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이면서도 아름다운 오사카성.2(2012.1.20)

2014. 2. 27. 16:32나의 이야기

 

 

 

 오사카성 천수각 8층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우측의 오사카역사박물관과 NHK의 전경

 

 

오사카성 천추각(텐슈가큐) 1층에서 8층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1층에서 전망대로 바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는  4면이 오사카 시내를 바라다 볼수 있게 되어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전망대에서 바라다 본 오사카 시가지의 전경과 오사카성 주변의 풍경들로

 적은 입장료로 이런 탁트인 조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입장료를

지불한 가치치고는 아주 좋았단 생각입니다.

 

혹여 패키지여행으로 이곳에 오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필히 개인적인

입장료를 부담하시고서라도 천수각(텐슈가큐)을 관람 하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전망대 아래로 바라다 보이는 사진이 어제 저녁에 제가 보았던

화려한 오사카성 일루미네이션축제 장소에 대한 사진이랍니다.

 

 

 

 

 

 

이렇게 주간에 오사카성 일루미네이션 축제 장소를 보니 밤에 보았던

화려한 흔적이 없어선지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ㅎ  

 

 

 

 

 

 

 

  오사카성 천추각(텐슈가큐) 정면 앞 공원 전경

 

 

 

 

 

 

 오사카성 1차 해자인 소토보리

 

 

 

 

 

 

오사카죠홀과  오사카 야구장

 

 

 

 

 

 

 천수각(텐슈가큐)8층 전망대에서 오사카 시가지를 바라다 보는 관광객들

 

 

 

 

 

 

 NHK와 오사카역사박물관

 

 

 

 

 

 

오사카 비지니스타운 전경

 

 

 

 

 

 

 

 

 

 

 

 

 

 오사카성 천수각(텐슈가큐)전망대에서 오사카 시가지를 바라다 본 후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가면서 천수각 내의 전시관을 돌아 볼 순서입니다.

 

그러나  오사카성 사진이 많아서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별도로 올려드릴 생각입니다.

이점 이해하시고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천수각 1층 앞 포대와 우물

 

 

 

 

 

 

 천수각 정면 앞 전경

 

 

 

 

 

 

 

 

 

 

 천수각 출입계단

 

 

 

 

 

 

 

 

 

일본 천하를 호령하던 도요토미에게도 큰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56세에 뒤늦게

 나은 다섯 살짜리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병석에 누운 그는 최후에 임박하여 다섯 명의 다이로를 부르게 되는데

 그 가운데는 이미 그에게 굴복해 때를 기다리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있었습니다.

 

도쿠가와는 이 때 250만석의 최대 다이묘로 성장한 일본의 2인자였고

 조선 침략에도 군대를 보내지 않아 착실하게 군사력도 키워 놓은 실력자였었지요.

 

다이묘를 불러 모은 자리에서 도요토미는 눈물로 호소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히데요리를 보호한다는 각서까지 받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세상은 이제 도쿠가와 이에야스 것 처럼 보였지만,

 전면에 나서지를 않고 때를 기다리는데 도요토미가 없는 권력 핵심부는

이시다미쓰나리등 문신파와 가토 기요시마등 무신파가 대립해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된답니다.

 

문신파와 무신파의 싸움을 말리려고 중재하던 마에다 도시이에마저 죽자

무신파는 무력으로 문신파를 몰아내려고 하였답니다.

 

 다급해진 문신파의 지도자격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쿠가와에게 도움을 청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히려 이시다 미쓰나리를 권력을 탐해 평지풍파를 일으킨다고하여

 이시다를 오히려 지방으로 쫒아내어 버린답니다.

 

 도움을 청하려다 오히려 지방으로 쫓겨난 이시다는 전국에 친 도요토미 가문

다이묘들을 규합하여 도쿠가와군에게 맞서게 되지요.

 

이를 이시다의 서군 그리고 도쿠가와의 동군이라고 하며,

 1600년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세키히하라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 이 전투를 천하를 둔 전투라고도 합니다.

 

 전투는 도쿠가와의 동군의 승리로 끝나게되고 이 전투의 승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린 히데요리의 보호자로 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천하를 얻었으되 히데요리를 해치지 않았었고 또 이 전쟁으로 실상은 도요토미의 세력들을

 쓸어낸 전쟁이었으니 명분도 얻었고 실리도 챙긴 전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이묘로 있던 에도(오늘날의 도쿄)에 바쿠후를 세우고

 쇼군이되면서 절대권력을 위한 대대적인 제도개선에 착수를 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전국의 다이묘들을 새로이 임명하고,

 도요토미파 다이묘로 세키가하라전투에 참여해 그와 맞서 싸웠던 자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토지와 다이묘 지위를 박탈하고 평민으로 계급을 낮춰 

 아예 후환을 없앴는데 이로써 주군을 잃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는

실직 무사(부시)인 로닌이 무더기로 생겨 나기도 했답니다.

