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별서 정원의 전통을 이어 온 계원 거연정(진주 두 달살기 2021.6.11)

2021. 6. 16. 13:42나의 이야기

 

화림 동천의 계원 명승 제86호 거연정 전경

 

 

화림동계곡 안내도

 

 

원래 화림동계곡의 풍광은 ‘팔정 팔담(八亭八潭)’이라 일컫어졌는데

여덟 개의 정자와 여덟 개의 담이 있는 계곡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정확하게 여덟 개의 정자와 담이 있었는지, 아니면 정자와 담이 많은 계곡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여하튼 팔정 팔담이라는 표현은 화림동 계곡을 매우 적절하게

묘사한 말로 생각이 됩니다.

 

화림동을 비롯한 안의 삼동에는 정자가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영남의 선비들은 사화와 당쟁으로 산수에 은둔하고

시서를 논하며 풍류를 즐겼습니다.

 

현재 화림동 계곡에는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湖亭) 복원된 농월정 등

네 개의 정자가 남아 있는데 유일하게 명승으로 지정된 정자는 거연정이 유일합니다.

 

 

 

화림동 계곡을 흐르는 남강천 암반 위에 건립된 거연정은

매우 특별한 형태를 보여줍니다.

 

거연정은 화림교를 건너야만 진입할 수 있는데 화림교는

무지개다리, 즉 홍교(虹橋)입니다.

 

홍교는 또 다른 말로 아치형 다리를 뜻하는 오교(吳橋)라 하기도 합니다.

 

화림동 계곡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연정은 계곡의 기암과 주변의

노송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답습니다.

 

중층으로 된 누각 형태의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내부는 판재로

벽체를 구성한 1칸의 판방을 갖추고 있는 유실형(有室形) 정자입니다.

 

굴곡이 심한 천연 암반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기 위해 정자의 아랫부분은

주추를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습니다.

 

바위 표면이 높은 곳은 주추 없이 그대로 기둥을 올리기도 했으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순응하는 정신과 자연친화적인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봉천교 방향에서 바라다 본 거연정

 

 

함양 거연정(咸陽 居然亭)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정자로 2005년

10월 13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43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全時敍)선생이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인

현 거연정 위치에 억새로 만든 정자를 최초로 건립하였으며 1853년 화재로 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훼철되자 1872년 화림재 선생의

7대손인 전재학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 건립되었으며 1901년 중수가 있었습니다.

 

거연정은 함양군 안의면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전주방향으로 9㎞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는

봉전마을 앞 하천 내에 있는데, 이곳은 옛 안의 3동의 하나인 화림동 계곡으로서 농월정,

거연정, 용유담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곳입니다.

 

거연정은 봉전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천의 암반 위에

단동으로 건립되어 있습니다.

 

 

 

 

 

 

거연정은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全時敍)가 지은 정자로 1640년(인조 18) 경

그는 서산서원을 짓고 거연정의 위치에 억새로 만든 초정을 처음 지었습니다.

 

화림교 앞에 세워져 있는 ‘화림재 전공 유허비’에는 “옛 안의현 서쪽 화림동에 새들 마을이

있으니 임천이 그윽하고 깊으며 산수가 맑고 아름답다. 화림재 전공이 세상이 어지러워

이곳에 은거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산서원은 훼철되었고 이후

1872년 전시서의 7대 손인 전재학이 억새로 된 초정을 철거하고,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중수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거연정은 우리나라 별서정원의 전통적 형식인 계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계원으로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처럼 계곡 주위에

정자와 더불어 약간의 정원 시설을 조성한 것이 계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원의 원형은 정자로 별서는 본래 아름다운 산수 속에 자리한

소박한 정자로 거연정이 계원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연정을 비롯해 화림동 계곡에 줄지어 있는 정자들은 각각의 작은 계원을 계속

연결하고 있어, 화림 동천을 거대한 하나의 계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벽체(뒷벽)를 판재로

구성한 판방을 1칸 두고, 각주로 네 귀퉁이를 받치고 대청과 방 영역을 머름을

두어 구분하고 있습니다.

 

방 상부는 간단하게 인방재를 건너고 판재로 막아 천장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삼면에 낸 문은 모두 없는 상태이며, 사면 모두 기둥의 바깥쪽으로 약 30㎝ 정도를

연장하여 계자 난간을 둘렀고, 출입은 배면 쪽 자연암반에 두었습니다.

 

마루에는 장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것은 원래 우물마루였으나

후에 변형된 것으로 보입니다.

