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7. 09:40ㆍ나의 이야기
이른 아침 7시경 절친 부부와 저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조우하여 아산 공세리 성당을 경유하여
당일 단풍여행의 주목적 지였던 아산 현충사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경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하였기에 아침 식사를 공세리 성당이 있는 인주 부근에서 해결을 하려고 하였으나
아침식사를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가지고 온 삶은 계란과 과일 토스트 등 커피로 간단하게 요기를
채우고 아산 현충사에 곱게 물든 가을 단풍 산책에 나서 봅니다.
사실 이곳 현충사는 여러 번에 걸쳐 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기에 오늘은 우리나라의 단풍 명소로
아름답게 고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풍경들로만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산 현충사 주차장 출입로 부근에 곱게 물들어 버린 가을 단풍
맑은 하늘과 모과
정려각 후면 연지에 곱게 물든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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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는 1706년 숙종 임금 때 건립되어 이순신 장군을 향한 추모의 향불이 끊이지 않았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어 그 자취가 사라져 버리고 유허비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때 ‘충무공 묘소 위토 경매 사건’이 발단이 되어 전 국민이 거국적으로 모은 성금으로 1932년
현충사를 중건(重建)하게 되었으며 이후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 지시로 순한국식 콘크리트 구조로
된 현재의 현충사로 세워졌고, 기존의 건물은 서편 참배로 옆으로 이전하여 ‘구 현충사’라 부릅니다.
현충사에 모셔져 있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월전 장우성 화백의 1953년도 작품으로
1973년에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영정을 그릴 때 친분이 있었던 유성룡(柳成龍)이 쓴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책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용모에 관한 기록을 참고하였습니다.
내용은 “舜臣爲人 寡言笑 容貌雅飭 如修謹之士 而中有膽氣 忘身殉國 乃其素所蓄積也” (순신의 사람 된
품이 말과 몸을 잊고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이는 본래부터 수양해 온 소치라 하겠다)입니다.
건물 안쪽 벽에는 이순신 장군의 일생 중에 특기할 만한 사건 10가지를 묘사한 십경도(十景圖)라는 그림이
있는데 서울대 미대 정창섭, 문학진 교수의 작품이고 1970년 한국기자협회에서 기증하였습니다.
현충사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매년 4월 28일
정부 주관으로 제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고택
활터 전경
이순신 장군 고택
이순신 장군은 21살 때 결혼하셨는데 부인은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方震)의 무남독녀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처갓집이 자연스럽게 이순신 장군의 본가가 되었는데 현재 건물은 전통적인
한식 목조건물로서 안채만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대로 종손이 살아오다가 1969년 현충사 성역화사업 당시에
경내의 존엄성을 고려하여 이주하였습니다.
고택 뒤편에는 가묘(家廟)가 있는데 이곳에는 현 종손의 4대조까지의 신위(神位)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신위가 중앙에 모셔져 있습니다.
활터에 곱게 물든 가을
활터의 은행나무
활터는 옛집 옆 은행나무가 두 그루가 서있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의 능선은 말을 타던 곳으로 치마장이라 불립니다.
활터에서 바라다본 이순신 장군 고택
고택의 뒤뜰(내부 수리 중으로 비공개)
안사람과 나
이번 여행을 함께한 고교 동창 절친 부부
성웅 이충무공 영정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내의 전시물
이순신 장군은 전사 후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에 모셔졌다가, 이듬해인
1599년 2월 11일 아산의 금성산에 모셔졌습니다.
그리고 전사 16년 뒤인 1614년(광해 6년)에 지금의 어라산에 이장되었습니다.
묘소는 부인 상주방 씨와의 합장묘로서 조선시대 고관 묘의 전형적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1970년대 성역화사업 당시 왕릉과 같이 곡장이 둘러졌습니다.
신도비 2기가 있는데,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이 죽었을 때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그의 사적(事蹟), 즉 생애를 새겨 넣은 비로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에 한하여 세워졌습니다.
