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국립중앙박물관 2023.7.26)

2023. 7. 28. 23:05나의 이야기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관 3층

 

고대 그리스·로마실을 신설하고 2023년 7월 15일부터 전시

 

 

신화의 세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라티어권에서 신화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뮈토스"에서 유래했는데,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자연을 움직이는 막강한 힘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리스 사람들은 신의 분노, 신들의 싸움,

영웅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물리적 세계와 사물의 기원을 파악하려고 했다. 

다시 말해 신화는 인간 나름의 세계에 대한 해석이었다.

물론 신화의 바탕에는 역사적 사건, 고대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가치가 담겨 있다.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이나 인간인 라피타이족과 반은 인간,

반은 말인 켄타우로스의 싸움과 같은 이야기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함께 공유했던  지식과 이야기들은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응집력을 강화했다.

신전, 도서관, 체육관,극장에서 신화의 내용을 시각화한 예술품이나 공연, 문학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사람들의 옳고 그름의 기준과 삶의 기준에 대한 답을 신화에서 구했다.

이렇듯 신화는 그리스인과 로마인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멧돼지 머리 모양의 술잔

 

(점토 아테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아이기나 섬 출토)

 

그리스에서는 남성들이 모여서 술과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회가 자주 열렸다.

그리스 사람들은 포도주를 희석하지 않고 마시는 것은 야만인의

풍습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물과 섞어 마셨다.

포도주 잔은 주로 점토, 금속, 유리로 만들었는데 멧돼지 모양을

한 이 검은색 잔은 점토로 만들었다.

바닥에 닿는 멧돼지 머리에서 위쪽으로 비스듬하게

들려 있는 목 부위가 잔의 입구이다.

멧돼지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송곳니

2개를 드러내고 있지만 온순한 인상이다.

당시에는 동물이나 인물 모습을 본뜬 잔이 인기가 높았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초상

 

(대리석 로마,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로마의 장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을 비롯하여 여러

정복 전쟁에서 연달아 이겨 큰 권력을 얻었지만 귀족들이 그를 경계하여

56세였던 기원전 44년 원로원에서 살해되었다.

이 작품은 갑옷 위에 망토를 걸친 카이사르의 머리부터 가슴까지를 조각한 흉상이다.

머리숱이 적고 입술은 굳게 다물었으며 콧날은 우뚝 솟았다.

눈가에 주름이 잡혀 있으며 뺨이 꺼져 있어 나이가 든 모습이다.
이와 같은 초상 조각은 존경하는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만물의 시작과 끝과 중간을 손아귀에 쥔 신

 

(청동상 중공식 주조 로마, 1~2세기 후대에 왼팔 추가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제우스는 날씨를 비롯한 하늘의 힘을 통제하는 최고의 권능을 가진 신이다.

오른손에 든 번개 다발은 이 힘을 상징한다.

왼손에는 원래 왕홀을 들었을 것이다.

제우스는 로마 신화에서 유피테르로 불렸다.

이 유형의 상은 그리스 시대 제우스상을 모델로 하여 로마 시대에 만들어 진 것이다.

이런 작은 크기의 청동상을 성소에 봉헌물로 바치거나 가정의 제단에 두고 섬겼다. 

  

 

유피테르를 새긴 카메오

 

(옥수제 카메오 로마, 기원전 1세기~ 기원후 1세기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제우스 또는 유피테르는 보통 풍성한 곱슬머리와 턱수염이 난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유형의 얼굴은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다.

작은 돌을 세밀하게 조각해 만드는 카메오 제작 기술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특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다.

주로 반지같은 장신구로 카메오를 착용했다. 

 

 

신들의 왕

 

(대리석 흉상 로마, 1~2세기 후대의 코와 가슴,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그리스 . 로마  신화도 천지창조 이야기로 시작한다.

태초의 카오스 이후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태어나고 이후 수많은 신들이 탄생했다.

여러 세대를 가치며 신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이는 신들의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이어졌다.

제우스와 형제, 자매들은 아버지 크로노스 세대에 도전하여

투쟁한 끝에 제우스가 최고의 권좌에 올랐다.

제우스는 형제, 자매들과 권력을 나누고 자식들을 협력자로

삼아 올림포스 12신 체제를 안착시켰다.

 

 

1.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

2. 신들의 회합

3. 아테나의 탄생

4. 올빼미(아테네와 아테나의 상징)

5. 아테나와 헤라클레스

6. 디오니소스와 추종자들

 

 

로마 등잔에 묘사된 신

 

로마 등잔에 사용한 점토 등잔으로 윗면의 원형 구획 안에는 다양한 신과

동식물, 일상생활 장면이 묘사되었다.

등잔에 묘사된 신들의 모습은 그리스의 도상적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로마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물품이니 만큼  신들은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고 숭배되었다. 

 

 

그리스 로마의 청동상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청동은 돌과 더불어 상을 제작하는 데 많이 쓰인 재료였다.

청동은 흘러내리는 머리다발과 같은, 돌로는 구현할 수 없는 표현을 할 수 있었고, 더 역동적인

자세를 취해도 석상보다는 잘 버텼기 때문에 장인들은 청동을 선호했다.

청동상은 밝게 감입한 눈동자나 입술과 강렬한 색 대조를 이루어 채색을 했던

대리석상과는 다른 미감을 선보였다. 

