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에 살아 있는 역사와 호흡하는 강화읍 용흥궁주변 풍경들(2012.10.10)

2012. 10. 12. 15:19나의 이야기

 

 

개화기에 강화도 만큼 우리나라에서 숨쉬는 역사가 더 많은 섬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조 말 강화도령이 철종으로 조선 조 왕으로  등극 할 시기에는 나라가 혼란하고,

 어수선한 시기여서 이곳에서 자란 강화도령 만큼이나 강화도는

우리나라 개화기에 많은 질곡의 역사를 간직하였기 때문이다.  

 

 

 

강화도령 철종의 잠저임을 기록한 비각과 비석

 

 

내      전

 

 

 

용흥궁 입구(잠저 별저)

 

 

내전 정면모습

 

외전 전경

 

 

내전 뒤의 우물

 

 

내전 연돌

 

용흥궁 바로 위에 있는 계단을 올라 가면  성공회 강화성당이 있다.

 개화기에 강화도는 영국에서 건너 온 성공회 교파 전래가 왕성하였던 곳이라

1900년대 개화기 초기에 순수 한국식건물로 독특한 멋진 성당을 지을 수 있었다.

 

 

성공회 강화성당 입구

 

 

 

일제에 의하여 전쟁 물자로 수탈되어 유실되었던 동종을 일본 성공회순례단에 의하여 다시 제작하여

 설치한 동종으로 원래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 약식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의 종은 우리 고유의 범종 양식보다는 약간의 일본식 제작 방법이

 가미된 느낌이 들어서 좀 아쉬웠다.(정확한 고증이 안되었음으로 사견임을 밝힌다.)

 

 

1900년대에 설립된 성공회 강화성전 본당 모습

 

 

 

독특한 형식의 교회건물로 한국전통양식으로 지은 성전이 무척 이채롭고,

 내부는 공개를 안하는 사유로 보지 못함이 무척 아쉬웠다.

 

 

성전 살림집

 

 

 

 

성공회성전 돌담과 담안에 있는 오래된 거목이 성공회 성전의 역사를 말하는 것 같다.

 

 

 용흥궁과는 이렇게 담을 맞대고 있는........

 

 

 

 천주교 강화성당의 종루로 지금으로 보면 독특한 모양이지만,

 맨 위에 종을 매달고 밑에서 줄로 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진무영순교성지

 

 

 

 우리나라 개화기에는 서양에서 교리 전파를 위하여

중국을 거쳐 선교사를 서해안 쪽에 있는 섬부터 도착하여 포교를 시작한 사유로

서해의 큰 섬들은 이렇게 종교와 관계된 유적들이 많이 있다.  

 

이곳도 그런 곳 중 하나로 병인박해에 이곳에서  순교한 분들의 성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