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 문중의 합숙 교육도장 논산 종학당(2020.3.25)

2020. 4. 30. 22:22나의 이야기

 

 

 

 

 

 

 

 

 

 

 

 

파평윤씨 문중의 합숙도장 논산 종학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52호)의 정수루 전경

 

 

 

 종학당은 1643년(인조 21) 윤순거(尹舜擧)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건립한 교육도장으로서,

 1910년 경술국치 전까지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신교육의 도입으로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호암산을 배산(背山)으로 두고 앞쪽에 종학당을, 뒤쪽에 정수루와 숙사를 두고 있습니다.

 

 

정수루는 살림집 앞에 인접시켜 마치 살림집의 부속채와 같습니다.

 

종학당과는 달리 좌향(坐向)이 남향에 가까운 동남향으로 급한 구릉을 이용하여

 정수루를 2층 누각으로 만듦으로써 숙사와 누각 바닥이 같은 높이가 되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인데 2층에서는 숙사 쪽으로 1칸을 내달아 ㄱ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평면으로 계획한 것은 숙사와 쉽게 연결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2층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로 하고 홑처마에 맞배지붕이고 초석은 막돌 덤벙주초

(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주춧돌)이고 모두 원주를 썼는데, 누하주는 거칠게 초벌 다듬기만

 하고, 누상주는 재벌다듬한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중층 바닥 주위에는 교살문 난간을 설치하였고 정수루와 인접한 숙사는 윤순거와

그 후손들이 살던 살림집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 구조입니다.

 

지금은 많이 개조되어 원형이 변형되었으며, 앞에는 작은 연못이 남아 있습니다.

 

 

 

 

 

 

 

 

 

 

 

 

 

 

 

 

 

 

 

 

 

 

병사 저수지 전경

 

 

 

 

 

 

 

 

 

 

 

 

 

 

 

 

 

 

 

 

 

 

 

 

 

홍살문 전경

 

 

이 홍살문이 종학당 입구에 왜 세워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홍살(화살)과 삼지창은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는 풍수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가운 것은 이 종학당 출입구 도로변에  충청유교문화원이 건축되고 있습니다.
 
이 것이 완공되면 영남학파에 이어 기호학파도 유교문화원을 가지게 되는데 비록 현실은

 영남학파들의 예산이나 규모에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유학의 양대 산맥이었던

기호학파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학당 전경

 

 

 

 

 

 

 

 

 

 

 

 

 

 

 

 

 

 

 

 

 

 

 

 

 

종학당 전경

 

 

 

종학당은 동향에 가까운 동남향으로 서 있으며

주변은 담을 둘러 구획하였습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가운데 1칸통은 대청마루로 하고,

양측에는 각각 온돌방을 두었습니다.

 

서측 온돌방 후면 벽은 아래를 띄운 반침을 달았으며 전면 열은 툇간으로

 처리하여 1고주 5량집 구조가 되었습니다.

 

 양 측면의 온돌방 앞마루는 가운데 대청마루보다

 1자 정도 높여 단의 차를 두고 있습니다.

 

전면의 기단(基壇)은 자연석 바른층쌓기를 3자 정도로 높이고, 가운데 계단을 두었고,

초석은 커다란 막돌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은 방주를 썼으며, 기둥 부재는 약 6치 각으로

 그리 견실하지는 않습니다.

 

대청마루 전면에는 창호를 달지 않고 온돌방 전면에는 띠살분합문을 달았고,

온돌방 측면과 툇마루 측면, 그리고 대청 후면에는 골판분합문을 달았습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3분합 들어열개를 달아 필요에 따라 방과 대청을 터서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파평 윤씨들과 배롱나무의 인연은,아니 명재 선생과 배롱나무는 떼려야 뗄 수없을 것 같습니다.
 
명재고택의 300년이 넘은 배롱나무에서부터 유봉영당의 배롱나무, 거기다 종학당의 배롱나무하면
전국의 수많은 진사들이 환호와 감탄을 자아내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철이 일러 배롱나무의 붉은색 꽃을 보기엔 이르지만 ......

 

 

 

 

 

 

 

 

 

 

 

 

 

 

 

 

 

 

 

 

 

 

 

 

 

 

 

 

 

 

 

 

 

 

 

 

 

 

 

 

 

 

 

 

 

 

백록당과 정수루

 

 

 

 

파평 윤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으로

 인조 21년(1643)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세운 후 종약(宗約)을 제정하였습니다.

 

화재로 인해 없어졌다가 1970년 윤정규가 지금의 종학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가운데 2x2칸은 대청을 겸한 트인 마루를

 두었고 양쪽 칸은 방을 설치하였습니다.