 

쇼군이 된지 2년만에 1605년 쇼군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오고소로서

모든 실권을 쥐고 일본 천하를 통치하게 됩니다.  

 

한편 나라 안팍을 정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겐 아직 숙제가 남아 있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남기고 간 외아들 히데요리로 그의 아버지가 지은 오사카성에

 다이묘로 살고 있었는데 그가 성인으로 성장하자 도구카와 이에야스에겐

큰 가시가 아닐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이를 제거코자 히데요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는데

지진으로 허물어진 도요토미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호코지(방광사:1586년에 히데요시가 지은 사찰)를

 다시 지으라고 권고를 한답니다. 

 

다시 짓고 싶어도 눈치보느라 손을 못대던 호코지를 도쿠가와가 먼저 지으라고하니

히데요리는 화려하고 웅장했던 아버님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하여 호코지 재건공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호코지 절에 걸릴 큰 쇠종에 새겨진 문구를 트집잡아 1614년 오사카성을 도쿠가와가 공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상밖으로 단단한 수비벽은 한 해 가까운 이듬해 4월이 지나도록

 무너지지를 않자  히데요리에게 협상을 제안하게 됩니다.

 

 도쿠가와의 요구조건은 간단했는데 오사카 성은 적군의 공격을 막기위하여

두 겹의 해자로 둘러 싸였는데, 해자가 있어서 물을 건너기 전에 화살로 공격을 받게되는지라 

 화해의 표시로 바깥 해자만 메우도록 해준다면 오사카성이 우리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되니

순순히 물러가겠다고 제안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이 제안을 히데요리가 받아들여 바깥 해자를 메우자

 도쿠가와는 밤사이 재빨리 안팍의  해자를 모두 메우고 오사카성을 탈환합니다.

 

오사카성 공격을 가로막는 해자가 사라지자 성은 간단하게 함락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스스로 목숨을 꿇었다고 전해져 옵니다만,

  쉽게 함락된 사유에는 히데요리의 부인과 첩 사이의 암투로 성문을 열어주었기에 

쉽게 함락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답니다.

 

 

 

 

 

 

 

 

오사카 천수각(텐슈가큐)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벌인 전쟁으로 불타 버린 이후에

재건축하였기에 외양과 내부는 일부 같은 모양으로 복원 하였겠지만,

 현대적인 시멘트 건물로 복원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2차 해자  우치보리 전경

 

 

 

 

 

 

 

 

 

 

 

 

 극락교(고쿠라쿠바시)로 향하는 내리막길

 

 

 

 

 

 

 

 

 

 

 오사카성을 만들때 들어간 성벽 돌

 

 

 

 

 

 

 돌에는 각 지역의 다이묘들이 관할하는 곳에서 차출된 인력들에 의하여

이런 돌들이 운반되어져서 오사카성을 만들었기에,

 이런 표식으로  자기 지역에서 보내준 돌이란 표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는 일행들

 

 

 

 

 

 

풍신수길(도요토미히데요시)이 병으로 죽은 후 그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도꾸가와 이에야스에게 전쟁에서 패한 후 이 곳에서 죽었다고 하는 곳

 

 

 

 

 

 

 

극락교(고쿠라쿠바시) 전경

 

 

 

 

 

 

 

 

 

 

 

 

 

 

 

 

 

 

 

 

 

 

 

 

 

해자에서 헤엄치는 오리때 들

 

 

 

 

 

 

 

 

일본은 우리와 학기가 달라서 1월인데도 오사카성 근교의 고등학교 육상반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후에 이 곳으로 와서 공원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시민의 숲에는 여러가지 색상의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들이  수 천 그루가 있어서 

꽃이 피는 봄이 되면 무척 아름답다고 합니다.

 

 

 

 

 

 

 

 

 

 

 

오사카성의 1차 해자 미나미스토보리에 비친 오사카역사박물관의 반영이

오사카성이 건립된지 431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풍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한 인간이기에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치세도 짧은 시간만에 한 웅큼의 부토로 돌아 갔으니

역사적으로보면 이 세상에서 권력이란 것은 영원 불멸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오사카성을 마지막 코스로 관서지방여행을 끝내고

이젠 큐수로 향하기 위하여 오사카 남항으로 향합니다.

 

 

 

 

 

오사카 도시고속도로상에서 바라다 본 시가지 전경

 

 

 

 

 

 

어둠이 물들어 가는 오사카항 주변 풍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