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2. 21:03ㆍ나의 이야기
오늘은 제가 두 달 살기 하면서 머물던 이반성면 정수예술촌 부근에 있는
여항산 중턱의 성전암을 찾아보았습니다.
진주시 이반성면에서도 제일 산새가 높은 곳이라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름답다고 해서 찾았는데
차로 올라가는 길은 폭이 좁고 험하였지만 제 애마가 다행스럽게도 상시 사륜인지라
그런대로 가파른 경사길은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성전암 하단부 주차공간에 주차된 애마
소원의 종
요사채
무량수전 전경
성전암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산31번지 자리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입니다.
성전암은 통일신라시대인 879년(헌강왕 5)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인조가 왕이 되기 전 외가가 있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에
등극하였으며, 암자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하여 인조각(仁祖閣)을 세워 오늘날까지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깊어 예로부터 참선 수도자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010년 큰 불이나 대웅전과 종무소, 나한전 등 건물 9개 동은 다 타버렸으나
인조대왕 위패가 있는 인조대왕각은 화재를 피했습니다.
그 후 2014년 9월 방화범에 의한 화재로 전각이 불탔으나 목조여래좌상(경남도 유형문화재 350호)을
비롯한 대웅전 삼존불 등 성보문화재는 스님들이 화재 속에서도 밖으로 이운해와 화마를 피했습니다.
무량수전에 보존된 진주 성전암 목조여래좌상(晉州 聖殿庵 木造如來坐像) 중앙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0호
성전암의 목조 여래좌상은 비교적 작은 크기의 불상으로
조선 후기인 1644년(인조 22)에 제작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로 변한 조선의 사찰은 17세기에 들어와 대부분이 재건되었는데
이 시기에 많은 수의 불상이 전국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목조여래좌상 역시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인조 재위 기간에 조성된 성전암 목조 여래좌상은 소형이지만 신체비율이
알맞고 조각수법이 우수한 불상입니다.
육계가 드러나 있지 않은 머리에 나발을 하고 있는데 불상의 머리 위에는 정상 계주가
있으며 그 앞쪽에는 반달형의 중앙 계주가 있습니다.
고개는 앞으로 살짝 숙이고 있고 상호는 방형에 가까운 타원형으로 양손은
별도로 제작해 손목에 끼워 넣었습니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오른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보이게 한 채 어깨까지 올리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한 채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수인은 아미타불의 아홉 가지 수인 가운데 하품 하 생의 손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불상은 두꺼운 통견 형태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옷 주름을 유려하게 조각하였습니다.
다리 사이에서 부채처럼 퍼져나가는 옷 주름과 왼쪽 다리를 넘어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옷 주름은 그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리의 폭이 넓고 비교적 높게 조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당당한 느낌을 줍니다.
이 불상은 복장유물을 통해 제작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인조대왕각 내부 전경(우측에 모셔진 인조대왕 지위 위패)
인조대왕각
성전암은 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로 도선은 우리나라를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 이북인 삼각산에 한 지맥이 머물렀고
남강의 물을 끼고 있는 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도선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후 절의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인조(재위 1623∼1649)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국난 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이 절은 이것을 기리기 위해 인조각을 세웠으며,
오늘날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16 나한상
여항산 중턱 성전암에서 바라다보는 진주 이반성면 전경으로 제가 머물던
숙소에서도 이 산속 사찰이 바라다 보이더군요.
이런 깊은 산속 중턱에 천년 사찰이 세워져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는 것은
이 처럼 암벽에 흐르는 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이 없었다면 이런 천년 사찰도 오랜 세월을 견디기엔 무리란 생각이.....
2010년과 2014년에 화마를 입었던 탓인지 아직도 중창 불사 중인 탓에 나한전과 산신각은
예정으로 되어 있었고 산신각은 인조대왕각에 곁방살이를.....ㅜㅜ
오봉산 등산 안내도
수국의 일종이겠지만 이런 절에 피는 꽃은 불두화란 의미로.....ㅎ
반 덕 소류지 전경
낚시가 잘되는 소류지인지 소류지 옆 농막 주인은 개인 좌대 마저
설치해 놓고 낚시에서 즐거움을 찾는 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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