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0. 20:08ㆍ나의 이야기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전경
카사블랑카(Casablanca)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워너브라더스사의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파리가 독일에 점령된 1940년, 망명객, 반나치주의자, 피난민, 각국의 간첩 등이
몰려 있던 프랑스령 모로코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있는 미국인 리크
(험프리 보가트 분)는 의협심이 강하고 주위의 신임을 얻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반나치 거물인 라즐로도 그의 아내 일자(잉그리드 베리만 분)와 함께 나타나 미국으로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며 그 뒤를 게슈타포 슈트라서 소령이 쫓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여권을 부탁하기 위해 일자가 카페를 찾아오고 그녀를 만난 리크는 착잡한 감회에
빠지게 되는데 그들은 과거에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으며 함께 파리를 탈출하기로 약속까지 했던
사이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들 부부에게 여권을
마련해 주고 비행장까지 뒤쫓아 온 슈트라서 소령을 사살합니다.
라즐로 부부를 태운 리스본행 비행기가 밤하늘을 날아가고 리크는 눈물의 전송을 합니다.
사랑에 빠졌지만 보다 고귀한 목적을 위해 그 사랑을 희생해야만 했던 두 남녀의 이야기는
지금도 관객의 감성을 자극할 만큼 매혹적으로 관객은 나치즘의 타파라는 훌륭한 대의를
위해 희생적으로 그 사랑을 포기하는 일까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카사블랑카는 전통적인 삼각관계의 사랑을 다뤘던 영화로 일자는 두 남자 사이에서 괴로워
하는데 한 남자는 그녀가 깊이 존경하면서 사모하는 레지스탕스 지도자인 빅터이며, 또 한 남자는
남편의 부재 시 만나 사랑했지만 헤어져야만 했고 또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릭으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위해 헤어져야만 하는 연인의 가슴 아픈 이야기인 것으로 1943년 아카데미 감독·각색·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실 이번 북아프리카 모로코 여행에서 제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도시는
카사불랑카였었는데그 이유는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이곳에 하룻밤을 지내면서 그것이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러한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고즈넉한 분위기의 프랑스풍의 카사블랑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도 영화의 배경이었던 시대보다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여 330만 명의
인구를 품은 대도시가 되어버렸고 유럽으로 향하려던 아프리카 난민들의 중간 경유지처럼
유입되어 이곳 산업의 근간을 이루다 보니 도시 자체가 열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의 모로코는 무슬림이 대다수이기에 합법적으로 술을 먹을 수 있는 장소는 호텔 외에는
불가한지라 오래 전의 카사불랑카 같은 그런 낭만이 있는 장소는 이젠 없다 보니.....ㅎ
하산 2세 모스크의 미나레트는 200여 m로 세계에서 두 번째 높이 전경
모스크는 이슬람의 예배당으로, 무슬림들이 모여서 종교 활동을 하는 곳을 말합니다.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금지하는 이슬람의 교리 때문에 모스크 내부는 성상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이나 동물의 형체는 일절 찾아볼 수 없고,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아랍어 서체 도안
(주로 쿠란의 구절)을 활용한 기하학적 문양으로만 장식합니다.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경우에 따라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아랍어 서체
도안조차 우상이라고 우겨대기도 합니다.
모스크의 방위는 사우디에 있는 메카로 향하는 방향으로 맞춰집니다.
최초의 모스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무함마드의 집에 기도 시간마다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하고, 무함마드가 이들을 향해 설교를
하던 것이 시초로 이슬람이 발흥한 초기에는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카펫을 깔거나
성지의 방향을 나타내는 간단한 열주를 세우는 정도에 그쳤을 뿐 지금과 같은 큰 규모의
모스크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이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각지를 정복하면서 접하게 된 피정복민의 웅장한
교회나 신전을 보고는 정복자로서 이들을 압도하고 일정 지역의 무슬림들을 한 곳에 모아 세를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모스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오스만제국의 정복 이후 지어진 모스크들은 동로마 제국의 건축양식을 담습 하기 시작했는데,
유명한 성소피아 성당의 중앙돔보다 더 큰 돔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건축가 마마르 시난의
일화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첨탑(미다나)는성원 본당 주변에 달려 있는 탑 모양의 구조물로 예배 시간이 되면
이곳에 무아딘이라 부르는 사람이 아잔을 부르는 장소입니다.
성원의 중요성에 따라 미너렛의 수가 달라지는데, 가령 마을의 조그만 모스크들(보통 사설 사원)은
보통 1개의 미너렛을 갖고 있고, 그보다 좀 더 큰 규모의 성원(보통 국가가 지시하여 짓는 사원)은
2개, 왕이 중요하게 여겨 왕명으로 지은 모스크는 4개, 그리고 제일 중요한 성원인 메디나의
대모스크는 6개, 메카의 카바 성원은 9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왕명으로 지은 모스크로 유일하게 6개의 미너렛을 가지고 있는 곳은틔르키에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보통 불르 모스크로 알려진 곳)로, 이에 대해서는 당시 술탄 아흐멧 2세가
건축가인 아흐멧 아아에게 "금(altın)으로 도배한 미나레를 지어라."라고 명령했는데 건축가가
그걸 잘못 알아들어서 미나레 6개(altı)가 달린 사원을 주문하는 줄 알고 그리 지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일화에 아흐멧은 금으로 도배할 돈이 부족하여 일부러 잘못 알아들은 척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하여튼 아흐메트 2세는 그럭저럭 만족하여 아흐멧을 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유의 양파 모양 돔 지붕과 뾰족한 첨탑이 일반적인 이미지. 흔히 미나레트·미너렛(Minaret)이라
불리는 첨탑은 사실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탑 이란 뜻의 터키어 미나레(minare)와 어원적으로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이는 아랍어 '마나라에서 유래한 말인데 정작 아랍어권에서는
첨탑을 미다나라고 부릅니다.