 

1. 사냥과 초목의 여신 디아나(이에 대응하는 그리스의 신은 아르테미스) 

2. 상업과 도둑의 신 메르쿠리우스(왼손에 전령의 지팡이와 오른손의

돈주머니는 상업과 도둑의 신을 나타냄) 

3. 발 빠른 메리쿠리우스(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에 해당하며

인간에게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

4.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포르투나의 본성은 양면적)

5. 양치기의 신 파우누스(반인반수 모습을 한 양치기의 신)

        

 

(좌측) 아모르와 함께 있는 베누스

 

(대리석 전신상 로마, 2세기 후대에 베누스의 왼손 집게손가락 끝, 

아모르의 왼쪽 날개와 왼팔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는 허리 아래에만 옷을 살짝 걸친 채

오른손으로 한쪽 가슴을 가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숙한 베누스"라고 불리는 자세로, 목욕을 위해 완전히 옷을 벗기 전에

옷 끝자락을 잡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녀의 아들인 아모르가 베누스를 바라보면서 나무 열매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 있다. 

왼손에는 뒤에 있는 직육면체의 제단에 불을 붙일 횃불을 들고 있다.   

 

(우측) 의술의 신 아이스쿨라피우스

 

(설화석고 전신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받침대와 다리 아랫부분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뱀이 휘감은 지팡이에 기대어 선 인물은 의술의 신 아이스쿨라피우스이다.

기원전 5세기부터 급속히 인기를 얻었다.

그리스에서는 아스클레피오스라고 불렸는데, 그를 모시는 성소에는 치유와 요양을

바라는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치유가 필요한 신체 부위 모양의 봉헌물을 바쳤다.

이 상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조각에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설화석고로 만들어졌다.

신전에 바치는 봉헌물 또는 로마식 공공목욕장의 장식물이었을 것이다.   

 

 

그리핀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대리석 전신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발과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그리핀의 머리와 스핑크스의 몸이 결합한 혼종 동물의 상이다.

그리핀은 일반적으로 날개 달린 사자의 몸으로 묘사되는데, 이 상처럼

여성의 가슴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된 경우는 드물다. 

언제, 어떠한 이유로 두 동물이 결합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스핑크스와

그리핀은 모두 죽은 자를 수호하는 신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켄타우로스

 

(대리석 두상 헬레니즘시대, 기원전 2세기~ 기원전 1세기

그리스 로도스 섬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반은 인간, 반은 말인 켄타우로스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 존재로, 야생성이

두드러지는 겉모습과 달리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다.

이들은 신화에서 영웅 헤라클레스의 적수로 나오지만, 학문에 깊이가 있는

인자한 학자나 스승으로도 등장한다. 

이 두상은 원래 인간의 상반신에 말의 몸을 한 전신상의 일부였을 것이다

 

 

(좌측) 부리에 뼈를 물고 있는 그리 핀

 

(적회식 오이노코에 캄파니아, 기원전 4세기 중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날개 달린 사자의 몸에 맹금의 머리를 한 신화적 동물인

그리핀이 주전자에 크게 그려져 있다.

글핀은 고대 서아시아 문화에서 온 것으로, 그리스인들은 그리핀을

디오니소스나 아폴론의 수행동물로 여겼다.

부리에 물고 있는 뼈는 그리핀이 죽음의 신령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무덤의 수호자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앙) 그리핀 머리 모양의 리톤

 

(적회식 리톤, 이탈리아 남부, 기원전 4세기 빈미슬사박물관 소장) 

 

뿔 모양의 술잔인 리톤은 고대 서아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문화권으로 수입되었다.

주로 축제의 성격을 띤 연회인 심포시온과 종교 제의에서 사용되었다.

종종 동물의 머리 형태로 리톤을 만들었는데, 이 잔 역시 사자와 독수리가

결합한 신화 속 동물인 그리핀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우측)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적회식 레키토스 아테네, 기원전 5세기 후반 그리스 코린토스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스핑크스를 여성의 머리에

종종 유방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행인들을

잡아먹는 바람에 테바이의 시민들이 크게 두려워했다.

마침내 테바이 왕의 아들인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히자 스핑크스는

절벽에서 몸을 던졌고 도시는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좌측) 포효하는 사자

 

(대리석상 로마, 2세기. 후대에 꼬리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입을 크게 벌리고 포효하는 사자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상이다.

고대에 사자는 강인함과 용기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헤르클래스에게

제압되는 네메아의 사자처럼 신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사자는 수행 동물로서 신들과 함께 하기도 했는데,

특히 바쿠스 신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한다.

사자들이 그리스에 실제로 서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자를 직접 보고

사자의 형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측) 곤봉을 든 헤르클래스와 아들 텔레푸스

 

(대리석 전신상 로마, 150~250년 루마니아 메하디아 지구에서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신과 영웅은 흔히 나체로 표현되었다.

이 헤르클래스 상도 나체에,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은 자세로 서 있다.

왼팔로 아들 텔레푸스를 안고 오른손으로는 상징물인 곤봉을 잡고 있는데,

에우리스테우스 왕이 내린 열두 과업 중 첫 번째 과업에서 이 곤봉을 사용했다.

