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길상사와 탄생지 (2016.8.7)

2016. 8. 25. 10:29나의 이야기









진천 길상사(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 전경
















길상사로 향하는 홍살문이 있는 은행나무길















주차장 옆에 세워진 길상사 안내도
















상사화
















재실 겸 사무실 전경으로 이 곳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문화해설사 한 분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후손 김만희 공적비



참화에 훼손된 길상사를 복원 중수시킨 후손 김만희














길상사 중건 사적비





















내삼문인 진호문 전경



내삼문의 현판 이름은 진호문으로  "진"이나 "호"자는 모두 지킨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따라서 진호문은 김유신의 사당을 지키는 문이란 뜻이기도하고 김유신 장군이 나라를

 지켰다는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였다고 여겨 집니다. 















흥무전 전경
















김유신 장군 사적비

















흥무왕 김유신 장군 신성비
















흥무전에 봉안된 김유신 장군의 영정 과 위패



김유신 징군은 595(진평왕17~673) 신라 명장으로 본관은 김해 가야국 김수로왕의

 13세손 서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갈문왕 입종의 손녀 만명이며 609년 (진평왕31)에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으로 심신을 수련했다고 합니다.


629년(증평왕51) 중당의 당주로써 낭비성(지금의 청주시 낭성)전투에 참여하여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입량주 군주가 되었습니다.


644년(선덕여왕13) 소판이 되어 상장군에 오르고 백제군과 싸워 이겼으며 647년(진덕여왕1)반역을

 꾀하는 비담 염종의 반군을 토벌한 무산성 전투, 감을성에 침입한 백제군을 격퇴하였습니다.


648년(진덕여왕2) 백제의 대량주를 공격하여 12성을 함락하고 이찬이되어 

 상주행군도총관에 올랐습니다.


이듬해 침입한 백제군을 도살성에서 격파하였고 654년 왕이 후사 없이 죽자 알찬과

 상의하여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660년(무열왕7)에 상대등이 되어 당나라 소정방과 연합하여 사비성을 함락시켜

 백제를 멸망시키고 663년 당나라 군사와 함께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이듬해 연합군의 대총관이 되었으나 병으로 출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고구려 정벌 후 태대각간이 되었으며 한 수 이북의 땅을 수복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였습니다.



유해는 금산원에 장사 지냈고 835년(흥덕왕10)흥무대왕에 추존

 경주의 서악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김유신 장군의 후손으로 진천에 와서

 참배를 하지  않고 간다는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도 몇 번 와서 참배를 한 적은 있었지만, 오늘도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님께 향을 피워 예를 올립니다.















흥무전에서 바라다 본 내삼문



















흥무전 좌측 전경




















내삼문 바로 앞의 좌우로 쌓여진 석축은 도당산성의 성곽입니다.



















길상사 외삼문 앞에서 바라다 본 진입로 전경
















길상사의 외삼문 전경으로 현판은 길상사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불볕 더위인지라 걷는 순간 순간 마다 땀이 흐르는 탓에 저도 무척 힘이 듭니다. 


 다행히 오늘은 이 곳을 찾는 이도 없는 탓에 은행나무 가로수 그늘 밑에 차를 주차하였는데

 멀리 제 차가 바라다 보입니다.


빨리 시동을 켜서 에어콘 바람이라도 쐬어야 살것 같은 기분인지라.....

다시 차를 몰아 보탑사 방향에 있는 김유신장군의 생가터로 향해봅니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사적 제 414호) 태실 안내판


이 곳 계양마을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흥무대왕 김유신(595~673)이 탄생하고 자란 곳입니다.

장군은 이 지역에서 태어나 화랑이 되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막아 냈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웠으며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 자주성을 지키는데  공헌하였습니다. 


신라 역사상  가장 높은 관등인 태대각간을 지냈고  흥덕왕10년에는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으며

고려시대 까지는 국가에서 주관하여 봄과 가을로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탄생지 일대에는 당시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연보정이 있으며

 이 후면 태령산 꼭대기에 태실은 아직까지 보전되어 있습니다.


김유신 장군의 태실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태실로선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무대왕  김유신 적허비 전경 














흥무대왕 김유신 공의 탄생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


김유신 장군은 이 곳에서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병부인 사이에서 임신 20개월만에

 태어 났다고하며 그의 태는 태령산 정상에 묻었다고 합니다.

 주위에는 이 곳이 만노군의 처소임을 알려줄만한 석축등이 여러 곳에 남아 있으며

특히 당시에 우물로 사용하였던 연보정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또한 주위에는

김유신 장군이 말을 타고 훈련하던 치마대도 있습니다.
















 탄생지 후면의 태령산 정상부에 있는 태실 전경(참고자료)













김유신 장군의 태실(참고 자료)


우리나라에 최고로 오래된 현존하는 태실의 원형이라고 합니다.











연보정 (참고자료)



더위가 어지간하면 태령산의 태실과 연보정을 돌아보고 싶었지만 오늘 같은

 불볓 더위엔 절대 무리란 생각에 참고자료로 대신 합니다.















상계리에 있는 재실 전경과 후면의 태령산















재실은 정면4칸 옆면1칸반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 전경














흥무대왕 김유신 적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