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2. 21:55ㆍ나의 이야기
운주사를 상징하는 와불에게 기도를 드리는 보살님
이른 새벽인데다 청승맞게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기에 운주사 경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인적 조차도 보이지를 않았는데 이 곳 와불에 올라와 보니 저보다 부지런한 보살님이
한 분이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염원을 담아 와불께 기도를 드리는지는 몰라도
그 정성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운주사를 방문하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이채로운 불상이 있는데 그 건 바로 와불(臥佛)입니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형태의 유일무이한 부처님으로 이는 열반상(부처님이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상)과는
다르게 좌불(앉은 모습)과 입상(선 모습)으로 자연석위에 조각된 채로 그대로 누워있습니다.
좌불12.7미터, 입상10.26미터의 대단히 큰 불상으로
나침반을 갖다 대면 정확하게 남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곤륜산의 정기를 받아 와불이 일어나면 미륵의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열리듯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그러하기에 한 때 일제 강점기나 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울분찬 젊은이들이
이 와불 옆에 앉아 맘을 삭혔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져 옵니다.
와형석조여래불상의 조성 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되는데,
조각 양식이나 한 돌로 두 기가 제작된 점등으로 미루어 동일인이
동일한 연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와형석조여래불은 대체로 북쪽 다리 부분이 남쪽 머리 부분보다
약 5° 높게 경사가 져 있습니다.
좌상과 입상의 다리 밑과 좌상과 입상 사이에는 암반의 자연적인 균열을
이용해 떼어내려고 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이로 미루어 와불은 산 정상의 13m가 넘는 거대한 암반에 불상을 조각하고
떼어내는 공정을 마치지 못한 미완성 불상으로 여겨집니다.
대체로 고려 시대에 운주사에서 제작된 불상 중 가장 크고,
완성도가 높아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가치가 큽니다.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는 세계에서 '와불' 하나뿐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불상 아래쪽에 쐐기를 박아 떼어놓으려는 흔적도 바라다 보입니다.
또한 두 와불 중에 아래 와불은 머리에 붙어 있어야 할 육계가 떨어져 옆에 서 있는데
누군가가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잘라낸 흔적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와불 아래 산등성이에 지금도 미스터리하게 남아있는 불적(佛跡)이
하나 있는데 바로 칠성바위입니다
원반형 칠층 석탑의 옥개석으로 쓰였던, 하나 하나 바닥에 붙은 둥근 돌들의 배열은
북두칠성의 방위각의 밝기와 흡사합니다.
이는 불교에서 우리 민간 신앙인 삼신각이나 칠성각을 짓고 받아들인 것처럼
불교에 수용된 칠성 신앙의 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와불 머리 앞에 자리잡은 개인 묘자리인데 전망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사적지 바로 근처에 이런 개인의 묘자리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 졌다거나 아니면 이 지역 세도가가 아니면 이루워 질 수 없는 것이기에
빠른 이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자승이 변한 석불
화순의 운주사도 닭울음소리와 관련된 창건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천불 천탑을 세우면
국운이 일어날 것으로 믿은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도술을 부려 천불 천탑을 세웠는데
마지막 와불을 일으키는 와중에 공사에 싫증이 난 동자승이 거짓으로 닭 울음소리를 내어
결국 한 쌍의 불상은 일으키지 못한채 와불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이를 안 도선국사가
진노를 하여 이 동자승을 세워져 있는 석불로 만들어 버렸다는 ......
그러나 이 서 있는 석불도 와불과 같은 위치에 누워있던
와불의 한 조각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이목구비를 분간할 수 없는 돌부처와 돌탑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운주사는 기존 절의
이미지를 완벽히 깨는 독특한 형색의 사찰이란 생각이 듭니다.
뭔가 빠진듯 하면서도 단단히 채워진 기묘한 분위기의 사찰이 바로 운주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거북바위 밑에 세워져 있는 다양한 석불의 얼굴 형상을 바라다 보면
참 단순하면서도 기묘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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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를 방문하신다면 각양각색의 석불과 탑들을 차근차근 감상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극히 인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남편,아내,아들,딸,아기부처라고 보아도 좋을
마치 우리네 민초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면서 친근합니다.
차라리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요?
운주사의 돌부처와 불탑들은 세련된 돌부처와 불탑에서 보아 오던
근엄한 표정은 도무지 찾아볼 수 조차도 없습니다.
이게 운주사만이 지닌 매력이라면 매력이라는 생각이.....
비를 맞아 함초롬히 젖은 목백일홍의 처연함이 운주사의 신비감을 더합니다.
이제 이 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운주사를 찾아 올런지 기약이 없기에 발품깨나 팔며
속속들이 다 돌아보자는 생각으로 운주사 경내를 이잡듯이 돌아보았는데도
아직도 운주사에 계속 미련이 남는 까닭은 무엇인지......
채워지지 않는 가슴속의 허전함을 달래며 이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쌍봉사로 향합니다.
쌍봉사로 향하는 길녁의 아름다운 느티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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