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에 세워진 양화진 성지공원의 여름 소경(2014.8.5)

2014. 8. 8. 14:48나의 이야기

 

 

 

 

 

 

잠두봉 위에 세워진 성당과 하단의 박물관 본관 전경

 

 

 

양화나루. 잠두봉 일원은 지형과 풍광이 아름답고 한양도성과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사대부와 문인들이 즐겨 찾던 명승지였다고 합니다.

 

특히 양화나루 넘어 석양의 노을지는 광경은 양진낙조라고 불리던

 마포 팔경 중 하나이기도 하였답니다. 

 

 이 곳이 언제부터 나루의 역활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공식적으로는 고려사에 처음 이름을 나타냅니다.

 

 이 후 조선 왕조가 수도를 한강 유역에 정하고 난 후

 한강의 5대나루로 손꼽히게되었는데

 이는 남쪽으로 선유봉,북쪽으로 잠두봉을 중심으로

 비스듬한 모래톱이 형성되어 배를 되기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양화나루.잠두봉 일원은 통행의 길목이자 검문소, 운송기지로서의

 역활을 해냈으며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군사진영으로서도 크게 부각되어

 피난경로로서 뿐만 아니라 유사시 방어 거점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박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극동함대사령관

 로즈일행이 강화도에 침범하는 사건이 발단이 되면서 양화나루는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로서도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대원군은 프랑스함대가 정박했던

바로 이 곳을  오랑캐에 의해 더럽혀 졌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1997년 11월 7일 문화재법에 의거하여 사적 제399호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 양화철교위에 소음방지를 위한 캐노피에 그려진 성화들

 

 

 

 

 

 

 

 

 

 

 

교육관 전경

 

 

 

 

 

 

 

 

 

 

교육관 옆 나무그늘 쉼터

 

 

 

 

 

 

 

 

 

 

더덕

 

 

 

 

 

 

 

 

절두산 순교 기념비

 

 

 

 

 

 

 

 

 

 

 

 

 

 

꾸르실료회관

 

회관 건물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2014.8.14~8.15)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한국 천주교회사의 커다란 경사를 앞둔 천주교 절두산 성지의 분위기를 대변합니다.

 

 

 

 

 

 

 

 

 

이상,순종,사랑 크리스천 생활

 

제가 크리스천이 아닌 관계로 꾸르실료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설명을 해드리기가 어렵군요.

추측하건데 꾸르실료란 이름같아 보이며

 크리스천 생활을 실천하는 모임이란 생각이......ㅎ

 

 

 

 

 

 

 

 

 

 

강변의 성모상

 

 

 

 

 

 

 

 

 

이승훈 상(베드로)

 

 

 

 

 

 

 

 

 

 

지하철 2호선 양화철교  (이 근처가 오래 전에는 나루터였으리란 생각이......)

 

 

 

 

 

 

 

 

 

 

 

 

 

 

박물관 별관(개관시간:오전09:30~오후17:00)

 

월요일은 휴관이며 봉사자의 안내를 받아야만 돌아 볼 수 있는 모양입니다만,

제가 퇴근 후에 잠시 들렸기에 개관 시간은 바로 지난 시간이었고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유로 관람 신청 절차에 관해서는 잘모르는 사유로

 박물관 관람은 아쉽게도 걍 패스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58~1963 재위) 흉상

 

 

 

 

 

 

 

 

 

 

 

 

성당과 본관 박물관은 개관 시간이 지난 후라 굳게 철문이 닫혀 있습니다.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대건 신부상

 

 

 

 

 

 

 

 

 

 

 

 

김대건 신부상 후면에 만들어 놓은 십자가의 길

 

 

 

 

 

 

 

 

 

 

 

 

 

 

 

 

 

 

 

 

 

 

 

 

 

 

상사화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좌상

 

 

 

 

 

 

 

 

 

양화진척화비

 

 

 

1871년(고종8년)애 세워진 흥선대원군(1820~1898)이  서양인을 배척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이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비는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겠지만,

 비석과 기단부의 화강암 돌색상이 많이 틀리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한 생각을 갖는 이유는 이 곳에 있는  성남중상 흉상과 박순집묘를 찾아 보았을 때

 어떤 비석의 기단부가 제 기단부가 아니라서 혹여 이 기단부가

척화비의 기단부가 아닌지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척화비석의 크기를 실측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 곳 양화진도 전란의 피해가 심했을 것으로 보았을 때

 그 때 이후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은 탓에 뒤바뀐 것은 아닐런지하는 생각이..... 

