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잊혀져 버린 고대도시 에페소스.1 (2016.5,5,)

2016. 12. 1. 22:48나의 이야기








승리의 여신 니케의 석조물 (나이키의 어원)





니케(Nike)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으로 로마 신화의 빅토리아에 해당하며,

영어로는 나이키라고 읽습니다.


티탄 신족의 하나인 팔라스와 저승에 흐르는 강의 여신 스틱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질투 또는 경쟁심을 뜻하는 젤로스와 힘을 뜻하는 크라토스, 폭력을 뜻하는 비아의 남매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와 관계가 깊고 모습도 비슷하지만 단독으로 그려질 때는 날개가 달려 있고

 종려나무(실제로는 대추야자) 잎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파르테논신전에서는 아테나가 팔에 니케를 올려 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간테스와 올림포스 신들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에서

제우스 편에 선 탓에 종종 제우스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에페소는 이즈미르(Izmir)로부터 74km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서,바울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었다고

하나 카이스트로스강을 타고온 토사가 항구를 매워서 지금은 항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바다는 현재 에페소로부터 멀리 물러나 있습니다.


에페소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에의해 해방되었습니다.

대왕이 죽은후, 에페소는 대왕 휘하의 장군 리시마코스(Lysimachos BC 361 ~ BC281)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리시마코스가 에페소에 경기장, 체육관, 원형극장을 세워 에페소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그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에페소는 로마의 소아시아 서부 지역 수도가 되었고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 번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오늘날 발굴되는 에페소의 모습은 로마시대의 것입니다.)


BC 88년 시민들이 로마의 압제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로마의 실라(Sylla)장군은

 에페소를 완전 초토화시켰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BC27∼ AD14년) 때부터 다시 재건된 이 도시는

로마의 아시아 속주의 정치, 상업,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에페소스 (라틴어: Ephesus, 그리스어: Έφεσος, 터키어: Efes,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에페소,

 한글 개역판에서는 에베소로 표기)는 서부 소아시아에게 해 연안에 (현재의 터키)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7-6세기에 건립된 식민도시입니다.


에페소스는 주변 도시 혹은 국가,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의 흥망성쇠에 따라

 식민지화 되는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식민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페소스는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6세기에 건조된 웅대한 아르테미스 신전로마 제국 시대에 건조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로마식 건축물도미티아누스 신전 (기원후 1세기)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아르테미스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에페소스인들에게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받던 대상이어서, 루가에 따르면 사도 바울로가 선교를 할 때 은으로 만든 신전모형을 팔던

상인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로가 우상을 숭배하지 말자고 설교하여, 사람들이 신전 모형을 더 이상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페소스는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로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로

전도와 사목을 한 교회 중 하나가 에페소 교회였습니다.


또한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7개의 교회 중 하나가 에페소교회일 정도로

 1세기 기독교 역사에서 비중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국 성공회의 폭스 신부가 쓴 《순교자》에 따르면 사도 성 바울로의 제자인 디모테오

 주교로 사목한 교회가 에페소 교회라고 합니다.
















에페소 지도
















쉬린제 산촌마을을 돌아보고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제국시대에 번영을 구가하였던 고대도시 에페소입니다. 


이 곳 에페소는 워낙 광대한 로마의 흔적이 가장 많이 아시아에 남아 있는 유적이기에 

 총 3편으로 나누워 올려드릴 생각입니다.


터키를 갔다 온지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도 터키 여행에 대하여 다 올려드리지 못하는 까닭은

 제가 가진 지식이 너무 부족한 탓에 자료 수집이 어렵다는 점과 다른 곳들에 대한 것들을

 올리기 바쁘다 보니 이렇게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고대 문화라는게 그리스 로마문화가 영향을 많이 주었기에 기본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면 이야기가 안되는 탓에 더 어렵다는 생각이....ㅋ







 









에페소 유적지 매표소 전경























바리우스 목욕장 전경

















바리우스(Varius) 목욕장



AD 1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 냉실, 탈의실, 미온실, 온실, 사우나실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곳 에페소를 입장하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바리우스(Varius)의 욕장이었는데  바리우스의 욕장은

 2세기경에 지어진 곳이라고 하였는데 아직도 발굴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커다란 세개의 아치는 각각의 탕으로 향하는 입구 였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런 고대시대에도

 열탕과 냉탕,온탕으로 구분된 탕에서 목욕문화를 즐겼던  에페소인들은

 어떻게 보면 무척 문화인었다는 생각이.....ㅎㅎ  

















에베소에는 2 개의 아고라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오데온 건너편은 “작은 아고라(State Agora)”라고 불리는 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에페소 도시에서

운영하였던 시장이었는데 여러 개의 작은 터널 같은 것은 아고라 안에 있었던 상점들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물건을 사고팔던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만나 환담을

나누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도시에서 주관하는 모임이나 행사를 치렀던 곳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AD 4세기경에는 공동묘지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작은 아고라(State Agora)와 오데온(Odeon) 사이에 3 개의 복도와 지붕이 있는 160m 길이의

 바실리카가 있었는데,이 곳은 상업적인 용도로 사채업자들과 은행가들이 돈을

 교환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바실리카 대성전


오데온의 좌석에 앉으면 무대 뒷 편으로 두 줄의 기둥이 서 있는 곳이 바실리카입니다.