헤르쿨레스는 이 곤봉으로 네메아의 사자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천하제일의 장사 헤르쿨레스

 

(청동상 중공식 주조 근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상에서는 헤르클래스를  최고의 장사다운 근육질의 몸매로 묘사했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상을 제작하는 데 이용된 중공식 주조법은 통주식 주조법과 함께

고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주조 기술이다.

기술적으로 더 복잡했지만  속이 비도록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값이 비쌌던 재료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았었다. 

 

 

(좌측) 네메아의 사자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흑화식 칼피스 아테네, 기원전 5세기 초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와 싸우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물항아리이다.

네메아의 골짜기에 사는 사자가 사람들과 가축을 해쳐서 원성이 높았는데,

보통의 무기로는 사자의 가죽을 뚫을 수 없었다.

이 그림에서 헤라클레스는 몸을 던져 사자를 땅에 누르며 씨름하고 있다.

사자의 입은 벌어지고 혀는 늘어졌다.

이야기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보여주기 위해 사자의 앞모습만 화면에 담았다. 

 

(우측) 히드라와 싸우는 헤르쿨레스

 

(토제 등잔 로마, 1세기 전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등잔 윗면에 헤르쿨레스가 히드라와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히드라는 레느라의 늪에서 사납게 날뛰던 물뱀으로, 히드라를 제압함으로써

헤르쿨레스는 열두 가지 과업 가운데 하나를 이루었다.

이 등잔에서 헤르쿨레스는 자신의 발을 공격적으로 휘감고 있는

히드라를 움켜 잡고 곤봉을 휘두르려 한다.  

 

 

 

쌍둥이 신 디오스쿠리

 

(청동상,  통주식 주조 로마, 1~3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디오스쿠리는 "제우스의 아들들"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디오스쿠로이에서

온 말로 쌍둥이 형제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말한다.

신화에서 이 형제는 흑해의 콜키스에 있는 황금 숫양의

모피를 찾아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이 상은 형제 중 한 명으로, 왼팔의 자세로 보아  원래는

수행동물인 말이 나란히 있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검과 창, 끝이 뾰족한 모자가 디오스쿠리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임무를 받아 떠나는 트립톨레모스

 

(적화식 히드리아 아테네, 기원전 5세기 중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농경과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가 엘레우시스 왕의 아들인 트립톨레모스에게 경작 기술을

가르친 뒤 사람들에게 곡식 재배법을 전하라는 임무를  부여한다.

이 도기의 그림에서 제의용 대접과 홀을 들고 날개 달린 전차에

앉아 있는 청년이 트립톨레모스이다.

왼쪽에는 장식이 있는 관을 쓰고 홀을 든 데메테르가 있고, 오른쪽에는

데메테르의 딸이자 지하세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가 있다.

  

 

아테나/미네르바

 

(대리석 흉상 로마, 기원전 430년 그리스 원작의 1~2세기 복제작. 16~17세기에

가슴과 받침대, 머리카락 끝, 코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상의 머리 부분은 머리카락이 길고 투구를 머리에 얹은 듯한 형태로,

이는 전략에 능한 전쟁의 여신을 나타낸다.

기원전 430년에 만든 그리스 원작을 로마 시대에 복제한 작품이다.  

가슴 부분에는 후대에 덧붙인 아이기스가 있는데, 이는 염소 가죽으로

만든 일종의 마법 방패 또는 흉갑을 뜻한다.

아테나는 아테네의 수호신이며,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도 기원전

5세기에 아테나를 위해 세워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 

 

(대리석 토르소상 로마, 1~3세기 튀르키에 에페소 출토.

후대에 오른쪽 가슴복원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토르소만 남은 이 상은 사랑의 여신 베누스가 욕조에서 나오는 순간을

나타낸 것으로, 몸의 일부만 가운으로 덮여 있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유명한 아프로디테의 누드 조각상을

만든 이후로, 아프로디테(베누스)는 보통 누드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신체에 대한 숭배와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고대 그리스에서

조각상을 만들 때 중요한 주제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선함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가니메데스 또는 파리스

 

(대리석 전신상 로마, 1~2세기 18세기에 머리, 지팡이가 있는 오른팔,

오른쪽 다리와 왼손 손가락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신화에 등장하는 가니메데스 또는 파리스로 추정되는 상이다.

유피테르는 목동이었던 가니메데스에게 반해 독수리로 변하여 그를 신들의 거처인

올림프스산으로 납치한 뒤 술을 따르는 시종으로 삼았다.

한편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그리스 미녀 헬레네를 납치하여 그리스와 트로이의

신화적 전쟁이 일어나게 만든 인물이다.

이 내용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기록되었다.

 

 

유피테르의 변신 이야기

 

(대리석상 로마, 1~2세기 16세기에 머리, 발톱, 뱀 추가 빈미술사 박물관 소장)

 

털을 곤두세우고 날개를 펼친 독수리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독수리는 유피테르의 수행 동물인데,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유피테르는 자신이 탐내던 청년 가니메데스를 납치하기 위해 독수리로 변신한다.

이렇듯 신들은 종종 동물로 모습을 바꾸어 인간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독수리의 발을 감고 있는 뱀은 르네상스 시대에 추가되었으며, 악을 이기고

선이 승리한다는 의미를 더해 준다. 

