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3. 11:37ㆍ나의 이야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석천계곡 전경
청암정을 들른 후 바로 근처에 있는 석천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나오는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더불어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던 곳이 이 곳 봉화의 닭실마을 입니다.
이 마을의 충재고택 전면에 있는 논들 너머로 보이는 소로를 따라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아름드리 솔숲과 개천을 만나게 되는데 걷기에도 아주 좋은 길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하천은 봉화로 흘러드는 내성천이 되는 석천계곡이기도 합니다.
차를 근처 공터에 주차시킨 바로 앞의 석천계곡 전경
청암정을 돌아보는라 더위에 지친 절친들을 계곡에서 물놀이나 하라고 하고는
조금 하류에 있는 석천정사로 향해봅니다.
석천계곡의 석천정사
정자라고는 하지만 전체 34칸의 큰 규모로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로
충재 권벌 선생의 큰 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세운 정자입니다.
권동보는 중종 37년인 1542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는데 명종2년 1547년에
"양재역벽서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아버지가 삭주로 유배되어 1년만에 돌아가시자
관직을 버리고 20여년간 두문불출하였다고 합니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 돌아 와
석천의 계곡위에 정자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석천정사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 쌓여져 있으며 정자는 계곡에 면한 원래 지형을
최대로 살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졌는데 계곡 옆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수명루의 마루는 완전히 개방된 형태가 아니라 판장문을 두어 필요에 따라 문을 닫아
공간을 페쇄하기도하고 문을 열어 자연과 소통할 수도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개울가에 있는 창문을 열면 개울의 풍경이 그대로 들어 오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굳게 닫힌 탓에 수명루에서 석천계곡을 바라볼 수가 없기에 안탑깝기만 합니다.
자연의 철학을 담아 만들어진 별서 "석천정사"
우리의 옛 선비들은 이런 곳에서 자연을 누리면서 철학을 공유하였기에
오늘 이 곳의 방문으로 제게 메말라버린 여유와 정서가 되살아 나기를 바래봅니다.
석천정사 건너편 아름드리 솔숲
이 길은 참 아름다운 길로 가볍게 걷기엔 아주 좋은 길이기도 합니다.
제 불로그 하단 검색창에서 닭실마을을 치시면 5년전 늦가을에 석천을 따라
이 길을 걸었던 적이 있기에 아름다운 경치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주암 각서로 이 암각서를 직역하면 "숫돌기둥"이란 뜻이지만 황하의 지주암을 이 곳에
재현해 놓은 것으로 권벌 자손들의 지조와 절개를 표현 한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대게 조선시대에 조성된 별서정원이나 누정은 "출처지의"(대의에 맞으면 나아가 벼슬하고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 지조를 지키려는 것)라고 하는 유교의 생활 철학을 담아
건립되었다는게 정설이랍니다.
청하동천 각서로 푸른 노을 동천은 하늘에 있닿는 곳이란 뜻으로 이상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권벌의 5대손 권두옹이 암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멋드러진 송림이 우거져 신선이 노닐 것 같은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꿈꿨던 석천계곡의 석천정사 수명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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