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5. 17:54ㆍ나의 이야기
능소화가 만개한 부천 중앙공원 전경
여름이 깊어 갈수록 주변은 온통 초록의 바다로 물들어 갑니다.
그러나 늘 푸르름도 너무 오래가면 금세 신물이 나서 화사한 봄꽃의 색깔이 그리워지는데
이럴 즈음, 꽃이 귀한 여름날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능소화가 우리의 시선을 끕니다.
고즈넉한 옛 시골 돌담은 물론 삭막한 도시의 시멘트 담벼락,
붉은 벽돌담까지 담장이라면 가리지 않습니다.
담쟁이덩굴처럼 빨판이 나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아름다운 꽃 세상을 연출합니다.
가장자리가 톱날처럼 생긴 여러 개의 잎이 한 잎자루에 달려 있는 겹잎이고, 회갈색의 줄기가
길게는 10여 미터 이상씩 꿈틀꿈틀 담장을 누비고 다니는 사이사이에 아기 나팔모양의 꽃이
얼굴을 내밉니다.
꽃은 그냥 주황색이라기보다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입니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이 드는 능소화는 다섯 개의 꽃잎이 얕게
갈라져 있어서 정면에서 보면 작은 나팔꽃 같습니다.
옆에서 보면 깔때기 모양의 기다란 꽃통의 끝에 꽃잎이 붙어 있어서
짧은 트럼펫이 연상되기도 하지요.
꽃이 질 때는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꽃은 감질나게 한두 개씩 피지 않고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한창 필 때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핍니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거의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이어갑니다.
능소화 연가
~이 해인 ~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중국의 《시경(詩經)》에 나오는 소지화(笤之華)란 이름의 꽃나무는 능소화로 짐작을 하는데
이를 미루어 보아 적어도 3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심고 가꾸었던 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능소화는 시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짐작할 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19세기 초 유희가 쓴 《물명고(物名攷)》2) 에 보면 능소화는 ‘자위(紫葳)’라 하였으며,
“야생의 덩굴나무로 영산홍과 같이 붉은 황색을 띠며 꽃에 작은 점이 있고,
8월에 콩꼬투리 같은 열매가 열린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산속에서도 어쩌다 만날 수 있는데 들어온 지가 오래된 식물은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자라는 경우도 있는데 사람이나 동물이 옮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동의보감》에서도 자위라 하였으며 줄기, 뿌리,
잎 모두 약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방을 보면 “몸을 푼 뒤에 깨끗지 못하고 어혈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과 자궁출혈 및
대하를 낫게 하며, 혈을 보하고 안태시키며,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부인병에 널리 쓰이는 약재로 일찍부터 재배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에는 귀한 약나무에서 관상용으로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줄 뿐이지요.
개양귀비와 원추리
떡갈나무 미국 수국
루드베키아
능소화는 원래 남부지방에서 주로 심던 나무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서울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꽃이었다고 합니다.
《화하만필(花下漫筆)》3) 에는 “서울에 이상한 식물이 있는데, 나무는 백송이 있고
꽃에는 능소화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옛날보다 날씨가 훨씬 따뜻해진 탓에 지금은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서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근래 들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능소화 외에 최근에 들여온
미국 능소화를 주로 심고 있습니다.
미국능소화는 꽃의 크기가 작고, 거의 위로 향하여 피며 더 붉은색을
띠는 것이 보통 능소화와의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능소화는 활짝 핀 꽃잎이 펴진채 똑 떨어져 버리는 꽃이기도 합니다.
님을 기다리다 지쳐서 똑 떨어지는 꽃이라는 뜻에서
단 하나의 사랑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 단하나의 사랑과 연관된 전설은 소화라는 빈(후궁)과 임금 사이의 사랑으로 임금에게
하룻밤 성은을 입고나서는 그 후에 한 번도 자기를 찾아주지를 않았던 임금을
기다리다가 상사병으로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임금을 담장 너머로라도 보고 싶어하였던 빈 소화의 바램으로 피어난 꽃이
소화를 닮았다고하여 능소화라고 불리워졌다고 합니다.
능소화는 금동화라고도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과거에 장원 급제를 한 자의
관모를 장식하던 꽃이었기에 양반들의 가장 좋아하였던 꽃이 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유로 옛날에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기에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상민들이 능소화를 심은 것이 들키면 곤장을 맞기도하였다고하니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꽃말은 명예, 영광
꽃占도 "매력을 지닌 당신은 기쁨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쁨을 연인에게도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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