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6. 15:15ㆍ나의 이야기
부사 성 선생 사적비
진주 부사정 안내판(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97호)
퇴계 이황 선생이 안동에서, 경상좌도를 대표했다면, 남명 조식 선생은
진주에서 경상우도를 대표한 유학자입니다.
이 두 분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중심이었던 영남학파의 큰 두 학맥을 정립하였는데
남명 조식 선생의 사상은 경(敬)과 의(義)로 축약되는데 특히 실천, 지행합일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문하에서 수우당 최영경, 한강 정구, 동강 김우옹, 부사 성여신 같은 문인과
의병장으로 유명한 영남의 3대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내암 정인홍, 송암 김면 장군을 비롯해
대소헌 조종도, 죽유 오운, 송암 이로 등 경상우도의 의병장들이 배출되었고, 이들은
7년 동아시아 전쟁이라는 국난을 타개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양직문 전경
부사정 전경
부사 성여신의 말년 시
人言我過我當思 (남이 내 잘못을 말하면 나는 마땅히 생각해야 하니)
有則改之無自怡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스스로 기뻐한다네)
子路喜聞能勇改 (자로(=공자의 제자)는 허물을 듣고 기뻐하며 용맹스레 잘 고쳐서)
端宜百世作人師 (바르고 마땅함이 백세에 스승이 되었구나)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은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지역사회에서 크게 활동했던 인물로
그는 안으로 ‘경敬’의 학문을 닦고 밖으로 ‘의義’의 사회적 실천을 구현하여 남명의 ‘경 의학
(敬義學)을 다시 한번 드러내었습니다.
비록 벼슬살이는 하지 않았지만, 당대의 정치,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여 불의와 부정을 질정하려 했으며 지역사회의 교화에도 노력했습니다.
또한 동약을 결성하고 교육시설을 세워 지역사회의 교화와 후진 양성에 앞장섰으며,
향토 인문지리지의 편찬을 주도함으로써 지역의 문화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합니다.
부사정 전경
부사정 현판
진주 부사정(晉州 浮奢亭)은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에 있는, 조선 선조 33년(1600) 조선 중기 문신인 부사 성여신(1546∼1632)의 제자가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로, 유학을 가르치던 곳입니다.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97호 부사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부사 정의 편액들
지은사 전경
지은사 전경
양몽재 전경
반구정 전경
지학재 전경
부사 성여신은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에 선비들이 학문을 게을리하였기에
사문(斯文)을 흥기 시키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병진년(1616, 광해군 8) 봄에 자신이 거주하는 금산리(琴山里)에 《여씨향약》 및
《퇴계동 약》을 모방하고 거기에 약간의 조항을 증감하여 시행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소학ㆍ태학의 규칙에 의거하여 양몽재(養蒙齋)ㆍ지학재(志學齋)를 설립하고
고을의 후생들로 하여금 나이에 따라 나누어 거처하며 학업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남명 선생이 일찍이 고금의 예를 참작하여 혼례ㆍ상례를 정했는데, 난리를 겪고 나서 그 예가 폐지되고
다시 불가(佛家)의 법을 따랐는데 이에 공이 “남명 선생의 혼례ㆍ상례에 세속의 고배상(高排床) 차림을
좇지 않자 혼례 때에 고배상을 차리는 것은 그래도 세속을 따를 수 있는 일이지만, 초상이나 장례 또는
소상(小祥)ㆍ대상(大祥)ㆍ담제(禫祭) 때에도 모두 고배상을 차리고 때로는 빈객들이 술을 청하며
즐기기까지 하는 것은 매우 형편없는 짓이다.”라고 하여 남명의 예를 복구시켜
풍습의 계도에도 힘썼다고 합니다.
거주지에 부사정(浮査亭)을 짓고 이를 스스로 호를 삼았고, 또한 양직당(養直堂)을
건립하고 다음과 같이 명(銘)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한 창가의 벽에다 ‘직방대(直方大)’라는 세 글자를 크게 써놓고 다음과 같이
〈삼자 해(三字解)〉를 덧붙였는데 “무엇을 직(直)이라 하는가? 마음이 곧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방(方)이라 하는가? 일처리가 반듯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대(大)라 하는가?
국량을 크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곧지 못하면 사악해지고, 일처리가 반듯하지
못하면 부정하게 되며, 국량이 크지 못하면 편협해진다.
그런데 사악한 일, 부정한 일, 편협한 일은 군자가 하지 않는다. 정직해지는 공부는 ‘경(敬)’에 있고,
반듯해지는 공부는 ‘의(義)’에 있고, 국량이 커지는 공부는 ‘성(誠)’에 있다. 한곳에 집중하여 딴생각이
없는 것이 ‘경’이니 이것이 마음의 주인이 되고, 헤아려 마땅하게 하는 것이 ‘의’이니 이것이 일처리의
주인이 되며,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 ‘성’이니 이것이 몸의 주인이 된다. 마음에 주인이 있고,
일처리에 주인이 있고, 몸에 주장이 있으면 군색한 행동이나 부정한 길로 빠지는 데 대한
걱정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써서 스스로 경계 하노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손들을 위하여 부사정 동쪽에 네 칸짜리 집을 짓고 지은사(知恩舍)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제 자식을 가르쳐봐야 비로소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된다.”는 옛사람의 말을 취한 것으로
동쪽 방에 이고재(二顧齋)라는 편액을 걸었는데, 이는 ‘말할 때는 행동을 돌아보고〔言顧行〕,
행동할 때는 말을 돌아본다.〔行顧言〕’고 한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쪽 방을 사유재(四有齋)라 하였는데, 이는 ‘낮에는 행하는 것이 있고〔晝有爲〕, 밤에는
터득하는 것이 있고〔宵有得〕,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에도 기르는 것이 있고〔瞬有養〕,
숨 한 번 쉬는 사이에도 보존하는 것이 있다.〔息有存〕’는 뜻을 취한 것입니다.
중간의 두 칸을 삼어당(三於堂)이라 하였는데, 이는 ‘부모에게 효도하고〔孝於親〕, 어른에게
공손하고〔弟於長〕, 벗에게 미덥게 한다.〔信於朋友〕’는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합니다.
양몽재 전경
부사정 전경
이 정자는 앞면 4칸 규모인 목조 기와집입니다.
제가 방문을 하였던 날이 5,3일이었는데 전날 석채례가 있었던지라
이곳 부사 정에는 동네의 유림들이 모여 회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 "석채례(釋菜禮)"란 "약식으로 소채 등으로 간소하게 제사를 드리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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