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7. 03:15ㆍ나의 이야기
마드리드 왕궁투어를 마치고 향한 곳은 산 미겔 시장, 마요르광장, 프라도 미술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으로 가랑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돌아보았습니다.
새크라멘토 성당(Iglesia Catedral de las Fuerzas Armadas) 전경
마드리드의 구 시가지는 각 시기들 마다 변화와 발전이 반영된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마요르 광장
부근의 옛 도심은 미로와 같이 좁은 가로망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구역의 모습은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세운 당당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과 대로들이 어울려 대조를 주고 있었습니다.
도심의 현대적 빌딩들과 교외의 아파트 단지들은 오늘날의 발전 모습과 경제적 수준을 보여주지만,
구 도심 마드리드의 많은 곳들이 대체척으로 비좁은 인상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마드리드가 수도가 된
초기 시절에 왕이 주민들에게 외교사절이나 방문 중인 고관들에게 그들의 집의 한 층을 제공하도록
명령하자 이것을 피하고자 단층집을 짓거나 실제로는 2층이지만 전면이 단층으로 보이는
이른바 카사스 알라 말리시아(앙갚음의 집들)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산 미겔 시장(Mercado de San Miguel)
다양한 이베리코 하몬(하몽 Jamon)과 소시지
와인 안주로 제격인 짭짤하면서도 오묘하게 중독성이 강한 하몽은 옛날 냉장시설이 없던 시대의
스페인에 돼지가 많이 수입이 되자 장기간 보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스페인식 돼지고기 햄이라고 보시면 정확하답니다.
스페인어로 '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소금에 절이고 건조한 햄인 '하몽'은 시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아
천장에 걸어두고 먹는 햄으로 뒷다리의 넓적다리 부분을 통째로 자른 다음 소금에 절여
6개월~2년 정도 건조하고 숙성시켜 만든 것입니다.
아무래도 오래오래 말렸기 때문에 풍미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런 하몽에도 등급이 나눠져 있는데 어떤 먹이를 주고 어떻게 키운
돼지로 만들었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등급은 '이베리코 데 베요타'라는 등급의
하몽이 제일 좋은 하몽이라고 합니다.
자연방목하여 도토리 산지에서 자란 흑돼지로 만든 하몽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대중적인 하몽 먹는 법은 과일 멜론과 함께 곁들여 먹는 방법으로
달달한 멜론의 과즙과 짭짤한 하몽의 조화가 어우러져 맛을 배가 시키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단짠 단짠의 조합이지요.
또한 건조 과일, 크랜베리와 같이 먹어도 좋고 바삭한 바게트 빵에 올리브유를
발라주고 하몽과 함께 먹어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소시지는 어육이나 가금육을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훈연가공 또는 소금에 절인 상태로 케이싱에
채워 넣은 것. 현대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외에도 다른 종류의 육류, 육류혼합물, 육가공
부산물 등을 섞습니다.
소시지를 만들 때 사용하는 양념과 향신료는 소금을 비롯하여 고수열매, 정향, 마늘,
식초, 육두구가루, 후추, 피스타치오 열매 등 다양합니다.
케이싱에는 동물 내장, 파라핀으로 처리한 섬유자루, 합성 케이싱인
플라스틱이나 인조 콜라겐 등이 있습니다.
소시지의 어원은 라틴어인 ‘살수스(salsus:'소금에 절이다'라는 뜻)’에서 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순대 만드는 방법이나 형태가 비슷하답니다.
소시지는 가공방법에 따라 익히거나 절이지 않은 날것, 익히지 않고 훈연가공한 것, 익히기와
훈연가공을 한 것, 익힌 것, 특수 육가공품(케이싱 없이 덩어리 형태를 한 런천미트와 샌드위치
스프레드), 드라이 소시지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드라이 소시지를 제외한 모든 제품은 냉장법으로 저장해야 하며, 건조제품을
냉장고에 저장할 경우 보존기간이 길어집니다.
날것과 익히지 않은 채 훈연가공만 한 것은 먹기 전에 끓여야 하지만 익히기와
훈연가공을 한 것은 먹기 전에 따뜻하게 덥히기만 하면 됩니다.
쿡트 소시지, 특수 육가공품, 드라이 소시지는 그냥 먹을 수 있습니다.
