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2(2023.7.26 국립중앙박물관)

2023. 7. 30. 16:55나의 이야기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과 사슴,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과 멧돼지, 사람과 새,

사람과 멧돼지, 사람과 표범 게, 사람과 개, 사람과 개 사슴

 

 

노를 저어가는 사람, 통나무 배,  노가 있는 배, 말,

말을 타고 가는 사람, 말에 짐을 싣고 있는 사람

 

 

공동의례로 연결된 사람들(토우정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절하는 사람들),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거석 기념물을 향해 절하는 사람들),

  절받는 사람과 절하는 사람,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춤을 추는 사람들),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

(성적인 장면을 향해 절하는 사람들), 남성성과 여성 성이 강조된 장면 

 

 

주변의 동물들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개 자라, 곰, 소 육상동물, 돼지 호랑이, 여우, 사슴 개

 

 

모자를 쓴 사람

 

토우의 옷 차림은 단순하게 표현되어 치마나 바지 정도만 구분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머리에 뿔처럼 표현된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토우의 모자는 복발식 "건"과 절풍형 모자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복발식 "건"은원추형, 절풍형 모자는 양 옆에서 눌린 듯한 모자입니다.

절풍형 모자는 고구려 백제와 함께 삼국시대 공통의 모자이지만,

원추형의 복발식 "건"은 신라만의 특징입니다.

 

 

 

주위의 동물들(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오리, 새, 고니 가마우지, 후투디

 

 

토우 장식 뚜껑 (주위의 동물들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새, 오리, 물고기

 

 

토우장식 뚜껑

 

(헤어짐의 축제: 춤을 추는 사람들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유적)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춤을 추는 사람들, 현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사람들,

춤을 추는 사람 

 

짧고 끝이 둥근 악기를 한 손으로 잡아 입에 대고 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악기는 흙을 구워 만든 "훈"이라는 악기로 추정됩니다.

뾰족한 모자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춤을 추는 두 사람은 뿔 모양의 복두를 쓰고 자주색 큰 소매의

난삼을 입고 도금을 한 붉은색 가죽의 허리띠와 가죽 신발을 착용했다고 합니다.

 

 

일하는 사람들

 

토우장식 뚜껑(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기대어 쉬는 사람, 삼태기, 지게를 진 사람, 머리에 짐을 이고 가는 사람, 짐 나르는 사람,

봇짐을 맨 사람, 디딜방아, 괭이를 든 사람, 멧돼지를 싣고 가는 말과 짐을 싣고 가는 말

 

삼태기는 곡식을 퍼담거나 흙, 모래, 자갈과 같이 흩어지기 쉬운 물질을 담아 나르는 데 사용합니다.

두엄이나 재 같은 거름을 담아 허리춤에 끼고 논밭에 뿌릴 때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삼태기의 모습과 비숫한 도구가 토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디딜방아와 괭이를 멘 사람의 모습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의

일상을 재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등에 봇짐을 메거나 지게를 진 사람, 머리에 동이를 이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당시 신라 사람들의 일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동물들 (토우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뱀, 뱀과 개구리, 뱀과 자라, 뱀 개구리 물고기 

 

 

물속 생물들(토우 장식 뚜껑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자라, 거북, 거북 게 물고기, 거북과 물고기

 

 

물속 생명들 (토우장식 뚜껑 삼국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강릉 병산동 10호 무덤)

 

장어, 어류, 가물치, 잉어, 어류와 거북, 어류와 뱀

 

 

토우장식 뚜껑

 

(가재, 바다뱀 갯가재 망둑어, 별불가사리 육상동물, 해삼, 가재 게, 별불가사리)

 

 

토우장식 뚜껑(뱀, 뱀과 개구리, 뱀 개구리 개)

 

 

토유장식 긴목항아리 (신라5세기 경주 미추왕릉지구 꼐림로 30호 무덤, 국보)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신라 5세기 경주 노동동 11호 무덤,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에 붙어 있는 토우는 뱀과 개구리 그리고 지팡이를 든 사람입니다.

지팡이를 든 사람은 제사장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사람모양 토우는 황남동 유적과 쪽샘지구 유적에서도 출토되었습니다.

황남대총 북쪽 무덤 봉토에서 나온 토기 조각에도 비슷한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토속종교의 의례와 관련된 장면으로 보입니다.

 

토우장식 항아리에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과 동물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한 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것은 당시 신라사회에서 장소의례와 관련한 정형화된

이야기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개구리의 뒷다리를 무는 뱀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현악기를 연주하는 여자, 성적인 장면, 지팡이를 든 남자,

새, 물고기 등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토우장식 토기는 신라 경주지역에서 5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가 6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집니다.

