들이 사건과 결합하여 유래담으로 전승되는 것은 신성성에서 출발한 것이며,
후에 전설화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혼인지는 탐라의 개벽 신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장소적 특징을 지닌 곳으로
삼성 신화의 주인공인 고을나, 양을나 및 부을나 등 삼 신인이 벽랑국에서 건너온 세 공주와
혼례를 치르고, 또 신혼 첫날밤을 보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온평리 해안에는 처음 세 공주가 도착했다는 쾌 성개[또는 화성 개]가 있습니다.
또한 온평리 환해장성 뒤쪽 바닷가를 ‘황루알’이라 부르는데, 이는 벽랑국 공주를 맞았을 때,
황금 노을이 내렸다 해서 ‘황루알’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지금도 ‘황루알’에는 삼 신인이
타고 다니던 말 발자국 흔적이 바위에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탐라의 개벽 신화, 즉 삼성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주시의 제주 삼성혈과 삼사석,
그리고 온평리의 쾌 성개[화성 개], 황루알과 혼인지 등을 같이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혼인지를 구성하는 연못은 아메바 형태의 얕은 수변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신방으로 사용했다는
작은 동굴[신방 굴]은 용암 동굴로 길이는 아주 짧은 편이고 입구가 3개로 정면에서 보면
3개의 방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좌보미오름을 돌아보고 오후 저녁 무렵에 찾은 혼인지 전경으로 저녁 햇살에 수면에 어린
거목들의 고운 반영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여행지는 그곳을 찾아보아야 할 중요한 시간대와 계절이 중요한데 제 생각에 이 곳 혼인지는
저녁 무렵에 찾아보는 것이 이런 고운 반영을 바라다볼 수 있기에 좋고, 절기상으로는
수국이 만개하는 여름철이 적기란 생각이 듭니다.
혼인지 내 신방 굴 전경
신방 구네에는 세 개의 작은 동굴이 있는데 이 세개의 동굴을 신혼방으로 탐라국의 삼성들이
벽랑국의 세 공주를 부인으로 맞아 동굴 신혼방에서 짝짝꿍을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원시 시대에는 이런 동굴식 주거 형태가 가장 초보적인 주거의 형태이다 보니
설화 치고는 그렇듯 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저도 모친이 제주 고씨이다 보니 저도 전혀 무관한 곳은 아닌지라
조금은 경이롭게 느껴지더군요.
노랗게 활짝 핀 털머위 꽃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다본 한라산의 저녁노을
명도암 숙소로 귀가하면서 성읍 중산간지대에서 바라다보는 한라산의 저녁노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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