 

 

유피테르일까 바쿠스일까

 

(대리석 두상 로마, 1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굵은 곱슬머리와 수염으로 보아 유피테르로 추정되지만 바쿠스일 수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항상 신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여

얼굴만으로는 신의 이름을 명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을 통제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번개창 같은 상징물을 들고 있다면

유피테르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이러한 상이 성소에서 발견된 경우 어떤 신에게 바친 장소인지가

상의 주인공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살레누수와 마이나스

 

(대리석 양면 헤르마 로마, 1~2세기 후대에 코와 하단 모서리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헤르마는 몸통을 상징하는 기둥 위에 정교하게 조각한 두상을 올린 고대 조각의 한 형태이다.

로마시대에는 두 개의 초상 조각을 맞붙인 양면 헤르마로 빌라를 호화롭게 꾸몄다.

이 헤르마에는 바쿠스 신의 무리인 살레누스와 마이나스의  얼굴을 앞뒤로 조각했다.

반은 인간, 반은 짐승인 살레누스는 동물적 본성에 따라 야수의 표정을 보여준다.

긴 곱슬머리의 마이나스는 바쿠스의 추종자로, 격정적이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젊은 사티로스

 

(대리석 흉상 로마, 헬레니즘 시대 원작의 2세기 복제작 18세기에

가슴과 원형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바쿠스의 주변 인물들은 로마 제정기에 매우 인기 있는 주제여서

성소뿐만 아니라 사적인 공간에도 이 상을 설치했다.

이 무리는 원초적이고 자유분방하며 포도주를 즐기는 바쿠스의 세계를 대변한다.

이 작품은 반은 인간, 반은 짐승인  사티루스의 특징을 세세하게 표현했다.

앞머리 경계에 두 개의  작은 뿔이 돋아 있고, 말처럼 길고 끝이 뾰족한 귀가

달려 있으며, 목에는 염소에게서 보이는 두 개의 혹이 있다.  

 

 

바쿠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술의 .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Dionysos)

 해당하며 영어 이름은 바커스(Bacchus)’이다.

 

 

헤카테의 경고

 

(대리석 부조 로마, 2~3세기 크로아티아 솔린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종교는 점점 미신이나 주술과 결합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기도 했는데

마법과 주술의 여신인 헤카테가 바로 그런 예이다.

어떤 장소를 더럽히지 못하게 하려는 라틴어 명문이 이를 잘 보여준다.

" 이 구역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거나 용변을 보지 않는 자에게는

그녀(헤카테)가 자비로울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부주의하여 그런 일을

벌인다면 무슨 일을 겪을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헤카테는 보통 서로 등을 맞댄 채 서있는 세명의 여신으로 표현되어,

여섯 개의 손에 위협의 표시로 뱀과 칼을 들고 있다.

그녀는 마법과 주술의 신이면서 교차로의 여신이기도 했다.   

 

 

봉헌 제의 

 

 

취한 자들의 행렬과 작별

 

 

제의에 사용한 용기

 

 

아모르와 함께 있는 베누스

 

(대리석 전신상 로마,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 헬레니즘 시대 원작의 복제작

오스트리아 비루눔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정숙한 베누스" 유형의 작품으로 왼손으로는 음부를,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가린 채

  목욕을 위해  완전히 옷을 벗기 전에 옷 한쪽 끝자락을 잡고 있다.

여신의 왼쪽 어깨와 몸 뒷면에는 본래 여신에게 기대고 있었을 아들

아모르의 작은 손과 몸 일부가 남아 있다.

고대에 수없이 복제되고 변형된 이러한 유형의 조각상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에서 유래했다.  

 

 

이상적 신체 비례의 탐구

 

(대리석 토르소상 로마,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원작의 1세기 복제작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현재 토르소만 남은 이 청년의 누드상은 로마 제정 시대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형의 조각상은 비슷한 복제작이 여럿 전해져 내려온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그리스 고전기의 유명한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제자가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든 청동상이 원작이었을 것이다.

폴리클레이토스의 대표작은 "도리포로스"라 불리는 창을 든 남성 청동상이다.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그리스 청동상의 대리석 복제작을 진열하는 것은

로마 제국에서 유행하던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남성의 신체

 

아프리카계 인물의 어두운 피부빛을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색의 돌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등이 크게 휘어 있고 오른팔이  왼쪽 어깨를 잡고 있으며 왼팔이 뒤쪽을 향하는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등의 구멍은 본래 조각을 구성하던 다른 부위와 연결하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히 어떠한 형태였는지는 왼팔과 마찬가지로 현재 재구성이 불가능하다. 

비숫한 상과 비교해 볼 때 이 상의 주인공은 짐꾼, 하인 또는 죄수로 추정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석고두상 근대,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원작의 1~2세기 대리석 복제작을

본뜬 석고상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리스 미술에서는 작품에 인물의 내면 상태나 정신적 가치를 표현하려고 했다.

현명한 철학자, 결단력 있는 사령관, 존경받는 정치인 등을 묘사하던 그리스 조각상은 후대로

갈수록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표현 방식이 변화했다.

그 초기의 사례로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표현한 두상이 있다.

푹 꺼진 뺨.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기민하고 에너지 있는 모습이 표현된 이 작품은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주문으로 조각가 리시포스가  만든 조각상에 원형을 두고 있다. 