 

1910년까지 운영된 종학당은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습니다.

 

 

 

 

 

 

 

 

 

 

 

 

 

 

 

 

 

 

 

 

 

 

 

 

 

 

 

 

 

정수루 전경

 

 

 

 

 

 

 

 

 

 

 

 

 

 

 

 

 

 

 

 

 

정수루 내부 전경

 

 

 

 

 

 

 

 

 

 

 

 

 

 

 

 

 

 

 

 

 

 

 

종학당 연혁

 

 

 

 

 

 

 

 

 

 

 

 

 

 

 

 

 

 

 

 

 

 

 

백록당 전경

 

 

 

백록당은 종학당에서 교육을 받는 학동 중 우수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특별 교육시켰던 과정별 특수 교육장입니다.

 

 

 

 

 

 

 

 

 

 

 

 

 

 

 

 

 

 

 

 

정수루에서 내려다 본 종학당과 연지 그리고 병사저수지

 

 

 

 

 

 

 

 

 

 

 

 

 

 

 

 

 

 

 

 

 

 

 

 

 

 

 

 

종학당 전경

 

 

 

 

 

 

 

 

 

 

 

 

 

 

 

 

 

 

 

 

 

 

 

탐스럽게 곱게 핀 홍매화

 

 

 

 

 

 

 

 

 

 

 

 

 

 

 

 

 

 

 

 

 

 

 

 

 

 

 

 

정수루 현판 옆의 편액 향원익청

 

 

 

"향기는 멀리서도 맑음을 더한다" 라는 뜻입니다.

 

 

 

 

 

 

 

 

 

 

 

 

 

 

 

 

 

 

 

 

 

 

정수루 현판

 

 

 

정수루는 2층누각으로 학문을 토론하고 시문 을 짓던 장소로  이용했던 곳입니다.

 

 

 

 

 

 

 

 

 

 

 

 

 

 

 

 

 

 

 

 

정수루 현판 옆의 편액 오가백록

 

 

편액 오가백록은 휘호로 알려져 있는데 그 뜻은 우리 집의 하얀 사슴이란 의미로

 파평윤씨 집안의 귀한 후손들을 지칭한다고 여겨집니다.

 

 

 

 

 

 

 

 

 

 

 

 

 

 

 

 

 

 

 

 

 

 

 

종학당은 1625년 인평대조사부  동토 윤순거(파평윤씨24세) 가 사저(현병사)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사설교육기관으로 1628년 현 위치에 상급과정 학사로 7칸 전후의 백록당과

7칸층 누각인 정수루 를 창건하고 대소 과거 준비생 및 석학들의 학문연구와 기호 학파

 유림들의 학문교류  중심 도장 역할 하였습니다.

 

1665년 동토 윤순거는 명재 윤증을  초대 사장에 임명하고  명재는 1628년에  교육 과정 및

 학규인 초학획일지도와 후에 "위학지방도"  를 제정하여  운영하였습니다.

 

1829년 종학당을 현 위치로 이건하여 종학을 통합 운영하여오다  1910년 국치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상급 과정 폐쇠되고 초학 만 유지해오다 1919년 그 마저도 폐문되었습니다.

 

 2001년 종중 결의에 의해  종학당 백록당 정수루 보인당 등 그 일원을 총칭하여 "종학원"

 명명했으며 창건 후 280 여년에 걸처 42명 문과급제자 31명의 무과급제자 그리고

수 많은 생진과 및 석학을  배출했습니다.

 

1915년 을묘년에 대화재로 정수루가 소실되었으나 그 후 1970년대 이르러 동토 윤선거 선생

5대 손인 윤정규가 종학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2000년에 백록당 을 복원하고  7칸2층 누각 정수루와 3칸 솟을 대문  연못과

 인공섬 건물 주변300m  석축 복원 축조하였습니다.

 

종학당은 서원이나 서당에서 볼 수 없는 교육 과정 과 교육목표 학칙

등을 정하여 실학적 교육을 했던 교육장이었습니다.

 

 

 

 

 

 

 

 

 

 

 

 

 

 

 

 

 

 

 

 

 

 

 

 

 

 

 

 

 

 

보인당 전경

 

 

기숙사나 겨울에 공부를 하기 위해 지어진 보인당은 지금도 여름에는 파평 윤씨 집안의 아이들이
여름에 와서 가문에 대한 것을 비롯해 기본적인 예절과 인성을 배우고 있습니다
.

 

 

 

 

 

 

 

 

 

 

 

 

 

 

 

 

 

 

 

 

 

 

이제 이곳 논산에 2년 전에 낙향하여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

 그의 안내로 관촉사를 돌아 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