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4. 20:26ㆍ나의 이야기



정전(正殿)
서울 동관왕묘의 정전으로 이곳에 관우의 동상이 있습니다.
정면은 5칸, 측면은 6칸으로 측면이 정면보다 길며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9,315m²로 되어 있습니다.
동관왕묘의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이며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입니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습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합니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
여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관우상 전경
서울 동관왕묘(서울 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는 대한민국에 있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를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습니다.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관우(關羽, 160~219)는 중국 촉(蜀)의 장수이지만, 그의 사후 당송대 이후 신(神)으로 숭앙되어 중국 각지에 관제묘(關帝廟)가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597년 정유재란 이후 관왕묘가 세워지기 시작하였고, 동관왕묘는 명 황제와 조선 선조의 합심과 한중 장인의 기술로 1601년 완공되었습니다.
동관왕묘 정전 내부 중앙에는 화려한 단청이 칠해진 당가(唐家)가 세워져 있고, 당가의 내부 중앙에는 도금된 <금동관우신상>이 용상(龍床) 위에 앉아 있습니다.
관우상은 정전 중앙에 있으며 앞쪽 좌우로는 형주에서 관우를 모신 관평, 조루, 주창, 왕보가 관우상을 호위하듯이 서 있습니다.
특히 동관왕묘에서 모셔지는 금동관우좌상은 구리 4천여 근(약 2.4 t)을 들여 만든 높이 2.5 m 미터짜리 거대한 황금색 금동신상으로, 조선시대 관우상 중 가장 큽니다.
1601년에 제작되었는데, 영조통기(營造通記)에 따르면 명나라 장수 10명이 풍로 10개에 구리 3800근을 녹이려다가 한 번 실패하고, 감관 한빈(韓斌)이 조선의 구리장인을 모아 300근을 더 넣고 녹여서 제조했다고 합니다.
즉, 한중합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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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조선 땅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명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동대문 밖에 1599년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년) 동관왕묘를 완공하였습니다.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9,315m²로 되어 있으며 동관왕묘의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으로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입니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습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합니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남관왕묘는 조정에서 관리하며 왕실에서도 제사를 지냈으나 1908년(융희 2년) 향사이정령
등으로 제사를 폐지하고 동관왕묘는 지방 관청으로 이괄 했습니다.
남대문 밖에는 동묘보더 먼저 생긴 남관왕묘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도 지었습니다.
남관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조선총독부가 철거했습니다.
. 2011년 10월 동묘의 금동 관우상 뒤편 일월 오악도 뒤에서 운룡도가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운룡도는 조사를 받고 원래대로 일월오악도로 가려졌습니다.
동관왕묘는 크게 5개 건물로 구성되는데 금동관우좌상 뒤에 세우는 일월오봉도는 병풍 일고
폭에 490 ×259 (cm) 크기로 그렸는데 일월오봉도 중 가장 큽니다.
전례와는 달리 병풍의 폭이 홀수이고 붉은 해가 왼쪽, 흰 달이 오른쪽에 배치된 특이한 작품입니다.
일월오룡도 외에 황적청백흑의 다섯 오조룡을 묘사한 구룡도 등의 회화, 석조, 편액 등도 조화롭게 만들어져 있고,
신상에 입히기 위한 면류관, 조복, 옥대 등의 희귀한 의복 유물도 함께 소장했습니다.

동무

서무

외삼문(外三門)
서울 동관왕묘의 정문.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면서 가운데 3칸의 지붕이
양옆의 1칸보다 높은 솟을지붕입니다.
정면 5칸 가운데 중앙의 3칸은 널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게 하고 좌우 한 칸에는 벽돌로
옆면을 막고 설문을 단 마루방을 들였습니다.
지붕마루에는 모두 양성을 하고 취두와 용두를 올려놓았으며 대문 좌우로는 작은 일각문을
두었는데 이 문은 바로 담장으로 연결됩니다.

내삼문(內三門)
서울 동관왕묘의 중문(中門). 정전 앞의 문이자 외삼문 뒤의 문이다. 문이 3개 뚫려 있습니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초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집입니다.
가로보다 세로가 칸수도 많고 길이도 정면과 비슷하여 문으로서는 특이한 평면 구조를 보이며
측면 벽의 가운데 2칸에만 창방 높이까지 벽돌벽을 쌓아 올린 모습이 특이합니다.
지붕마루는 대문과 마찬가지로 양성을 하고 취두, 용두, 잡상을
얹어놓았으며, 사래에는 토수를 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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