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 천탑의 비밀을 간직한 운주사를 찾아서.2 (2016,9,18)

2016. 11. 22. 16:22나의 이야기









불사바위에서  마애여래좌상으로 내려오면서

바라다 보이는 운무낀 운주사 경내 전경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붉은 적송과 아름다운 고찰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보라색 야생화가 내리는 가랑비에 촉촉히 젖어 무리지어 핀 탓에 

그 것을 바라보고 혼자 길을 걷는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화순 운주사 마애여래좌상(전러남도 유형문화재 제275호)



마애불은 자연의 암벽에 부조(浮彫)나 선각(線刻) 등으로 불상을 나타낸 것으로

 삼국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백제의 서산 마애 삼존불,

 신라의 경주 남산 마애불군 등이 있습니다.


화순 운주사 마애 여래 좌상은 표면에 균열과 탈락이 심하나 암벽의 요철 부분을

 그대로 살려 얕게 부조되었습니다.


 화순 운주사 광배 석불 좌상[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4호]과 수인의 형태, 옷 주름 형태,

 불상 쪽으로 새겨진 화염문 등이 매우 유사합니다.


제작 연대는 화순 운주사 광배 석불 좌상과 같은 고려 중기로 추정됩니다.


 2005년 7월 13일에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7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법의는 우견 편단으로 보이며 오른쪽 어깨에는 탈락이 심합니다.


 왼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음각선의 옷 주름과 오른 소매에 사선의 옷 주름으로

 덮인 손 모습이 기도하는 형상입니다.


 앉은 자세의 다리에도 사선의 옷 주름이 보이나 가부좌 형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대좌는 8판 복련으로 새겼고 광배는 두광과 신광의 구분이 없이 육계 상단부에서부터

 불신 좌우, 무릎 위쪽까지만 음각 선문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전체 높이 5.16m. 현재의 운주사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40m 떨어진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운주사 유일의 마애불입니다.


암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여 부조로 새긴 고려시대 마애불로

 광배와 대좌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매우 낮은 부조로 얼굴과 머리 부분만 약간 높이가 있고 나머지 부분은 선각에 가깝습니다.


 육계는 두툼하게 솟아 있으나 머리와 이마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고 마모되었고

 희미한 눈썹과 좁은 삼각형의 우뚝한 콧날이 마애불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부분입니다.


기다란 귀는 낮게 양각되었으며 입체감은 없지만 형체가 뚜렷합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법의(法衣)를 입고 있으나 오른쪽 어깨의 마모가

심해서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 주름과 오른쪽 소매의 옷 주름은

 선각에 불과하며 그 선도 아주 가늘고 얕습니다.


 광배는 머리부터 그대로 신체의 윤곽선을 따라 약간의 간격을 두고

부드럽게 암벽을 파낸 것으로 암시하였습니다.


뾰족한 잎 끝을 아래로 내려뜨린 8잎의 꽃잎이 있는 대좌가

이 마애불에서는 비교적 복잡한 형체를 갖춘 것입니다.
















원반형석탑과 사층석탑


















꽃무릇



















석불군 다




















석불군 다 위에 있는  수직문 7층 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제 제267호)
















수직문 칠층석탑에서 바라다 본 건너편의 채석장과 와불이 누워 있는 산 능선


















화순 운주사 광배 석불 좌상(전러남도 유형문화재 제274호)
















화순 운주사 쌍교차문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7호)
















화순 운주사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76호)




천불 천탑의 염원을 담아 세워진 운주사


천불 천탑은 누가 무엇 때문에 이 곳에 조성을 하였을까요?

국가적인 지원이었다면 이렇게 무성의한 불사로 조성될리도 만무할텐데......

분명 천불 천탑을 조성하게 된 염원이나 열망이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오백 나한의 나한들처럼 제 각각 못난 부처를 가장 서민들의 얼굴에 근접한 형상으로

석재를 깍아 부처로 만들어 경배의 대상으로 삼도록 한 것은 무슨 연유인지......


시대를 넘나드는 석탑을 세워 하늘을 향하게 한 그 염원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석재군 나




















응회암층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기대어 세워진 이름모를 석불마져도 촉촉하게 젖어

 속세의 번뇌에서 해탈하지 못했는지 처연함만 더합니다.

















석불군 가



















운주사 9층 석탑(보물 제 796호)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和順 雲住寺 九層石塔, 보물 제796호)은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의

 첫 입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커다란 바윗돌로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을 삼고 그 위로 윗층 기단을

쌓은 후 9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입니다.


   석탑 윗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또한 기단의 맨윗돌은 탑신의 1층 지붕돌로 대신하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운주사의 모든 탑이

 이런데 고려시대로 오면서 나타난 특징으로 보입니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는데,

 이러한 수법은 운주사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각 지붕돌은 밑면이 약간 치켜올려져 있고,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으며,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새긴 장식이 일반형에서 벗어난 모습들은 보기 드문 예라고 합니다.


이는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했던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운주사의 여러 탑 가운데 높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원래 지방유형문화재

제8호였다가 1984년 보물로 등급이 조정되었습니다. 





















화순 운주사지는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운주사지 종합안내도
















연장바위와 석재군 가
















이른 새벽 비가 내릴 때 이 곳을 도착한 탓에 석탑들을 사진에 담기엔 전체적으로

어두운 탓에 사진에 담기엔 부적합하였는데 이제야 그런대로 빛이 있는 탓에

 이 곳 석탑군들의  사진에 담고는 다음 코스인 와불로  향해 봅니다.















와불로 향하는 등로 전경



















칠성바위 앞 칠층석탑(전러남도 유형문화재 제281호)

둥근 암반은 칠성판으로 와불을 중심으로 한 북두칠성의 별자리와도

 같다는 야화도 전해져 옵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산에 바라다 보이는 7층 석탑
















암반 하단부 사각형으로 파인 곳으로 미뤄 운주사 경내의 천불 천탑을 세우기 위한

석재들을 이 곳에서 채취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와불로 향하는 등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