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 가야의 꿈이 잠들어 있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2(진주 두달 살기 2021.6.10)

2021. 6. 13. 08:16나의 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제1호분 고분 내부 전경

 

 

 

사진으로 보는 제57호 고분 내부 전경 

 

 

제57호 유물 부장 구덩이에 대한 사진 자료 

 

 

말이산 57, 128호분 전경  

 

2018년 발굴 조사된 57호분과 128호분은 무덤방 길이가 6m 정도의

중형급 구덩식돌덧널무덤입니다.

 

무덤 내부에서는 말이산 돌덧널무덤의 특징인 "들보 시설"이 뚜렷하게 확인되었으며 특히 57호분에서는 북쪽으로 별도의 유물 부장 구덩이 1기가 딸려 있는게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유물부장 구덩이는 말이산에서 처음으로 확인이 된 구조로 말이산고분군의

다양한 매장 풍습을 알 수 있는 고분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분 제초 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들 전경

 

 

고분 제초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들 전경

 

 

말이산 9, 10호분 전경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적의 정확한 성격은 파악하지 못한 고분으로 9호분과

10호분은 말이산 주능선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말이산고분군 내에서도 매우 상징성을

가진 고분으로 여겨지는 고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말이산 11호분 전경

 

한 때 일본 고분시대 전방후원분으로 오해받기도 하였던 고분으로 주변 고분의 발굴 성과로

미루어 5세기 중 후반에 만들어진 아라가야의 구덩식 덧널무덤으로 짐작되며 향후

발굴성과가 기대되는 고분입니다.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천과 광정천에 둘러싸인 해발 50m 정도의

낮은 구릉 능선의 정선부를 따라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113기의

큰 무덤들이 나란히 입지 하고 있습니다.

 

이 고분 가운데에는 말이산 4호분처럼 감 실을 가진 수혈식 석곽이 있는가 하면,

말갑옷을 부장한 대형의 목곽 묘도 확인하였습니다.

 

하나의 봉토 아래에 세장방형의 수혈식 석곽 1기만이 매장 주체부를 가지는데,

주 피장자의 발치에 순장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부장 되었습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1587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1917년 이마니시 류

[今西龍]가 45기의 고분을 조사하였고, 1917년 말이산 4호분과 25호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해방 후 1963년 1월 21일에 함안 도항리 고분군과 함안 말산리 고분군이

각각 사적 제84호와 사적 제8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말이산 고분군에 대한 학술조사는 주로 1990년대에 들어와서 정밀 조사되어

도항리 고분군과 말산리 고분군은 하나의 문화권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2011년 7월 28일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습니다.

 

 

함안 말이산 고분은 원형의 봉토 아래에 한 기의 세장방형

수혈식 석곽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수혈식 석곽은 대체로 단벽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1:3이 넘는 세장방형을 띠고 있습니다.

 

석곽은 단벽과 장벽에 나무를 걸칠 수 있는 홈을 설치하였는데 들보 시설

또는 감실, 풍비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석곽의 내부는 대체로 세 곳으로 공간을 분할하여 가운데에는 주 피장 자를 두고

석곽의 양 단벽쪽에는 부장유물이나 순장인을 안치하고 있어서 특징적입니다.

 

아울러 토기에서는 함안 형식 토기가 5세 말∼6세기 초에 형성될 정도로 지역색이 강하며,

그 가운데에서도 화염형 투창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합니다.

 

부장유물에서는 대금구나 이식 등과 같은 장식성을 강하게 띠는 금공품보다는

갑주, 마갑, 마구류와 같은 무기 구류를 다량 부장하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5-6세기에 축조된 고분군으로 함안 형식 토기를 비롯하여

세장방형 수혈식 석실, 석곽의 벽에 있는 감실, 순장자, 지호 문 등은 고대 아라가야의

실체와 대외관계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말이산 13호 고분과 15호 고분 방향 안내판

 

 

말이산 13호 고분은 말이산 고분군들 중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 곳은

공사 중이라 출입을 금하고 있었는데 제재가 없는 탓에 제일 높은 곳에서 말이산 고분군은

내려다보고 싶은 욕심에 고분 통행로 정비 공사 중인 도로를 따라 올라가 봅니다.  

 

 

말이산 13호 고분 복원공사 전경

 

13호 고분은 복원 공사 중에 있었는데 저도 처음 접해보는 광경인지라 호기심을 갖고

13호 고분 복원 과정을 잠시나마 지켜보았습니다.

 

아주 오래된 시기의 분묘이다 보니 우리가 어려서 접했던 매장 문화랑 그 구조가 많이 틀렸었는데

그 분묘의 폭은 겨우 사람이 한 사람 누울 정도의 공간으로 다만 기다랗게 조성이 되었더군요. 

 

 

 

 

방향을 실측하고 있는 공사 관계자와 고분 복구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복원의 재료도 이 곳에서 나 온 그대로의 돌과 흙을 이용하여 복원 공사를 하는 탓에

아주 힘들다고 하더군요.