묘소 입구에 있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외손자 홍우기가 효종 때 영의정 김육에게 청하여 비문을 지어
만든 것으로 비석에 글 새기는 것은 1660년(현종 1)에 완성되었는데 후손들이 힘이 없어 34년 만인
1693년(숙종 19)에 비로소 세웠다고 적고 있습니다.
비문 첫머리에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가 나오는데 김육은 "임진왜란 때 도원수 권율과 통제사 이순신
두 분이 아니었다면 나라를 구하지 못했을 것"인데, "도원수의 무덤에는 큰 비석이 있지만 통제사의
무덤에는 아직도 사적을 기록한 비문이 없어 여러 선비들이 유감으로 여긴다"라고 하였습니다.
봉분 동남쪽 아래에 있는 신도비는 정조가 친히 글을 내려서 만든 것이다. 정조는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정이 깊었던 군주로 이 비문에서도 "우리 장하신 선조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를 세우심에 기초가 된 것은 오직 충무 한 분의 힘 바로 그것에 의함이라 이제 충무공에게 특별히
비명을 짓지 아니하고 누구 비명을 쓴다 하랴"라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빗 머리에 "상충 정 무지 비(尙忠旌武之碑, 충의를 드높이고 무용을 드러내는 비)" 여섯 글자가
전서체로 쓰여 있는 이 비는 정조 임금이 이순신 장군에게 최고직인 영의정을 증직 한 후인
1794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御製)"라고 하여 임금이 친히 글을 지어 내린 것임을 표시하고 그 아래에 "有明水軍都督朝鮮國 贈效忠仗義適毅協力宣武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 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이라는 조선왕조에서 내린 최후, 최고의 직위를 모두 53자에 걸쳐 적고 있습니다.
이 비를 만들 때 이순신 장군의 후손을 불러 공역을 감독하게 하였고, 비가 완성된 후에는 탑본을 떠서
4대 사고(史庫)와 관각(館閣=규장각), 태학(太學=성균관)에 나누어 보관하게 하였습니다.
김육이 쓴 신도비는 거북 형상의 받침돌에 비석 머리에 용을 조각한 머릿돌을 얹은 고려 이전 시대 양식을
보이고 있는 데 반해 정조 어제 신도비는 상석(床石) 받침에 기와지붕을 얹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비석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난중일기
7 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598년 10월 7일까지의 일기를 담고 있습니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난중일기〉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지금까지 불리고 있습니다.
엄격한 진중 생활, 국정에 대한 솔직한 느낌, 전투 후의 기록, 수군 통제 전술, 부하들에 대한 상벌,
가족, 친지, 부하, 내외 요인들의 내왕과 편지글 등도 실려 있어 임진왜란 연구에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신변의 자질구레한 일이나 번민 같은 것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또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부인을 생각하며 자식을 걱정하는 인간적인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1962년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으며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1. 임진일기 壬辰日記 - 조선 선조 25년(1592)~선조 26년(1593), 1책(冊).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36.0cm×26.6cm 2. 계사일기 癸巳日記 - 조선 선조 26년(1593), 1책(冊). 반엽(半葉) 16행(行)18~20자(字); 25.2cm×28.0cm 3. 갑오일기 甲午日記 - 조선 선조 27년(1594), 1책(冊). 반엽(半葉) 12행(行)16~17자(字); 26.2cm×28.6cm 4. 병신일기 丙申日記 - 조선 선조 29년(1596), 1책(冊). 반엽(半葉) 18행(行)21~22자(字); 25.3cm×29.4cm 5. 정유일기 丁酉日記 - 조선 선조 30년(1597), 1책(冊). 반엽(半葉) 17행(行)16~18자(字); 25.3cm×29.2cm 6. 속정유일기 續丁酉日記 - 조선 선조 30년(1597)~선조 31년(1598), 1책(冊).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24.2cm×25.0cm 7. 무술일기 戊戌日記 - 조선 선조 31년(1598), 1책(冊).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23.0cm×27.2cm 8. 서간첩 書簡帖 - 조선 선조 31년(1598), 1첩(帖).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39.8cm×24.4cm 9. 임진장초 壬辰狀草 - 조선 선조 25년(1592), 1책(冊). 반엽(半葉) 15행(行)28자(字); 45.6cm×33.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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