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농월정 (진주 두달 살기 2021.6.11)

2021. 6. 14. 15:15나의 이야기

 

농월정교를 건너서 바라다본 국민관광지 쪽의 마을 전경 

 

 

 

복원된 농월정 전경

 

 

화림동 계곡의 초입에 있는 고요한 밤 냇물에 비친 달을 한잔의 술로 희롱한다는

의미를 가진 농월정(弄月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지족당 박명부가

즐겨 찾던 곳에 지었다고 합니다.

 

이 정자는 본시 화림동 계곡 경관의 백미라 할 만한 제일의 경승이었는데

2003년 불이 나면서 농월정은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아직도 이 농월정 구 정자가 남아 있었다면 당연히 화림 동천의 가장 중심적인 경관 요소로

계속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며, 이미 명승으로 지정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이 정자는 1993년대에 복원된 정자입니다.

 

 

안의 삼동 중에서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간직한 곳이 바로 화림동입니다.

 

화림동은 안의에서 전북 장수군으로 통하는 국도 26호선을 따라 약 4㎞를 가면,

굽이치는 물가에 아담한 마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곳이 화림동의 정수

농월정이 있는 곳입니다.

 

화림동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금원이 굽이치며 흘러 팔 담 팔정을 이뤄

예부터 화림동을 정자문화의 보고라 합니다.

 

특히, 농월정은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옛날 우리 선조들의 풍류사상이

깃든 곳으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거쳐간 곳입니다.

 

맑은 물이 급한 굴곡을 이루는 곳에 커다란 반석이 펼쳐져 있고 반석 위를 흐르는 물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면 농월정 이름 그대로 달을 희롱하는 듯 여겨진답니다.

 

어제 밤새 내린 비로 월연암이라는 너럭바위 위로 물살이 세차게 흐르고

있어 농월정의 아름다움을 더욱 느끼게 합니다.

 

1993년부터 다시 조성을 시작한 농월정이지만 구 정자의 모양을 그대로 복원을 한 탓에

옛 정취가 그대로 느껴져 아쉬움이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다만 근래에 새로 복원된 정자이다 보니 한국 계원 문화의 진수였던 중요한 문화재가 몰상식한

자들에 의해서 한 줌의 재로 사라져 버렸다는 탄식만 허공을 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원된 정자에 낙서를 하는 몰염치한

짓거리들을 바라다보니 한숨만 나옵니다.

 

 

 

 

복원된 농월정의 다양한 전경들 

 

 

화림동 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남강의 상류)이 서상 - 서하로

흘러내려가면서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 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룬 곳으로 장장 60 리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의 정자문화의 메카라고 불리어지는 곳답게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계곡을 따라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져 수많은

묵객들과 풍류를 즐기던  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농월정이 화림계곡 반석 위 작은 소에 어린 고운 반영

 

 

농월정의 하단부 전경

 

 

농월정에 걸려있는 많은 편액들

 

 

청룡과 황룡

 

 

농월정 누각에서 바라다보는 화림동 계곡의 반석 

 

 

정자 누각에 서서 화림동 계곡의 넓은 반석과 거침없이 흘러 내려가는 남천 계류를

바라다보며 불어오는 소슬바람이 왜 이렇게 시원한가를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것 세상을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끼었던 온갖 풍상들을

농월정 정자에서 한 순간에 다 털어내어 버렸습니다.

 

 

복원된 농월정 후면 격실 벽면을 더럽힌 지저분한 낙서

 

 

이 곳에 낙서를 한 넘은 한자 깨나 알고 시 깨나 나부렁되는 못된 넘이란

생각에 더더욱 울화통이 터집니다.

 

그래 이 넘아 네가 얼마나 잘났는지 나는 너를  모르지만 너는 어디를

가던지 제발 빨리 콱 죽어 버려라..... 쩝

 

 

 

이제 다시 이 곳에서 애마로 동호정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