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7. 12:25ㆍ나의 이야기
하동 이병주 문학관 전경
문학가 나림 이병주 흉상
이병주(李炳注나림, 那林)는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를 마치고,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불문과로 전학했다가 학병 문제로 중퇴했습니다.
진주 농과대학·해인대학 교수를 지냈고, 1955년부터 〈국제신보〉 편집국장으로 있었으나
5·16 군사혁명 때 노동조합과 관련된 필화사건으로 신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 뒤 한국외국어대학 강사, 한국 농약사 사장 등을 지냈으며 장기간 미국에 머물며 대하소설
〈제5공화국〉을 집필하던 중 지병이 악화되어 귀국한 지 1개월 만에 작고하였습니다.
1965년 〈세대〉 7월호에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해 등단했으며 이어 발표한 〈관부연락선〉
(월간중앙, 1968. 4~1970. 3)은 일제 말부터 해방 직후까지를 배경으로 양심적 지식인의 비극적
행로를 그렸으며, 이러한 작품세계는 대표작 〈지리산〉(세대, 1972~1978. 8)에 이어졌습니다.
〈지리산〉은 일제강점기에 항일의식을 지녔던 진보적 지식인이 해방 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의 담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을
그려냈습니다.
〈지리산〉에 이어 발표한 〈산하〉(신동아, 1974. 1~1979. 8)·〈그해 5월〉
(신동아, 1982. 9~?)은 현대사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소설집으로 〈관부연락선〉(1972)·〈지리산〉(1978)·〈행복어사전〉(1980)·
〈바람과 구름과 비〉(1982) 등이 있습니다.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이병주만큼 다양한 책을 작품 속에 거명한 작가가 없을 정도로,
그의 삶 자체가 책을 통한 편력이었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데 특히 루쉰[魯迅]를
통해 중립적 지식인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그가 어떤 사상에도 동조하지 않는
이른바 회색 사상을 정립하는 계기가 됩니다.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금기시된 소재인 이데올로기 문제를 둘러싼 지식인의 고뇌를 앞장서서
다루어, 유신체제 하인 1970년대 중반에는 “이제 이병주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으로
나누자”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영향력이 컸습니다.
이병주의 소설은 일제 강점기 말의 학병 체험, 광복기의 이념 갈등, 6·25 전쟁, 4·19 혁명,
5·16 군사 쿠데타, 개발 독재 시대로 이어지는 작가의 삶의 역정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는데,
망각되거나 배제된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려는 작가 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증언 소설로서의 한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던 이병주는 1992년 4월 3일 미국에서 역사 소설
『제5공화국』을 집필하다 귀국하여 폐암 선고를 받고 71세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이병주 문학비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작품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이병주문학관에서
개양귀비가 만개한 이병주 문학관 주변 풍경들
코로나로 이곳 하동 북천 이병주 문학관이 있는 산골짜기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전세를 내고 돌아보는.....ㅜㅜ
오늘 하동 북천 여행을 함께했던 옛 직장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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