소금에 절여 훈연해서 먹는 하몽과 비숫한 방식의 육류 보관 방식들은 중국의 차마고도가 있는
내륙지방에서도 발달하였는데 그 이유는 오랜동안 육류를 저장하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몽은 등급에 따라 가격차가 크다 보니 이런 제품들은 기호도나 생활 수준에
따라 구입해서 먹는 게 제일 좋습니다.
스페인 보통 가정에서 대체적으로 먹는 하몽은 대략 300g 기준 15유로
정도면 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육류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스페인의 육류 가격은 대체적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마요르광장의 Estatua de Felipe III 세 동상
마요르 광장은 중세에는 시장으로 사용되던 장소였는데, 펠리페 3세 때인 1619년 주요 행사가 열리는
광장으로 건설된 후에는 왕의 취임식, 종교의식, 투우 경기, 교수형 등이 치러지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3번의 화재로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고 19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습니다.
커다란 4층 건물이 반듯한 직사각형을 이루며 광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데, 9개의 아치 문이
광장으로 통하고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든 광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광장 가운데에서 기품 있게 말을 타고 있는 기마상은 바로 펠리페 3세로 광장 주위를 둘러싼
건물의 1층에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가게, 관광 안내소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9개의 아치문 중 하나인 광장 남서쪽의 쿠치예로스 문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메손과
바르가 늘어서 있는 카바 데 산 미구엘(Cava de San Miguel) 거리와 만나게 됩니다.
마요르 광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래된 우표를 판매하는 우표 벼룩시장이 열리고,
지금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기인지라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습니다.
Centro de Turismo Plaza Mayor
Wake Up Tours Madrid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의 Estatua de Felipe III 세 동상을 배경으로
마드리드(Madrid)는 스페인의 수도로 스페인 최대 도시이자
문화예술과 산업의 중심지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정중앙에 있고, 시가지는 각 시기들의 변화와
발전이 반영된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구유입은 무엇보다도 공업지대의 성장에 기인하는데 이는 스페인의
현대 인구구성의 전형을 창출했습니다.
관광사업과 국가적인 교통중심지라는 점은 물론 행정·금융·보험의 중심지로서 수도 마드리드는
번영을 누려왔으며, 현재는 전국 각지로 뻗어나가는 도로와 철도망의 중심지로서 지하철망인
메트로의 수많은 노선을 통해 도시 각 지역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드리드가 수도로 정해진 것은 16세기 스페인의 왕인 펠리페 2세와
그 후손들의 중앙집권적 통치의 결과입니다.
즉 마드리드가 수도로 선택된 것은 전략적·지리적·경제적으로 중요해서가 아니라 이 지역이
당시 반왕권적 세력과 연계가 없었다는 점이 보다 주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드리드는 수도로서의 역할에 걸맞은 특성이 거의 없는데 다른 유럽 국가의 수도처럼
큰 하천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광물이나 자연자원도 없으며 성지순례의 목적지도 아니었습니다.
이 도시가 당시에 보다 중요했던 톨레도 시를 방어하기 위한 조그만 요새에서
비롯된 점을 보아도 수도로서는 부적합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로 왕궁을 옮긴 지 거의 1세대가 지난 1607년에 펠리페 3세가
마드리드를 공식적으로 수도로 정했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펠리페 왕조의 후원하에 마드리드는 오래되고 다소 번잡한 도심과 그 주위의 궁전·수도원·
교회·공공건물이 좋은 대조를 이루는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마드리드는 지리적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정중앙에 있는데 메세타라고 하는 해발 635m의 기복이
진 고원에 자리 잡고 있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입지 한 수도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입지적 특성과 인근의 카르페토베토니카 산맥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동반한 춥고 건조한 날씨가 나타납니다.
여름에는 때때로 급작스런 기온변화도 있지만 대개는 지속적으로 건조하고 더우며,
특히 7~8월에는 기온이 37.8℃ 이상 올라갈 때도 있어 매우 무덥습니다.
월평균기온은 5~24℃이며 월평균강수량은 7월의 12.7㎜
미만에서 10월의 50.8㎜까지 다양합니다.
