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5. 17:30ㆍ나의 이야기
몽마르뜨 언덕(순교자의 언덕) 샤크레 쾨르 성당 앞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가지 전경
로뎅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우린 또다시 다음 일정인 몽마르뜨로 향하였습니다.
파리의 신도시 전경
에펠탑
세느강
몽마르뜨에 살았던 유명 예술가들이 죽어서 묻혀 있는 공동묘지
몽마르뜨 뒷편 계단을 통하여 올라가는 길로 혼 잡한 몽마르뜨를 여유롭게
제대로 돌아 보기엔 이 코스가 제일 좋다고 한다.
몽마르뜨에 살았던 예술가들이 자주 찾았던 캬바레로 유명하였던 곳
몽마르뜨 언덕을 후면에서 올라가면서 바라 보이는 현재 유일한 포도밭
몽마르뜨 언덕은 예전엔 파리 근교에 있는 한적한 변두리로 포도밭이 많았던 구릉지대라고 한다.
몽마르뜨를 순환하는 관광열차
모리스 위트릴로 (Maurice Utrillo)는 프랑스의 백색화가로 불리는데,
1883년에 태어나 1955년에 죽었다.
루누아르 드가등의 그림모델이었던 어머니의 방종으로 사생아로 태어나서
10대에 이미 알콜중독자가되었고, 정신병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사유도 정신병자로 수감되었을 때,
치료요법으로 그린 그림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와의 만남, 늘 술에 취해 거리의 하수구 위에 쓰러져 살았던 방황과 격정의 나날.
그리하여 진정으로 아팠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만의 색채,
우울한 백색은 이렇게 태어나게 된다.
평생을 몽마르뜨에 살았고 몽마르뜨를 그리며 결국 몽마르뜨에 묻힌 그는
삶의 아픔과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구석진 골목의 적막한 풍광과 애상을
우수 깊은 백색으로 표현한 슬픈 백색작가이기도하다.
모리스 위트릴로가 이 집 2층에서 살았다고한다.
달리다 흉상
달리다는 이집트 출신의 프랑스 샹송가수 겸 배우로
대표곡으론 밤비노,파롤파롤,살마 야 살라마, 마돈나등이 있다.
Saint Denis 프랑스 초대주교가 처형당한 몽마르뜨
뒷편에 Saint Denis주교가 자기의 목을 들고 있는 흉상이 바라다 보인다.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 할 때 참수형을 당했다는 Saint Denis 는
9세기에 생드니의 수도원장 일뒤앵이 기록한 근거 없는 이야기에 의하면
참수형을 당한 Saint Denis의 시체가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몽마르뜨에서
생드니 수도원교회로 걸어 갔다고 한다.
이래서 성 Saint Denis는 종교적인 명화에서 목을 들고 있는 성인으로 그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마르셀 에매가 살았다는 표지판으로 파리에 있는 이런 표지판들은
역사적으로 보존이 필요한 건물이거나 문화재 앞에는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시내에서 이러한 표지판이 설치된 곳은 다 중요한 문화재란 표시이기도 하다.
마르셀 에메가 이 아파트 3층에서1902년부터 1967년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벽을 뚫는 남자 조각 앞에서
벽을 뚫는 남자는 프랑스의 국민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단편 소설가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마르셀 에메의 동명원작을 각색한 뮤지컬로 소설 원작은 프랑스어 전공자들에게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몽마르뜨 언덕의 사랑예찬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2차 세계대전이후 1940년대 프랑스 몽마르뜨를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낭만과 사랑을 그리고 있답니다.
어느 날 벽을 자유 자재로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이 사회비리를 파헤치고
사랑을 얻는 과정을 통해 프랑스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전 후 프랑스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뒷편에 있는 초록 간판이 있는 건물이 매우 오래된 유명한 카페라고 한다.
이곳에서 오래전 부터 살았던 유명한 화가나 예술가들이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하여서.......
샤크레 쾨르 사원 전경(성심성당)
언덕의 정상 부분 떼르뜨르 광장과 베드로 성당 북쪽의 조금 낮은 쪽에 위치해 있다.
이 성당은 진정한 신이자 인간인 예수의 성심에 바쳐진 교회당으로
1885년부터 그 경배의 행렬이 밤낮으로 줄을이어 순례자들을 맞이 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성당의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원은 몽마르뜨 언덕위에 있으며,1876년에서 약 40년의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교회로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로,
파리가 프러시아에게 정복당하고 수도를 피로 물들인 시민 전쟁이
일어 난 1870년 이후 예수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1872년 파리의 주교가 밤낮으로 성례를 거행 할 때마다 예수가 함께 할 수 있는
성소를 짓길 바란다는 Legentil이라는 이름의 한 파리 시민의 요청을 받아 들여
13세기 말 Saint Denis가 그의 신념 때문에 교수형에 처해 졌던
이 장소를 선택해서 1873년 의회가 투표를 통하여 이 성당의 건축을 최종 결정 한 후에
건축 비용은 모두 파리 시민들이 충당 했다고 한다.
첨탑에는 안시로부터 옮겨 온 파리 최대의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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