 

  서울시나 이곳을 관리하는 마포구청에서는 이 척화비도 이 곳의 중요한 유적이고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기시고 정확히 재조사를 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성모마리아상

 

 

 

 

 

 

 

 

 

 

 

 

 

 

해운당대사 의등지비

 

 

이 비석과 하단 기단부석과는 전혀 제 짝이 아닌........

그래서 이 비석 하단 기단부는 혹여 척화비의 기단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돌의 재질이라든가 색상을 비교해도 척화비와는 무난하고 크기도 비스므리해서......

 

 

 

 

 

 

 

 

 

 

 

 

 

 

 

 

 

 

양화진터

 

 

 

 

 

 

 

 

 

양화진 장대석

 

 

 

 

 

 

 

 

 

 

양화진에 대한 해설 판석이 훼손이 되어서 읽기에도 힘든.......ㅜㅜㅜ

 

 

 

 

 

 

 

 

 

 

 

그럼 이제부터는 이 양화진에 자리잡은 외국인 묘지를 둘러 봅니다.

 

 이 외국인 ㅠ묘지는 우리나라에 선교 사업을 위해서 해외에서 건너 온 선교사들 이거나

 그 가족들이 묻혀있는 묘지로서 우리나라 근대화와 육영 사업에 힘쓰다가

당시에 작고한 외국인들 아니면 고국에 돌아 갔다가 한국을 몯잊어서

 사후에 돌아 온 분들의 지라고 보시면 정확하리란 생각입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힘쓰셨던 분들도 있었고

우리나라 교육에 이바지했던 분들도 많이 묻혀 있는 그런 묘지라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미션 스쿨을 다녔던 사유로  조금은 아는 편이랍니다. 

제가 졸업한 모교를 세웠던 분도 이 곳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양화진 외국인묘지를 보살핀 최봉인의 묘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헐버트 박사의 묘

 

 

 

 

 

 

 

 

 

 

 

 

 

 

이화여자대학교 창설자와 초석을 놓은 선교사들의 묘

 

 

 

 

 

 

 

 

 

 

 

아펜젤러 배제학당 창시자의 묘

 

 

 

 

 

 

 

 

 

 

 

 

원두우목사 이장 묘로 이 묘지들은

연세대학교와 관련이 많은 묘지란 생각이....

 

 

 

 

 

 

 

 

 

 

 

 

 

 

정신여중.고의 에니_엘러스선생의 묘

 

 

 

 

 

 

 

 

 

 

 

배화여고와 관련 된 은사의 묘

 

 

 

 

 

 

 

 

 

 

 

 

 

 

 

화진문화원

 

 

 

 

 

 

 

 

 

 

 

양화진문화원 후면

 

 

 

 

 

 

 

 

 

 

맥문동

 

 

 

 

 

 

 

 

 

 

 

 

묘역 단체 참배객 안내수칙

 

 

 

퇴근길에 잠시 들린 양화진 성지공원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앞서

 천주교가 우리나라에게 주었던 개화기의  역사 이해와  조선말 기독교 전파가

우리나라에게 주었던 역사 고찰에 많은 도움을 준  좋은 산책이었단 생각입니다.

 

 미션스쿨을 다녔으면서도 설립자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내가 오늘 처음 

 퇴근길에 찾아 본 양화진 성지공원은 아주 조용하고 산책하기엔 아주 좋았습니다.

 

제 근무처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라서 20~30분이면 가볼 수 있는 곳으로

 고교 시절엔 학교를 가기위해서 매일 버스를 타고 이 앞으로 지나다녔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한 번도 가보지를 않았던 곳인지라

저도 감회가 새롭더군요.

 

종교를 가졌던 안가졌든지 또는 믿고 안믿고의  중요함보다

저 처럼 현제 무교라 할지라도

여러분들도 시간이 나시면 한 번 쯤 찾아 가서  개화기의 우리나라

 역사 현장으로 산책겸 돌아 보셔도 좋으리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