연중 온화한 시기는 봄과 가을로 이 시기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때이기도 하다는데 제가
지금 같은 겨울철에 이곳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남유럽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드리드 구도심 작은 도로마다 성탄을 축하하는 빛의 축제 장식물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는데
제 짐작에 야간에는 아주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일정상으로는 아쉽게도 볼 수가
없다 보니.....ㅜㅜ
프라도 미술관 전경
산 헤로니모 엘 레알(San Jerónimo el Real)
우측의 스페인 왕립학술원
프라도 미술관 중앙 현관에 전시된 유일한 조각 전시품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스페인 회화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미술의 걸작 등 유럽의 다양한 회화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술관 건물은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후안 데 비야누에바에게
자연과학박물관의 설계로 의뢰한 것입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건물의 건축은 나폴레옹 전쟁 중에 중단되었다가
1819년 완성되어 왕립회화관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왕궁 및 에스코리알에 있는 그림들을 모아 이 소장품을 확장시킨 이사벨 2세가
추방된 뒤 1868년 프라도 국립미술관이 되었습니다.
소장품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 와 부르봉가의 군주들이
수집한 미술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에 다른 부속 건물들이 지어지고 수집품도 더욱 늘어났으며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프란체스코 데 고야, 호세 데 리베라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는 대(大) 피테르 브뢰헬, 라파엘로, 틴토레토, 파올로 베로네세, 페테르 파울 루벤스, 렘브란트,
안토니 반 데이크, 니콜라 푸생, 클로드 로랭, 앙투안 와토 등의 주요 작품들과 훌륭한 그리스-로마풍의
초상들도 수집되어 있습니다.
마드리드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으며, 나폴레옹의
동생 조제프를 왕으로 모셔야만 했습니다.
1808년 5월 2일에 조제프에 대항하는 시민저항이 일어나
전면적인 독립전쟁으로 발전했습니다.
1814년 나폴레옹의 구금에서 풀려나 돌아온 페르난도 7세는 '영웅적'이란
칭호를 마드리드에 수여했습니다.
카를로스 3세가 계획한 자연사 및 과학박물관을 수용할 건물이 1819년에 완성되었고
페르난도 왕은 그 당시 여러 왕궁에 흩어져 있던 왕족들의 소장품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주요한 예술박물관 중 하나인 프라도의 시작입니다.
프라도 미술관 야외 휴게정원
프라도 미술관은 미술학도들에겐 꼭 가보아야 할 성지로 아쉽게도
전시실 공간부터는 사진 촬영이 금지인지라.... ㅎ
산 헤로니모 엘 레알(San Jerónimo el Real)
프라도 미술관 정문 계단 쪽에 고야의 동상이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를 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항상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남보다는 조금 부지런을 떨어야 볼게 많다고 뇌 속에 각인을
시켰는데도 몸이 머리를 안따르는 것은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Escultura "Un pintor para el Prado"
"El Prado의 화가"라는 제목의 이 조각은 1989 년 조각가 Julio López Hernández에 의해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이 작품은 1991 년 Juan March Foundation에 의해 Prado Museum에 기증되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의 내부 전시물은 촬영이 안되다 보니 그냥 입구 부분 사진만.....ㅎ
프라도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이제 점심을 먹으려 마드리드 외곽에 위치한 곳으로 이동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마드리드 시내에 단체 점심 예약 장소가 어려워 이곳 식당으로 왔다고 하였는데 식당
시설이나 음식물을 보아도 너무 허접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곳으로 향하면서 스페인 현지 가이드는 일정은 아니지만 서비스 차원에서 식사 후 돈키호테와 풍차가
있는 시골 마을로 갔다가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향한다고 하였는데 이곳이 그곳을 가는 방향에 있기
때문이라면 이해가 가겠지만 점심 식사가 끝난 후에 다시 마드리드 시가지 투어가 더 좋다고 마드리드
시내로 모시고 나왔으니 여행 일정은 누가 보아도 시간 낭비가 많아 보였습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일정이 매끄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보니 이번 여행은
여행사의 현지 가이드가 조금은 답답해 보였습니다.
레스토랑 주변의 Homenaje a las Víctimas del Terrorismo
점심을 먹었던 마드리드 교외의 El Cortijo Extremeño 레스토랑 전경으로 Av. Humanes, 90, 28971
Griñón, Madrid로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정말 벗어 난 교외지역이었던지라 왜 이 먼 곳까지
점심을 먹으러 와야만 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암튼 우리는 또다시 마드리드 중심가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는데 본 곳을 다시 보라고 하니
큰 볼거리도 없어졌기에 다시 유유자적 시내를 돌아다녀 봅니다.