이 시기가 신라에 불교가 도입되기 전임을 생각한다면 토우로 연출된 장면들은

오래전부터 전승된 토속종교 의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계세적 내세관이 유행했던 당시, 죽음 이후 또 다른 삶을 위한 재생과

부활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라인의 음악과 춤

 

 

현악기의 수수께끼

 

토우가 연주하고 있는 현악기를 신라 사람들은 무엇이라 불렀을까요? 

나해이사금(재위 196~230)과 자비마립간(재위 458~479) 때 "금을 연주했다는 기록은 5세기

후반 토우가 만들어질 당시 신라에 여러 종류의 현악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가야 사람인 우륵이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건너온 것은 그보다 나중인 6세기의 일입니다.

 

새로운 관악기의 발견

 

신라의 관악기 토우 가운데 관이 긴 것은 장적과 유사하고,

짧은 것은 훅과 같은 악기로 추정됩니다.

토우에 표현된 관악기 연주방법 가운데 손으로 악기 끝을 막듯이 잡고 부는 방법과

한 손으로만 악기를 잡고 부는 방법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손으로 부는 악기는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신라의 관악기

"가"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추정됩니다. 

 

공연 예술의 향연

신라에는 왕마다 대표하는 가무악이 있었습니다.

유라이사금(재위 24~57) 때 만들어진 신열악은 현악기, 춤, 노래가

결합된 궁중의 공연예술이었습니다.

신라 토우에도 이러한 구성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공연예술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듯한 토우도 볼 수 있습니다. 

가면을 쓴듯한 토우를 보면 마치 신라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시"

다섯 수 중 "대면"에 등장하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춤추는 여인 토우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남쪽 무덤)

 

 

 

토우장식 그릇 받침 조각(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북쪽 무덤)

 

 

토우장식 긴목 항아리 조각(신라 5세기 황남동 유적)  

 

 

경주 황남동 유적 토기에 표현된 다양한 무늬들  

 

원*파상, 원*타래, 원점*타래, 원*삼각집선, 원점*X자, 원점*사격자,

원점*평행집선, 반원* 평행집선. 삼각집선*X자, X자*사격자, 삼각집선* 사격자

 

여러 가지 조합을 이루어 표현되었고, 선으로 그림을 새긴 그릇도 발견되어

당시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신라의 복식

 

절풍형 모자와 조우관 

 

절풍형 모자는 삼국시대에 공통적으로 착용했던 우리의 모자입니다. 

토우의 옆면에서 봤을 땐 반원 모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절풍"과 유사합니다.

새깃털을 장식힌 모자를 "조우관:이라고 합니다.

끝이 부러져 있지만, 깃털이 장식된 조우관을 쓴 토우가 있습니다.

그림에서도 조우관을 볼 수 있습니다. 

 

 

좌) 토우장식 그릇받침- 긴목 항아리(삼국 4~5세기 부산 복천동 32호 무덤)

 

우) 토우장식 그릇받침 항아리(삼국 5세기 부산 복천동 11호 무덤)

 

 

좌) 동물의 행력 그림을 새긴 굽다리 긴목 항아리 (신라 6세기 경주 쪽샘지구 B18호 무덤)

 

우) 활을 들고 말 탄 사람 그림을 새긴 뚜껑(신라 5세기 경산 임당 7A2호 구덩이)

 

 

여자와 남자 토용

 

 

확대한 남자 토용

 

 

신라 사람들 토용

 

 

소와 수레 토용(통일 신라 7~8세기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

 

 

상형토기와 토기장식 토우, 그 이후

 

신라는 6세기에 들어와 중앙집권적 지배체제가 강화되면서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업보에 따라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는 "윤회"의 불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 거대한 무덤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후 한 무덤에 다시 추가로 매장할 수 있는 돌방무덤이나

화장한 뼈를 담은 그릇이 유행했습니다.

껴묻거리를 성대하게 묻는 전통도 자취를 감추고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 역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무덤에서 죽은 이를 기리는 것은 토용으로 계속됩니다.

토용은 그릇이나 장식이 아닌 독립된 상입니다.

당시 신라에 도입된 관복제에 따라 신분의 차이가

옷차림에 나타나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지키는 사람 토우(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 유적)

 

얼굴에 천을 덮고 있는 주검 앞에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모습으로 미루어 어머니와 자식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토우의 또 다른 이름은 "신라의 피에타"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신라 토우에 표현된 누군가를 향한 애틋함이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 집니다.  

 

 

 

무덤 속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었다는 것을, 삶의 또

다른 이어짐,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