라바트를 돌아본 후 저녁 늦은 시간에 도착한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하산 2세 모스크 전경
모로코에서 가장 큰 모스크이자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모스크로 하산 2세 모스크의 미나레트는
200여 m로 세계에서 알제리의 자마 엘자 자이르에 이은 두 번째 높이라고 합니다.
하산 2세 모스크 전경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은 모스크 내부에 들어가지를 못하는데 이곳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는 다행히 그런 제재가 없었기에 모스크 안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 하산 2세 모스크 건물은 근자에 지어진 탓에 이슬람 모스크 중에 역사적인 건물의 가치는
없지만, 이슬람 모스크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인공항구인 카사블랑카는 방파제에 의해 파도로부터 보호되며, 모로코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취급하며 유럽 선박들의 기항지이기도 한 이 항구로 통하는 한살리 대로(大路)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내륙에는 본래의 아랍인 도시인 구시가지가 있으며 지금도 여러 곳에 누벽이 둘려 있는 아랍인
구역에는 좁은 골목길에 흰 도료를 칠한 벽돌집과 석조 가옥이 미로처럼 얽혀 있습니다.
그 성벽 밖으로 반원형을 그리고 있는 시가지가
프랑스인들이 세운 도시구역입니다.
무하마드 5세 광장에서부터 방사상으로 뻗어 있는 가로들과 항만 양쪽의 해안에 이르는
순환도로들이 서로 교차되어 있는데 아랍인 구역 입구 근처에 있는 무하마드 5세 광장과
국제연합(UN) 광장은 이 도시의 상업 중심지와 행정중심지들로서 은행과 호텔 및 현대적인
대형 상점들이 있습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랍 연맹(Arab League)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흰색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습니다.
공원 서쪽의 해안에는 정원과 별장들이 늘어서 있는
안파와 같은 주택지역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슬람교도들은 시 외곽의 판자촌에서 살고 있으며 버스가 주된
대중교통수단이며, 다른 주요 도시들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동쪽으로 알제리와 튀니지로 이어지는 철도도 있으며 남서쪽에 있는 카사블랑카 안파 공항과
시의 동쪽에 있는 카사블랑카-누아쇠르 공항에서 은 국제항공편도 있습니다.
카사블랑카는 특히 항구로 성장하면서 급속한 상업 발전을 이루어
모로코의 경제수도라는 위치를 굳혔습니다.
모로코의 은행거래와 공업생산의 절반 이상이 카사블랑카에서 이루어지며 카사블랑카의
공산품으로는 섬유제품·전자제품·가죽세공품·통조림 등이 있고, 맥주와 증류주, 청량음료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대륙붕이 상당히 넓어 좋은 어장을 이루는 해안 수역에서는 어업이 중요한 산업으로
혀가자미·노랑촉수·가자미류·바닷장어·게·새우 등이 주요 어획물입니다.
카사블랑카에는 각급의 교육을 담당하는 아랍인 학교와 프랑스인 학교가 있으며
괴테 인스티튜트·시립미술대학·시립도서관·선사시대연구협회·어업 연구소·
원예협회 등 다양한 문화기관과 공공시설들이 있습니다.
모로코 제일의 휴양 중심지로서 수많은 해수욕장과 공원,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가 있습니다.
카사블랑카의 야간 해변전경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 미나렛을 배경으로
켄지 바스마 호텔 (4성급) 전경
켄지 바스마 호텔 주변의 거리 전경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1468년 파괴된 토착민 베르베르족의 마을에 1515년 포르투갈인들이
새 도시를 건설하고 ‘하얀 집’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18세기말 재건되었는데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상인들이 정착했으며,
프랑스인이 다른 유럽인보다 많아지면서 메종블랑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습니다.
1907년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했으며, 1912~56년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면서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3년에는 이곳에서 연합군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카사블랑카는 인구 330만 명의 모로코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취급하며 모로코의
은행거래와 공업생산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제일의 휴양지이기도 합니다.
맥주라도 한잔 편하게 먹을 장소가 있다면 카사블랑카의 밤을 즐기겠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이야기이고 카사블랑카의 시내를 돌아보기에도 난민들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를 하고 잠을 청해봅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란 나라에 와서 사실 크게 본 것이 없다는 실망감은.....ㅜㅜ
다만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의미만으로
이번 모로코 여행은 만족해야 하나 봅니다.
이제 카사블랑카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내일은 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장시간 이동하여 북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로
다시 들어가 그곳에서 페리를 타고 마지막 스페인 투어에 나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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