 

천연의 암반 위에 조성하였으므로 굴곡이 심한 암반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주초를 쓴 기둥도 있고, 쓰지 않은 기둥도 있습니다.

 

기둥은 모두 원주이며, 누하주는 직경이 큰 재목을 틀어지거나

울퉁불퉁한 채로 대강 다듬어 사용하였습니다.

 

마루 위의 기둥은 하부에 사각형으로 모를 줄인

초석 형태의 부재를 사용하였습니다.

 

기둥에 비해서 대들보와 도리는 부재 치수가 크고 견실하며,

서원의 재목을 쓴 곳은 누상부 부분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면의 추녀 끝 부분에는 활주를 세워 건물의 안정감을 높였고,

기둥 상부에는 익공 형태의 부재 없이 보아지로 처리하였습니다.

 

창방과 처마 도리 장혀 사이에는 소로를 끼워 장식하였습니다.

 

정면 어칸 상부는 창방을 사절하고 처마 도리와 장혀 안으로 지지하고

계자 난간도 끊어서 출입하는 장소로서의 상징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가구는 5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받도록 하였고, 종보 위에는

종도리 장혀가 바로 올려지도록 구성하였으며, 좌·우 측면에서는 충량을 보내 대들보

위에 얹었는데 충량의 머리 부분은 가공 없이 직절(直切)하였습니다.

 

단청은 올리지 않았으며 겹처마에 합각지붕 형식입니다.

 

 

계원은 중심건물인 정자와 더불어 주위에 있는 모든 자연 요소들을

정원의 일부로 활용합니다.

 

따라서 계원 속의 정자는 그 위치와 조망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자에 방이 있는 경우, 조망은 문을 통해 형성되는 프레임으로

사람이 방 안에서 바라보는 광경을 의미합니다.

 

거연정을 포함한 계류 주변에 지어진 정자 안에서는

이러한 빼어난 자연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거연(居然) - '자연에 거한다"

 

자연에 거한다는 의미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 단어이다 보니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초에는 거연정이 초막처럼 지은 정자였었다니

자연에 거했다는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

 

자연을 마주하고 자연에 머물며, 자연 속에서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것 이거나 아니면

자연과의 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연정은 화림재(花林齋) 전시서(全時敍)가 모옥(茅屋)으로

지어 강학한 곳이 었다고 합니다.

 

화림재는 1640년경 유림의 공의로 채미헌 전오륜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서산서원(西山書院) 곁에 모옥을 짓고, 주자가 지은 무이 정사(武夷精舍)의 시 중

'편안한 나의 천석이로다(居然我泉石)'라고 한데서 정자 이름을 취하였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이 거연정 간판이 바닥에 떨어져 출입구 근처 난간에 기대어 방치되어

있었기에 유실되거나 훼손이 염려되어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함양군청에 전화를

해서 조속한 복구를 요청하였습니다.

 

낡고 퇴락하면 보수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리의 소중한 계원 문화재의

간판 유실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ㅜㅜ

 

 

거연정 격실 방에 앉아 3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거연정 주변 경관들을 조망해 봅니다.

 

방은 작았지만 삼면으로 불어오는 소슬바람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청량감을 가져다주는 이 아늑한 분위기 속에 있다 보니

제가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기암에 암각 된 방수천 

 

물길 건너편 바위벽엔 ‘방수천’(訪隨川)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송나라 시인

정호의 시구 ‘방화수류과전천’(傍花隨柳過前川)에서 따온 말로, ‘꽃을 찾고

버들을 쫓아 물길을 노닌다’는 뜻입니다.



 

거연정과 홍교가 화림 동천에 어린 고운 반영

 

 

아울러 계원의 중요한 또 하나의 조망은 밖에서 정자가

위치한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계원이 대단히 아름다운 조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도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정자가 위치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계류를 끼고 있는 기암괴석의 절경에 정자가 있는

사례는 더욱 많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정자가 자리한 계원을 주변에서 바라보는 모습

또한 아름다운 풍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왜 이렇게 다양한 위치에서 앵글에서 담았던 거연정의 사진들을

많이 올려드리는 이해가 가시리란 생각이......ㅎ

 

 

봉천교 방향 하류 전경

 

 

제림사

 

정선 전 씨들이 만든 사당

 

 

 

제림사 담장 너머로 바라다본 화림동천 상류

 

 

제림사에서 바라다 본 거연정

 

 

화림제 전공 유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