 

암튼 저로서는 가야 고분의 실제 내부를 이렇게나마 볼 수 있었다는 게제겐 처음으로

접했던 기회였다 보니 아주 좋은 시기에 이 곳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색다른 것을 본다는 것은 이렇게 발품을

파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이..... 

 

 

13호 고분 복원 공사장에서 바라다본 말이산 고분군들 전경

 

 

하단부 주변에 복원 중에 있는 고분들

 

 

13호분 하단 주위에 2개의 복원 중인 고분이 바라다 보입니다. 

 

 

말이산 15호분 전경

 

1995년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높은 봉분이 있는 구덩식 덧널무덤으로 말이산 고분군의 독창적인

고분 축조 기술을 보여주는 "들보 시설"이 남아 있으며 남쪽의 짧은 벽면 쪽에 3~4인의

순장자가 있었던 고분이었다고 합니다.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은 가야읍에서 함안면 방향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가면,

오른쪽 야산 구릉지대에 남북으로 2km 이상 대형 고분 40 여기 등, 총 153기가

밀집되어 있는 전국 최대의 고분 지역입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함안은 본래 아시랑 국, '아라가야'라 하기도 하였으며,

가야는 신라 때 멸망당했으므로 이 고분군들은 가야 국왕들의 묘로 보입니다.

 

 

이 곳에서 떨어져 있는 도항리 고분군은 면적 41만 1340㎡로

얕은 구릉지대에 현재 약 70기 정도 산재해 있습니다.

 

봉토 높이 4m 정도, 저경(底徑) 15m 내외의 비교적 대형이며, 내부구조는 함안 말산리 고분군

(末山里古墳:사적 85)의 34호분처럼 직사각형 앞 트기 [橫口] 돌덧널[石槨]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도굴되었습니다.

 

말산리 고분군은 면적 2만 200㎠ 마산에서 진주까지 국도 쪽으로

뻗은 길쭉한 구릉 위에 44기가 있습니다.

 

34호분은 봉우리의 정상 전부를 차지할 정도의 거분으로서, 봉토의 지름

40m, 높이 10m나 되어, 함안 일대의 고분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 고분은 1917년에 발굴 조사되었는데, 내부구조는 남북으로 된 널방[玄室]의 길이 9.7m,

너비 1.72m, 높이 1.62m의 규모로, 지평선 상의 야석 축(野石築) 앞 트기 [橫口]식 석실입니다.

 

네 벽은 직립, 천장은 판석(板石) 13매로 덮고 천장석 위에

진흙을 발랐는데, 널방 바닥에는 작은 돌을 깔았습니다.

 

벽에 석회칠을 하지 않았으나, 못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채화 장막(彩畵帳幕)을 드리운 것으로 추측됩니다.

 

널방 북부에는 많은 토기들이 놓여 있고, 유해는 입구 쪽에 머리를

남침(南枕)으로 하고 눕힌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검(劍) 자루에는 일본 특유의 직고 문 각제(直孤文角製)

장식이 있어 주목을 끌었습니다.

 

토기 가운데는 새 무늬 및 수차형(水車形) 토기가 1개씩 포함되어 있어

출토지가 확실한 동물형 토기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 공자 모양의 굽다리접시

(工字形 高杯) 불꽃 모양의 창을 낸 굽다리접시(火焰型透窓高杯)는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

중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정치세력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둘째, 각종의 큰 칼 · 갑옷 · 말갑옷 · 새가 달린 비늘 쇠(有刺利器) 같은 철제품과

금·은 ·유리·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아라가야 왕의 강력한 위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셋째, 기원전후부터 6세기 중반까지 만들어진 이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성립 · 발전 · 멸망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넷째, 이 고분군의 출토품과 같은 유물은 동래 ·

경주 ·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라가야의 산물이 다른 가야와 신라, 일본 열도의 왜까지

수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섯째, 고분군의 규모와 화려한 유물들은 6세기경의 아라가야가 남부 가야의

중심으로 주변국들과 교섭하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현재는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을 끝 말자의 말산(末山)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러나 말산은 말이산으로 불렸습니다.

 

말이산(末伊山) 마리산은 머리산으로 원래는 아라가야의 시조가 등장하고,

역대 왕들이 묻혔던 우두머리의 산이었습니다.

 

 

오늘은 함안 가야읍 장날이라 진주 두 달 살기에 필요한 삭자재 들을 사러 이른 아침에

가야시장에 나왔다가 장을 본 다음 시간을 내어 찾아본 말이산고분군들은

마치 제주도의 용머리 오름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고분들이 가져다주는 독특한 풍광들

 

역사적 유적들이지만 좋은 풍경 사진으로 보셔도 전혀 부족함은 없으리란 생각입니다.

 

고분들이 가져다주는 이색적이고 독특한 풍경들

 

제가 가야의 후손인 김해 김 씨 후손이다 보니 이런 역사적 유적지들은 제게 있어선

조상들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보니 저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