 

 

철학자 또는 이방인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후대에 코끝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조각상에는 인물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헝클어진

머리모양, 정돈되지 않은 외모, 곁눈질하는 시선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이 조각상을 야성적인 이방인으로 보았지만

이후에는 철학자로 보는 시각이 대두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두 집단이 표현하는 도상이 서로 비숫하기 때문이다.

정돈되지 않은 모습은 이방인의 미개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철학자 등

지식인이 온전히 정신적인 삶에만 몰두한 모습을 의미하기도 했다.

 

 

라오콘

 

(대리석 두상 고대 그리스. 로마 원작의 16~17세기 복제작 빈미술사박물관소장) 

 

이 두상은 유명한 서양 조각상인 라오콘상의 바로크시대 복제작으로 트로이 사제 라오콘과 두 아들이

아폴론이 보낸 두 마리의 뱀에게 공격받아 결국 죽임을 당하는 극적인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16세기 초 로마에서 라오콘 상이 발견되면서 근세 유럽 사회에 고대 조각에 대한 관심과

열광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복제작이 만들어졌다.

작품 전체를 복제하지 않고 이 두상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부분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은 상의 얼굴에 나타나는 파토스, 즉 고통이나 슬픔의 감정 표현에 매료되었다.

 

 

사포와 에린나

 

(대리석 양면 헤르마 로마, 2세기 초 18세기에 원형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막물관 소장)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기원전 610년?~기원전 570년경)와

에린나(기원전 4세기 활동)로 추정되는 초상을 맞붙인 양면 헤르마이다.

이 상은 그리스 조각상을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변형하여 수용하던 로마인들의 방식을 잘 보여 준다.

특히 1~2세기 로마의 상류층 저택에 세워진 양면 헤르마는 문학과 철학, 종교적 주제 안에서 서로

관련 있는 역사적 인물과 신화적 인물을 서로 맞붙여 조각하여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통해 그리스 문화에 대한 집주인의 폭넓은 지식을 과시할 수 있었다.  

 

 

사포와 에린나의 얼굴 형상

 

 

수염 난 남성의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초상 조각의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황실 일원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시민이었을 것이다.

이 조각상에 보이는 풍성한 곱슬머리와 수염은 안토니누스 왕조(138~193년) 때 유행했던

것으로 올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기원전 27년~기원 후 68년) 때 많이 보이는

단정하고 짧은 머리 모양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황제와 황실 초상에 보이는 특정한 표현 방식을 일반 시민들도 그대로 모방하곤 했다.

이러한 두상은 전신상이나 흉상의 일부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제의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후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남성의 초상은 가운데가 갈라진 제멋대로 자란 턱수염과

짧고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이 특징이다.

머리에는 담쟁이넝쿨관을 썼다.

이마 위로 메달리온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달 모양의 부적이 있다.

남성의 외모는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콤모두스 황제(재위 180 ~192년)를 연상시키지만,

메달리온이나 담쟁이넝쿨 관은 황제 초상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소재이다.

따라서 재현된 인물은 사제와 같이 종교 제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토가를 입은 남성의 초상

 

(대리석 전신상 로마, 1~2세기 후대에 왼손, 오른팔, 코, 세 골,

옷주름 일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로마의 전신상에서 신체와 옷에는 일정한 유형이 있어 주인공의

신분과 상의 성격을 전달하는 기능을 했다.

후기 공화정기에 토가를 입은 모습의 상은 주인공이 로마의 시민이라는 뜻이다.

군장을 갖추거나 짧은 망토를 입으면 관료이거나 군인이다.

누드나 세미누드상은 초월적인 존재를 나타냈다.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제1 시민"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었던 로마 황제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시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들은 극장이나 분수 등 공공건축을 짓는데 기여한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귀부인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130년 이후 18세기에 코, 뒤통수, 귀,  가슴과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묽관 소장)

 

존경받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높은 사회적 명망을 누렸던 로마 귀부인

초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상이다.

눈가와 입가, 미간에 노화의 징후가 엿보이지만 품위를 잃지 않은 모습이다.

머리 모양은 당대에 유행했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머리카락을 땋아  터번처럼 머리에 두르는

이러한 스타일은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재위 98~117년) 황실 여성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시대마다 다른 머리 모양은 로마 제국의  남녀 초상 모두에서

연대를 확인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카라칼라 황제의 스타일로 묘사된 남성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3세기 후대에 코, 가슴 부분, 밥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반세기 이상 풍성한 수염과 머리 모양을 선보였던 황제의 초상은 카라칼라 황제

(재위 211~217년) 때 그 형상이 급격히 달라진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아들인 카라칼라는 공동 통치자였던 남동생 개티를

잔인하게 살해한 후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그의 공식 초상은 이 남성상처럼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촘촘하게 덮인 머리 모양과

짧은 수염, 분노가 꿇어 오르는 듯 눈썹과 미간을 찌푸린 표정을 특징으로 한다.

 

 

고위 관리 또는 시민의 초상

 

(청동상의 얼굴과 손. 로마, 2세기 중공식 주조, 금도금.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얼굴과 손은 로마제국의 고위 관리나 시민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금동 전신상의 일부이다.

손가락 가운데 검지, 중지, 약지와 육중한 크기의 반지가 남아 있다.

남성의 얼굴은 깊은 주름과 아래로 처진 입가가 특징이다. 