차라리 근처 레티로 공원 앞에 내려주고 자유시간으로 주었다면 참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다 보니......ㅎ
솔광장 옆 상가의 닫힌 문 앞에 그려진 그라피티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으로 고대 동굴벽화,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흑인 젊은이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저항적 구호나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는데 태깅이라고도 합니다.
이후 힙합 문화와 결합하면서 확대, 발전되었는데 인종주의· 고립· 환경오염· 정체성 상실 같은
사회 비판에 뿌리를 두었지만, 최근에는 작품 영역이 확장되어 1980년대 이후 거리 미술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술로서 뿌리를 내린 데는 천재적 낙서화가 바스키아의 공이 컸으며 그밖에
키스 헤링, 장 뒤뷔페 등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화가들입니다.
.
뱅크시의 벽화는 아니지만 분위기는 죽여주는 탓에......ㅎ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광장
Puerta del Sol광장은 16세기까지 태양의 모습을 세긴
중세시대의 성문이 있던 광장입니다.
왕립 우체국 정부청사(Real Casa de Correos)의 태양의 문 시계탑(Reloj de la Puerta del Sol)
위의 종은 신년 타종행사에 사용되며 타종 때마다 한 알씩 포도 12알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New Year's Eve from Puerta del Sol )
Origen de las Carreteras Radiales(방사형 도로의 원점) Kilometer Zero으로 스페인 각지로 뻗어나가는
10개의 국도가 시작되는 기준점으로 "밟으면 다시 Madrid로 돌아올 수 있다" 속설이 있습니다.
El Oso y el Madroño(The Bear and the Strawberry Tree) Madroño 열매를
따먹는 곰 동상으로 Madrid의 Symbol입니다.
과거 곰의 잦은 출몰 지역이었고 옛 지명 'Ursaria' 역시 '곰의 땅'이란 의미로 MADRID
1967~2017, 50 AÑOS EN SOL(1967년 건립 2017년 50주년 기념으로 새김)
카를로스 3세 동상 (Estatua Ecuestre de Carlos III)이 있으며 그는 18세기 후반
대표적인 계몽 군주로 마드리드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솔광장은 현재 공사 중에 있었기에 매우 혼란스러워 사진으로 담기엔
부적절하여 찍은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솔광장 앞 상가 처마의 화려한 조명
상가의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맛있어 보이는 MACARRONS와 FRESAS MALLOW
HUEVOS PRFTOS GIGANTFS와 FRESAS SALVAJES
이번 여행에서 제일 아쉬웠던 길거리 간식 중 하나였던 위 사진들의 간식들은 결국 맛을 보지 못했었는데 그 이유는 시간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 식성이 다 틀린 까닭 때문이었습니다. ㅎ
크리스마스 마켓의 다양한 상품들
별다방에서 이번 여행을 함께한 김사장님 내외와 함께
곰과 마드로뇨 나무 동상(El Oso y el Madroño)
MEMORIAL A LA PLAZA DE RAMALES LETRAS DE SUELO의
스페인의 유명한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기념비석 전경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화가로 펠리페 4세 시절 궁정 화가가
된 이후 평생 궁정 화가로 지냈습니다.
바로크 시기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데 벨라스케스의 초기 작품들로는
솜씨 있게 그린 종교화와 풍속화가 있습니다.
스페인은 풍속화의 역사가 짧았고,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의 물장수>와 같은 작품들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불어넣으며 새롭고 정직한 사실주의를 추구했습니다.
1622년에는 젊은 화가가 된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새로운 왕 펠리페 4세의 후원을 얻고자
마드리드로 향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망을 안은 채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1년 후에 왕의 초상화를 그려 궁정 화가로 공직에 임명되었고 곧바로
마드리드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평생 궁정 화가로 지냈습니다.
펠리페 4세는 자신의 초상화를 벨라스케스 외에는 아무도
그리지 못하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시녀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 비너스의 단장, 안판타 마리아 테레사,
후안 데 파레하,, 무염시태, 계란을 부치는 노파, 펠리페 4세의 입상, 펠리페 4세의 기마상. 천상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 등이 있습니다.
화가 DIECO DE SILVA VELAZQUEZ가 1660년 8월 6일
금요일에 사망했습니다란 기념비 안내판
마드리드 왕궁 주변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바라다보는 노천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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