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옥포대첩기념공원과 옥포만의 아름다운 풍경들(거제도 한 달 살기 2022.10.22)

2022. 10. 24. 07:17나의 이야기

 

옥포만을 제대로 보려면 능포 수변공원 끝부분에서 해안 비포장 도로를 따라 옥포조선소 산 능선을 끼고 돌아보는 게 최적이란 생각에 옥포조선소 담장 주변을 돌면서 바라다본 옥포 대우 조선소 전경

 

옥포(玉浦)라는 지명은 생긴 모양새가 옥문(獄門)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대우조선이

들어 선 부지가 옥포만으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수심이 깊을 뿐만 아니라 조수간만의 차가

적어서 조선소가 입지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지 조건을 활용하여 이곳에 1973년 기공하여 1981년 옥포조선소가 종합 준공되었으며 현재는

이 조선소는 대우조선해양옥포조선소이며, 여기에서 각종 선박뿐 아니라 플랜트, 시추선, 부유식 원유

생산장비 등 특수선박과, 잠수함 및 구축함 등 군함을 건조하고 있습니다.

 

만 입구에는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는데 남측이 느태방파제로서 길이 1,000m, 북측이 팔랑포 방파제로서

길이385m, 입출항로가 305m이며, 방파제 안의 넓이는 약 180만 평이고, 수심은 약 18m 정도라고 합니다.

 

옥포만의 내부에는 옥포국제학교, 옥포여객선터미널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팔랑포 방파제 인근 곶에는

옥포대첩기념공원이 있으며 만의 중앙에는 옥포정과 충무공 전승탑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옥포만 전경

 

 

옥포대첩기념공원

 

1971년에 당시 통영군(현, 통영시) 용남면과 거제군(현, 거제시) 사등면 사이의 견내량 해를 잇는 거제대교가 세워졌는데 이 교량의 등장으로 인해 거제도는 섬 신세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동부와 남부에 끼고 있어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섬으로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한 옥포해전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하여 유서 깊은 옥포만에 조성한 기념공원입니다.

 

기념탑과 옥포루에 오르면 정면으로 보이는 옥포만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당시의 이충무공의 전승의 쾌거를 상기해 볼 수 있습니다. 

 

 

옥포대첩 안내판

 

 

옥포대첩 기념공원 안내도

 

 

털머위 꽃

 

 

홍살문

 

 

거북선 모형

 

 

판옥선 모형

 

 

외삼문

 

 

옥포대첩 기념공원 사당 안내도

 

 

거충사(사당)

 

거충사에 모셔진  위패


원평(元平), 제홍록(諸弘祿), 옥계성(玉桂成), 윤승보(尹承輔), 이언량(李彦良), 조윤전(趙允銓), 반관해(潘觀海), 윤흥량(尹興良), 여막동(余莫同), 김희진(金希璡), 반중경(潘仲慶), 이순신(李舜臣), 신응기(辛應奇), 윤영상(尹榮祥), 신덕룡(辛德龍), 유녹상(劉祿詳), 김후석(金厚錫), 제○(諸○), 제진(諸璡), 반중인(潘仲仁), 제 억(諸億), 김옥춘(金玉春), 윤낙보(尹珞輔)

 

 

제승재(제 숙소)

 

 

내삼문(경충문)

 

 

효충사

 

효충사(效忠祠)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거충사(巨忠祠)에는

이순신을 비롯한 23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효충사 경내에 모셔진 성웅 이순신 영정

 

 

효충사 내삼문에서 내려다본 옥포만

 

 

철 잃어버린 동백꽃 한 송이

 

 

옥포루 전경

 

 

옥포루 후면 전경

 

 

옥포대첩 기념탑 전경

 

 

옥포대첩 기념탑 후면 전경

 

 

옥포대첩 기념공원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을 거둔 옥포해전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거제시 옥포동 산 1번지 일원에 약 109,000m 2의 규모로

옥포대첩 기념공원을 조성되었습니다.

 

공원 내에는 30m 높이의 옥포대첩 기념탑과 참배단, 옥포루, 기념관,

기념탑 이순신 장군 사당 등이 있습니다.

옥포대첩기념탑과 옥포정은 본래 옥포조선소(현재는 대우조선해양)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1973년 옥포조선소가 기공됨에 따라 1974년 옥포대첩기념탑과 옥포정을 조선소 부근 거제시

아주동 탑곡 마을로 옮겨지었습니다.

 

그러나 부지가 좁고 위치도 적합하지 않아 다시 이곳 옥포동에 부지를 확보하여

옥포대첩 기념공원을 조성하면서 기념탑과 누각을 세웠습니다.

1991년 12월 20일 기념공원 사업을 시작하여 1996년 5월 15일 준공했고,

6월 22일에 옥포대첩 기념공원이 개원되었습니다.

 

1998년 4월 22일에는 이순신 장군 사당 건립공사를

시작하여 1999년 5월 6일에 준공했습니다.

기념공원에서는 매년 이순신 장군 제례행사가 열리며, 6월 16일을 전후하여

3일간 옥포대첩 기념제전이 개최됩니다.

 

 

옥포대첩 기념탑

 

기념탑은 높이 30m로 학익진, 전선, 태산 모양을 형상화하여

진취적 기상을 표현했습니다.

 

 

옥포해전

 

1592년 4월 14일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은 경상북도 상주, 충청북도 충주를 거쳐

5월 2일에는 마침내 서울을 점령했으며, 6월 13일에는 평양에 도달했습니다.

 

일본군은 전국 곳곳에서 살인, 방화, 약탈, 부녀자 납치를 일삼았습니다.

일본군 부산 상륙 후 경상 우수사 원균은 율포 만호 이영남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4월 29일 구원 요청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출전을 결단하고, 5월 4일 축시(丑時, 새벽 1~3시)에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전라남도 여수의 전라좌수영을 출발하여

경상도로 향했습니다.

이순신은 소비포 앞바다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지낸 다음

5월 5일 새벽 원균과 만나기로 약속한 당포로 향했습니다.

 

5일 밤을 당포 앞바다에서 보내고 6일 아침에야 전선 1척을 타고 도착한 원균을 만나 일본 수군의

정세를 상세히 들은 이순신은 남해현령과 경상도 진장들의 전선 6척을 증강 편성하고 거제도

남단을 거쳐 송미 포 앞바다에 도달한 후 밤을 지냈습니다.

5월 7일 새벽 송미 포를 출발하여 일본 수군이

머무르고 있는 가덕도로 향했습니다.

 

옥포만은 지형이 복잡한 거제도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어항으로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 경, 조선 수군 함대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이순신 장군이 타고 있던 판옥선 전방의 척후선으로부터 옥포 선창에 일본 수군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왔습니다.

 

이순신은 여러 장병들에게 일본 수군 발견을 알림과 동시에 전열을

가다듬은 후 공격 개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공격으로 옥포 선창에 정박하고 있던 일본 전함 50여 척 중 26척을 격파하였는데

당시 일본 수군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등의 장수가 지휘했습니다.

옥포해전은 조선이 일본의 수군을 맞아 벌인 최초의 해전(海戰)이며 조선 수군은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군의 통신 및 보급로를 해상에서 차단함으로써 일본군의 상륙, 진격을 저지했고

동시에 조선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줌으로 당겨 본 양지암 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