눈의 윤곽선이 선명하고, 눈동자는 심지어 반짝거리는 효과를 내는 작은 부분까지 표현했다.

금도금이 된 전신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문헌 기록에는 남아 있다.

그중 상당수는 기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3세기 초. 후대에 코끝과 가슴, 둥근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재위 193~211년)는 아프리카의 로마 속주였던 렙티스 마그나 출신으로,

오늘날의 이란 지역에서 세력을 크게 확장하던 파르티아와 싸워 승리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개선문이 지금도 로마의

중앙 광장인 포로 로마노에  남아 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초상은 풍성한 곱슬머리와 턱수염이 특징으로

곱슬머리 가닥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2세기 후반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지금은 두상만 남아 있지만 조성 당시에는 관례대로 흉상이나 전신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얼굴의 골상학적 특징이나 곱슬머리, 수염이 오른쪽에 놓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초상과 닮았다.

통치자의 특징을 로마 제국 전역에 전파해 일관된 모습으로 초상을

조각하던 관습을 이 두 개의 초상이 잘 보여준다.

눈동자의 자리를 파내 모양을 만들었고, 눈꺼풀은 살짝 처져있다.

이러한 초상 조각에 채색을 하여 제국 전역 로마인들에게 황제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했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161~180년. 후대에 의복의 장식용 핀과 오른쪽 어깨,

원형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년)는 철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그리스어로 쓴 "명상록" 때문에 철인 황제로 불렸다.

그의 초상은 굵고 곱슬곱슬한 머리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수염,

튀어나온 큰 눈, 처진 눈꺼풀이 특징이다.

황제의 초상에는 특정한 가치를 전달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 있다. 

이 초상은 성찰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강조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을 보면 결코 과장은 아니다.

 

 

하드리아누스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117~138년 후대에 가슴과 둥근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년) 통치기는 대체로 평화로웠고 황제가

특히 그리스 문화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초상 조각은 수염이 있고 섬세하게 치장한 머리가 특징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선보여

네로시대(재위 54~68년)나 폴라비우스왕조(재위 69~96년)의 화려한 머리 모양을 재유행시켰다.

하드리아누스 시대 이후로 남성 초상에서 빠지지 않는 표현 요소가 되었다.

이 상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갑옷을 입고 사령관의 망토인 팔루다멘툼을

두른 뒤 화려하게 장식한 핀으로 오른쪽 어깨에 고정했다.  

 

 

드루수스의 초상

 

(대리석 두상 로마, 1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아들인 작은 두르수스(기원전 15년~기원후 23년)를 표현한 두상이다.

짧고 곧은 단정한 머리카락, 낫 모양의 둥근 앞머리, 수염 가닥들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윗입술이  약간 튀어나온 좁은 입이 특징이다.

원래의 채색이 남아 있었다면 눈이 한층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황제의 친척을 위해서도 공식 초상을 제작했는데, 가족 관계인 이들의 초상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드루수스는 승계를 앞두고 경쟁 세력에게 암살당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초상

 

(대리석 흉상 로마, 기원전 1 세기~기원후 1세기. 15세기에 코와 가슴, 받침대 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로마장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년~기원전 44년)는 갈리아 전쟁을

비롯한 여러 정복전쟁의 공적과 원로원에서 살해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로마시대에 제작한 두상을 르네상스 시대에 고풍스러운 흉상으로 보완한 것이다.

두상은 카이사르가 죽은 뒤에 만들어진  초상 유형이며 수척한 얼굴이 특징이다.

이 초상 조각은 개인의 얼굴 특징이 거의 보이지 않은 신격화된 모습의

"디브스 율리우스(율리우스 신)"상이다. 

 

 

이시스 여신으로 표현된 클레오파트라 2세의 조각상

 

(대리석 전신상 헬레니즘시대 기원전 2세기 후대에 팔, 왼쪽 무릎, 왼발 받침대 앞,

오른발의 발가락, 코, 턱, 머리카락 일부추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상의 주인공은 기원전 2세기경 재위한 클레오파트라 2세로 추정된다.

그녀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뒤를 이어 이집트를 통치한 프롤레마이오스 왕조 출신이다.

바다까지 내려오는 키톤 위에 하마티온을 걸쳤는데 가슴께에

이시스 여신상에 자주 보이는 독특한 매듭이 있다.

여신상과 같은 형식을 취함으로써 여왕은 가장 위계가 높은 이집트 여신인 이시스와

동일시되었는데, 여기에는 통치권을 정당화하고 굳건히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여왕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조각상의 형식으로 말한다는 점에서

후대 로마 황제의 초상과 맥을 같이 한다.    

 

 

연회에 사용된 다양한 용기와 크라테르

 

포도주용 그릇에는 종종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인물과 상징물이 그려졌다.

이 크라테르에는 정욕에 찬 사티로스에게서 도망치는 마이나스가 있는가 하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티로스와 마이나스, 리라와  쌍피리를 연주하는 인물도 있다.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표현된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따라주는 세일레노스를 돌아보고 있다.

심포시온에서도 과음하지 않는 절제의 미덕이 강조되었지만 참석자들은 종종 취기를 빌려

사회가 부과한 엄격한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모습이 되는 자유를 누렸다.

반쯤 짐승인 것은 세일레노스뿐만이 아니었다.