지금은 그 기둥의 온전한 모습을 알 수 없고, 기단과 기둥의 일부 만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곳은 화폐를 교환하는 곳으로서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AD 1세기에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165m에 이른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그 기둥의 머리는 황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실리카(Basilica)와 광장(Agora)



바실리카는 로마시대의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집회장소, 때로는 궁정 등에도 사용된

직사각형 평면의 공공건축을 말합니다.


오데온 앞에는 바실리카의 기둥들이 길게 열을 지어 서 있습니다.


바실리카 앞에는 광장, 즉 아고라가 있는데 대리석 길에 있었던 ‘아고라’가 상업광장(Commercial Agora)이라면

 이곳의 아고라는 국가 아고라(state agora)입니다.


정치적, 종교적인 회합이 열렸던 장소로 AD 1세기에 건립되었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재위 AD 379-395) 시기에

 마지막으로 개축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음악당 오데온(Odeon)


오데온은 소극장이란 뜻으로 소규모의 공연이 이루어졌던 장소입니다.

연극이나 행사가 열렸으며 약 1,400명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AD 150년 경에 이 도시의 귀족인 푸블리우스 베디우스(Publius Vedius Antonius)와

그의 아내 플라비아 파피아나(Flavia Papiana)에 의해 세워졌다는 명문이

 발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AD 2세기에 극장형으로 세워진 원로원이기도하며 , 문화의 장소이기도 하였고,

 연극 상연 장소로도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에페소의 정치 조직은 두 그룹이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는 보울레(Boule)라고 불리는 원로원

(상원에 해당~300명으로 구성)으로 바로 이 소극장에서 회의를 개최하였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그룹은 데모스(Demos) 라고 불리는 민회로서 모든 에페소인으로 구성되어있고

 이들은 이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극장에서 집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서기 150년 경에 지어졌다는 이 소극장은 음악 등 문화적 행사를 위해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1천4백명 정도를 수용하였으며 가장 낮은 부분인 오케스트라 중앙에 빗물을 받는 홈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원래에는 지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귀족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부채꼴 모양으로 오케스트라석과 관중석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작은 음악공연장으로

에베소는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었지만 자치제가 실시되고 있었던 도시였으며,

에베소 자치 원로회가 에베소의 정치를 이끌어 갔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데온 계단위에 곱게 핀 야생화가 제국시대에 번영을 구가하였던 에페소의 페허위에

 곱게 피어 이 곳을 찾은 나그네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헛된 욕망은 부질 없는 것이라고......

욕심없는 삶만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에베소 시청 (프리타네이온,Prytaneion)


작은 음악당 옆에는 에베소 시청(프리타네이온)이 있습니다.

프리타네이온은 도시의 행정기관, 즉 시청이 있는 곳으로 회의가 열리고 손님을 접견하던 장소로

 도미티아누스 광장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 세워지고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시청 옆에 아르테미스 여신상(이곳에서 발굴된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셀추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이

 서 있었고 그 위에는 에베소의 번영을 상징하는 성화가 365일 내내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시청에서 일하는 관리들의 집이 있었다고 합니다.


























크레테스 도로 (Curetes Street)

 

그리스 신화에서 소개되는 크레테스(Curetes)는 반신반인(semi-deities, 반은 신이고 반은 사람)이었습니다.


제 불로그에 대영박물관을 방문한 글들이 있는데 그 곳에 전시된 파르테논신전 돌조각들이거나

메소포타미아 석상들에게서  반신반인들이 나오니 참고하셔도 됩니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의 쌍동이 아이(Artemis & Apollo)를 임신한 "레토(Leto)"가 아이를 낳을 때,

크레테스(Curetes)가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의 질투로부터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기를 가지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소란을 피워 헤라가 그들을 보지 못하도록 혼돈시킴으로

 그들을 도왔던 신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에서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의 업무를 맡아 보는 승려(사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제들(Curetes)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만 일을 하였지만 로마 시대 들어서는

 에베소의 시청(The Prytaneion)에서도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원래 The Prytaneion은 헤스티아(Hestia)여신의 신전이었던 곳 입니다.


크레테스 도로(Curetes street)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하얀 대리석이 깔린 도로는

나중에 헤라크레스의 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셀수스 도서관이 있는 곳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도로의 양쪽에는 기둥으로 이어진 화랑이 있었고 화랑 뒤쪽으로는 가게들과 개인 주택들이 있었으며

 기둥의 앞쪽에는 에베소의 영웅이나 유공자들의 동상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이 동상들의 받침대에는 동상의 인물에 관하여 설명하는 글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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