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세월을 견더낸 반야산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 입상(2020.3.25)

2020. 5. 2. 22:27나의 이야기











논산 반야산 중턱에 세워진 천년고찰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제218호) 전경 



관촉사 (灌燭寺)는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968년(광종 19) 혜명에 의해

창건될 때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 지안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법당은 1386년(우왕 12) 건립해 1581년(선조 14)과 1674년(현종 15)에 중수했으며 1735년(영조 11)에

 다시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경내에는 관음전·삼성각·사명각·해탈문·현충각 등의 당우가 남아 있으며, 석조보살입상

(보물 제218호)과 석등(보물 제232호)을 비롯해 사리탑·연화배례석·사적비 등이 있습니다.  






















반야산 관촉사 일주문



종학당을 돌아 본 후 논산시내로 향하여 낙향한 후 몇년 동안 보지못했던 지인을

 거처에서 만나 그의 안내로 관촉사를 돌아봅니다.






















천왕문































대광명전



관촉사 주불전인 대광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이겠지만 미륵불을 모시는 대표적인

 불전인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형태로 삼국시대 장류전의 형태로 건물을 지어졌는데 

최근에 지은 건물로 여겨집니다.



















주지실




















윤장대





















반야루






















명부전






















대광명전 측면 






















석조미륵보살 입상과 석등





















명부전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장소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불전인 명부전으로 이 명부전은

 현대에 들어서 가장 많이 세워지고 있는 불전중 하나입니다.



















삼성각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석등




 불상과 석등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규모이지만 오층석탑은 왜소하고 형식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고려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석탑에 대한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석등이란 어두운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 불성을 밝혀 주는 등인데,

 처음에는 실용적 성격이 강했으나 후대에 불전이나 탑 앞에 설치하는 장식적인 건조물로 변했습니다.


 정사각형의 하대석 옆면에는 안상을 3개씩 새겼으며 기둥돌은 둥근 형태의

 상.중.하 3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사석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네 기둥이 빈약한 반면 화창이 매우 넓습니다.


 1.2층 지붕 돌의 네 귀에 귀꽃이 큼직하게 서 있어 경쾌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원과 4각.8각이

 혼합되어 구성되었으며, 안정감이 약간 부족하나 전체적으로 크고 장중한 감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화사석의 기둥이 가늘어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형태의 장대함과 수법의 웅장함이

 고려시대 제일가는 걸작으로 평가 됩니다.


 사적비에 의하면 불상이 968년(고려 광종 19)에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 석등의 대표작입니다.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에 그 때까지도 못다 구제된 중생들을 위해 나타난다는

 미래불로 대개 산이나 들 등 바깥에 세워진 경우가 많습니다.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 218호)



관촉사는 논산 시내에서 3km 남짓 떨어진 반야산(100m)기슭에 있습니다.


이 사찰에는 고려 광종 19년(967)에 착공하여 38년 후에야 혜명스님에 의해 완공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 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에서 솟아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이 바위로 불상을 조성하게 했습니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제218호. 높이 18.2m. 거불로 예로부터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진 불상입니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 권18 은진조와 1744년(영조 20)에 세워진 사적비(寺蹟碑)를

 보아 광종연간(950~975)에 승려 혜명이 조성한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상의 특징은 우선 크기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으로 불상예배의

경외심을 돋우어 주는 신앙적인 효과가 큽니다.


 이러한 위압감은 얼굴과 손이 신체의 다른 부분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그 효과가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상의 크기에 비해 불신의 표현은 소홀하여 어깨가 좁고

 가슴이나 허리의 구분이 별로 없는 원통형입니다.


천의(天衣)의 표현이나 옷주름도 매우 단순하며 이마 위에 늘어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나

 두 귀의 가운데로 걸쳐 있는 보발(寶髮)의 표현, 허리 밑으로 늘어진 앞치마처럼 생긴 둥근

 옷자락의 표현 등은 고려초 보살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들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강릉 신복사지석조비로자나불상(神福寺址石造毘盧遮那佛像)이나 연산의 개태사

석조삼존불(開泰寺石造三尊佛)의 협시보살상과 같은 고려 초기의 불상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관촉사 불상은 보다 도식화된 면을 보여줍니다.


높은 원통형의 관(아마도 금속관이었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짐) 위에 다시 사각형의 이중 보개를

얹고 있는 것이라든지 연화가지를 들고 있는 수인(手印) 등은 도상면에서도 매우 특이한 요소로

 보개는 중국의 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요소로, 아마도 상을 보호한다는 의미 또는 상의 위용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러한 독특한 모습의 보살상은 이후 고려에서 유행하여 비슷한 상이 여럿 조성되었는데,

 그중에 부여 대조사(大鳥寺)의 석조보살입상이 대표적입니다.


 백호를 수리할 때 발견된 묵기(墨記)에 "正德十六年辛巳四月十五日"이라고

 적혀 있어 조성시기의 파악에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혜명(慧明 968년광종 19)은 충청남도 은진 반야산의 땅속에서 큰 돌이 솟아나자

조정에서는 그 돌로 불상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조각할 사람을 구했습니다.


 이때 혜명이 지원하고 나서 공장 100여 명을 감독하여 970년부터 37년간 작업하여

1006년(목종 9)에 높이 55척 5촌의 거대한 미륵불상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세울 길이 막막하던 차에 하루는 사제촌에서 동자 2명이 3단으로 된 불상을

쌓아가며 세우는 것을 보고 깨우쳐 그 방법으로 마침내 불상을 세웠습니다.


이들 동자는 문수와 보현이 현화했던 것이라 하는데 이 불상이

오늘날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에 있는 은진미륵입니다.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

























관촉사 배례석(유형문화재 제53호)




정형화돤 고려시대 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는 관촉사 오층석탑과 배례석. 석탑은 그리 크지도 않고

 조각수법도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배례석은 석탑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입니다.


 석탑을 위한 배례석이라기 보다는 미륵보살입상을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배례석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던 곳에 놓은 직사각형의 받침돌로 바닥에서 2단의 직각 괴임을 새기고

그 사방의 면석에는 안상을 새겼습니다.


 연꽃은 단판 8엽이며 중앙에는 커다란 둥근 자리가 있고, 그 안에는 가운데 1개와 그 주위에

 8개의 자방이 연주문처럼 돌려져 있는데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연꽃의 잎 끝이 뾰족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의 연꽃잎을 뾰족하게 돋을 새김 하였습2니다.


제작연대에 대한 이설이 많으나 제작기법으로 보아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관촉사 석문(해탈문 문화재 자료 제79호)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달라는 염원이 들어 있습니다.





















미륵전




관촉사의 중심인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세워진 미륵보살을 모시는 불전인 미륵전.





















석문(해탈문)옆 건물은 승려들의 수행공간 요사채






















범종각
























청설모 전경






















탑정호 전경



지인과 함께 탑정호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고향으로 낙향한 후 쌓였던 옛 이야기를 나눈 후 

저녁을 먹고 가라는 지인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인이 챙겨준 논산 명품 탑정 딸기를 챙겨 

목포에서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제 애마의 엑셀을 힘것 밟아 봅니다.
























탑정호에 피기 시작한 개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