 

연회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포도주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희석하지 않고 마시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여 물과 섞어 마셨다.

포도주를 담는 용기는 점토, 금속, 유리, 돌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멧돼지 모양의 잔처럼 동물이나 인물 형태의 잔이 매우 인기가 있었다.

연회에는 술과 곁들일 치즈, 올리브, 무화과, 빵, 생선 요리가 접시에 제공되었다.

 

 

기름등잔

 

지중해 지역에서 등잔은 일상생활에서 아주중요한 광원이었다.

주로 올리브유를 태웠고, 용기 몸체의 구멍으로 기름을 붓고 주둥이에 심지를 꽂아 사용했다.

기원전 1- 4세기의 페니키아와 이집트에서 사용된 두 등잔은 위가 열려 있는데,

손으로 조개 모양으로 빚어서 테두리를 접어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하나의 모델을 대량 생산하였고

바닥에 제작자의 이름을 찍기도 했다.

등잔 윗면의 원형 화면은 식물, 동물, 일상생활의 장면,

신과 영웅의 모습 등 다양한 주제로 장식했다.   

 

 

손잡이가 달린 유리 주전자 외 다양한 유리 세공품들

 

 

모자이크 유리, 밀레회오리유리, 마노유리 파편

 

※ 심포시온과 심포지엄

 

그리스어로 연회를 의미하는 심포시온은 그리스 남성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나누는 중요한 장이었다.

대화 주제, 행사 순서, 음식의 종류가 정교하게 연출되었고, 여성은 참석할 수가 없었다.

연회 참석자들은 "안드론"이라 불리는 방에 모여 담쟁이넝쿨 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디오니소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첫 잔으로 심포시온을 시작했다.

연회의 좌장은 그날 밤에 마실 포도주의 양과 희석 비율을 공표했는데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3:1, 5:3, 3:2로 다양하게 정할 수 있었다.

하인들은 크라테르에 물과 와인을 섞은 뒤 주전자로 옮겨 손님들의 잔에 따라 주었다.

음주와 대화에는 연주, 노래, 오락이 함께 했다. 

로마시대에도 "심포지엄"이란 이름으로 연회의 전통이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여성도 참석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심포지엄이 학문적인 모임이나 대규모 사업을 위한 대중 토론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나 디오니소스는 분별 있는 자들에게 세 크라테르의 술만 준비한다.   

첫 크라테르의 술은 건강을 위해, 두 번째는 사랑과 쾌락을, 세 번째에는 수면을 위한 것이다.

세 크라테르를 모두 비우면, 현명한 자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네 번째로 가면 내가 어찌할 수 없고, 품행이 나빠진다.

다섯 번째를 마시면 고함이, 여섯 번째는 무례와 모욕이 나온다

일곱 번째는 싸움이 오간다.

여덟 번째는 가구를 부순다.

아홉 번째는 구토, 열 번째는 광기와 인사불성이다.

 

- 에우불로스의 희극 중 한 부분-

 

(디오니소스 신이 심포시온의 좌장으로서 적당한 음주문화에 대하여 말하다) 

    

 

안녕히

 

(대리석 묘비 헬레니즘 시대, 기원전 2세기 후반 그리스 델로스 섬 출토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아치형 건물 안에 키톤을 입은 망자가 친척에 둘러싸여 앉아 있다.

아랫부분에 새겨진 그리스어 명문에 그가 아스클레피아데스의 아들이며,

아테네 출신이고 이름이"고르기아스"라고 쓰여 있다.

맞은편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애정을 표현하듯이 그에게 오른손을 내밀고 있다.

손을 건네는 동작은 결속을 표현으로 고대 미술에 자주 등장 하는데,

묘비에서는 작별을 고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인들이 망자와의 이별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렇듯 침착하고 담담했다.   

 

하데스로 가는 문

 

(대리석 묘비 로마, 3세기 티르키에 마르마라 에레일리시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망자의 초상을 새긴 그리스. 로마 시대의 많은 장례 기념물과 달리

이 묘비에는 문 형태의 건축물울 표현했다.

계단을 세 개 오르면 아름다운 문양띠로 장식된 문에 이르는데

이 문은 지하 세계인 하데스의 입구를 상징한다.

문 위의  그리스어 명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함께 다른 사람이 무덤을

차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과 관련 벌금이 적혀 있다.

마지막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적혀 있다.   

 

 

루키우스 아틸리우스 글라브리오의 유골함

 

(대리석 유골함 로마 3세기 이탈리아 로마 출토 추정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이 유골함의 표면은 다양한 잎사귀 장식으로 덮여 있는데, 위쪽에는 월계수와

꽃 넝쿨이 아래쪽에는 아칸서스 잎이 보인다.

양옆으로 로마 신 유피테르와 이집트 신 아몬이 결합하여 토착화한 유피테르-아몬의 머리가 붙어 있다.

유피테르의 곱슬곱슬한 턱수염과 아몬의 숫양의 뿔이라는 각 신의 독특한 도상을 명확하게 묘사했다.

네모난 구획 안에는 망자 루키우스 아틸리우스 글라브리오의 이름이 라틴어 문자로 새겨져 있다.    

 

 

율리아 베라의 유골함

 

(대리석 유골함 로마, 1~2세기 이탈리아 로마 출토 추정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무덤 제단 모양을 한 로마 시대의 유골함이다.

뚜껑에 있는 장미 모양 장식 사이에 "타이니아"라는 끈 달린 화환이 있다.

실제로 천으로 타이니아를 만들어 장식하기도 했다.

옆면에 새긴 단지와 접시는 모두 죽은 이를 기리는 의례에 사용하던 물품으로,

이 유골함에 경건함을 더한다. 

라틴어 비문에 따르면 이 유골함은 18세에 사망한 율리아 베라를 위해 그의 부친이 마련한 것이다.

명문은 초상과 더불어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는 수단이었다. 

 

 

다섯 사람의 흉상이 있는 묘비

 

(석회암 묘비 로마, 1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 출토 빈미술사 박물관 소장)

 

건축 모형안에 다섯 사람의 흉상을 위아래 2단으로 배치한 묘비이다.

얼굴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여기서는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죽은 이의 성별과 나이를 알아보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상단의  왼쪽 남성과 가운데 여성은 서로 손을 잡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서

결속을 의미하는 동작으로 이 둘이 결혼한 부부임을 나타낸다.

모두 전형적인 로마인 옷차림인 튜닉과  멋스러운  토가를 입었고, 당대 최신식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소년의 관

 

(대리석 석관 파편 로마, 2~3세기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일부분만 남은 석관 가운데에 튜닉과 망토를 입은 소년을 묘사한 둥근 방패 "클리페우스"가 있다.

클리페우스를 든 두 인물은 로마인들이 특정 인물이나 장소를 보호한다고 믿는 일종의 수호신이다.

메달 속 소년의 오른쪽 귀 뒤로 "호루스의 머리"라고 불리는 묶음 머리가 보인다.

어린이를 묘사한 이 도상은 이집트에서 유래했다.  

이로써 죽은 아이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의 보호를 받는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신들과 마찬가지로 이시스에 대한 숭배도 로마제국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남매의 무덤 부조

 

(석회암 부조의 파편, 팔미라 지역 제작, 2세기 전반 시리아 팔미라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오는 날의 시리아 팔미라에서 출토된 무덤 부조이다.

1세기에 로마제국에 편입된 팔미라는 동서교역을 통해 번영한 오아시스 도시였다.

팔미라 사람들은 탑 또는 신전 형태의 구조를 갖춘 대형 무덤을 짓고

망자의 모습을 새긴 판으로 무덤 입구를 막았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부조 속 망자는 에디벨이라는 남자의 아들과 딸이다.

여성이 찬 화려한 보석은 로마시대에 유행하던 형태이며 손에 든 실패와 물렛가락은

그녀가 덕망이 있는 정숙한 여성이었음을 드러낸다. 

 

 

보드게임의 고수, 편히 잠드소서

 

(석회암 유골함, 로마 1~2세기. 이탈리아 북부 출토,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작은 신전 형태를 한 이 유골함은 화려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유골함의 한쪽 면에는 보드게임을 하는 망자가 조각되어 있고, 반대쪽에는 솔방울이 달린

지팡이(티르소스)를 든 바쿠스가 아내 아리아드네와 침상에 있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보드게임은 고대에 인기 있던 놀이로, 유골함에 이 장면을 새긴 것은

망자의 실력이 좋았음을 알려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부조 속  건물과 옷, 각종 소품에는 원래 채색을 했을 것이다. 

    

 

신과 함께

(로마 1~2세기 대리석 석관. 빈미술사박물관 소장품)

 

날개가 달린 사랑의 신 이모르가 클리페우스라고 부르는 크고 둥근 명패를 들고 있다.

여기에 본래 망자의 이름을 물감으로 적었을 것이다.

석관 앞면의 왼쪽과 오른쪽 끝에도 이모르가 연인 프시케와 함께 나타난다.

이모르와 프시케의 이야기처럼 신에게 사랑받아 불멸의 삶을 얻는 인간을 주제로 한 장면은

장례 미술에서 행복한 사후세계를 기원하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 밖에도 석관 앞면에 두 마리의 스핑크스를, 옆면에 두 마리의 그리핀을 장식했다.  

 

 

어린 헤르쿨레스의 상

 

(로마 헬레니즘시대 원작의 2세기 복제작, 빈미술사박물관 소장)

 

땅에 닿는 긴 망토를 두르고 왼손으로 곤봉을 잡은 어린 소년의 상이다.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묶고 머리띠를 둘렀는데 이는 로마시대에 유행하던 아이들의 머리 모양이다.

이 조각상은 헬레니즘 시대 원작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원작에는 곤봉이 없다.

로마시대에 복제작을 만들면서 곤봉을 추가한 듯하다.

헤르쿨레스의 상징물인 곤봉 덕분에 이 소년은 "어린 헤르쿨레스"로 불렸다.

로마시대에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이러한 유형의 조각상을 무덤에 두기도 했다.

 

 

소년의 초상

 

금도금을 한 소년의 청동 두상으로 죽은 소년을 기리는 초상 조각으로 보인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몸체에 끼워 본래 하나의 전신상을 구성했을 것이다.

작은 입과 통통한 볼이 어린아이 같은 이목구비를 보여준다.

머리 오른쪽 부분에 보이는 "호루스의 머리" 형태도 주인공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값비싼 도금상은 소년이 왕자와 같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