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삼층 목탑 대웅전을 지닌 화순 쌍봉사(신안 세달살기 2021.11.22)

2021. 11. 30. 01:53나의 이야기

 

쌍봉 사자문

 

저와 신안 지도 2개월 살기를 같이한 강선생님 내외분이 해남 북평면 오산 어촌 체험마을로

2개월 살기를 하시러 떠나 가시고 저와 제주도 명도암에서 같이 삼 개월 살이를 하셨던 정화태

전 대사님이 다시 저의 숙소 동거인으로 새로 입주를 하셨는데 오늘은 그와 함께 화순여행에

나섰습니다.

 

저야 화순은 여러 번에 걸쳐 여행을 한 적이 있었기에 제가 가이드가 되어 임대정 원림과

운주사 그리고 이 곳 쌍봉사와 학포당을 함께 돌아보았습니다. 

 

얼마 전에 찾아갔던 임대정 원림과 운주사는 제 블로그에 최근에 다시 올렸기에 이번에는

생략을 하고 쌍봉사도 오래 전에 올린 적이 있었지만 오래되었기에 다시 올려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쌍봉사의 역사적 고찰보다는 추색에 물든 아름다운 쌍봉사의

풍경 사진들 위주로 감상해 주셨으면 합니다.

 

 

천왕문

 

 

근대에 만들어진 사천왕상

 

사대천왕·사왕·호세사왕이라고도 하는데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야차를 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도의 사천왕상은 고대 인도의 귀인 모습을 하고 있으나

중국화 되면서 무인형으로 변했습니다.


지국천은 수미산의 동쪽을 지키는 동방천왕으로 대개 몸에 갑옷을 걸치고 칼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광목천은 서방천왕으로 갑옷을 입고 새끼줄과 삼차극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장천은 남방 천왕으로, 갑옷을 입고 왼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두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다문천은 북방천왕이며, 갑옷을 입고 오른손에는 창·막대기·보서를,

왼손에는 항상 보탑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사천왕사지의 녹유사 천왕 상전, 감은사지

3층 석탑 금동사리기에 부착된 사천왕상, 석굴암의 사천왕상 등이 있습니다.

 

 

천왕문에서 바라다보는 쌍봉사의 3층 목탑 대웅전 전경

 

 

화순 쌍봉사 대웅전 전경

 

화순 쌍봉사(和順 雙峰寺)는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사동마을에 있는 절로

2014년 12월 26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4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사명(寺名)은 도윤이 자신의 호인 쌍봉(雙峰)을 따서 이름 붙인 것입니다.

 

곡성 태안사에 있는 혜철 부도비에 혜철이 신무왕 원년(839)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후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철감선사 도윤의 주석(駐錫)으로 사세(寺勢)가 커졌는데 나말여초기(羅末麗初期)에는

견훤 세력을 후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시대에는최 씨 무신정권 3대 집권자인 최항이 쌍봉사의 주지를 지냈다는 점을

볼 때 사세가 대단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점차 사세가 기울었는데 1911년에는

사찰령의 시행으로 해남 대흥사의 말사(末寺)로 편입되었습니다.

 

해방 후  대한 불교 조계종의 성립으로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편입돼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건물은 여러 번의 중창을 거듭하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대부분의 건물과

재산이 소실되었고 1950년 6.25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습니다.

 

극락전과 대웅전만이 보존되어 오다가 1984년 3층

목조탑 대웅전마저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1986년에 대웅전이 복원되고 해탈문 · 요사채 · 종각이 건립되었고 1997년에는

철감선사탑 탐방로 정비와 육화당 신축 공사가 있었습니다.

 

경내 문화재로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과 탑비(보물 제170호)가 있고

목탑으로 쌍봉사 삼층 목조탑이 있습니다.

 

쌍봉사 대웅전(雙峰寺 大雄殿)은 상륜(相輪)이나 찰주(擦柱)가 없어 탑파라고 보기는 힘드나

전체적인 형태가 3층 목탑의 형식을 가지고 있어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목탑의 예로 아주

귀중한 문화 재였었습니다.

 

3층이 모두 각 면이 1간으로 되었고 탑신이 세장(細長)하며 지붕은 1층, 2층이 우진각이고

3층이  팔작인데 길게 뻗은 무거운 처마에 맞추기 위해(包)는 각 면에 2개를 첨가한

 다포(多包)로 되어 있습니다.

 

근년 중수 시에 나온 상량문(上樑文)에 의해 조선 경종(景宗) 4년(1724)에

세 번째 중건(重建) 한 것임이 드러났습니다.

 

 1984년 4월 3일 화재로 소실되어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는데 현재 있는

대웅전은 1986년 네 번째 중건된 것입니다.

 

 

화순 쌍봉사 대웅전 목조 삼존불상(和順雙峰寺大雄殿木造三尊佛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쌍봉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 석가여래좌상 및

가섭 존자상과 아난존자상입니다.

 

이 불상과 동시에 제작된 쌍봉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의 대좌 밑바닥에 쓰인 「발원문」에

“……강희(康熙) 33년 미타전에 미타(彌陀)와 좌우 관음(觀音)·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삼층 보전에 석가(釋迦)와 아난(阿難)·가섭 존자(迦葉尊者)를 봉안하였다. … 금어질 색난(色蘭),

모현(慕賢), 득우(得牛)…”라 적혀 있어 1694년(숙종 20)에 색난, 모현, 득우 등이 불상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삼층목탑형인 대웅전은 1690년에 중수되었음이 해체 보수 때

상량문을 통하여 밝혀졌으나, 이 전각은 198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다행히 법당 내부의 불상은 화재를 피해 1986년 새로 복원된

대웅전 내에 다시 봉안되었습니다.

 

석가여래좌상과 가섭 존자상·아난존자상이 함께 봉안된 삼존불은

그 예가 드문 특이한 배치 방식입니다.

 

석가여래좌상은 왼쪽 허벅지 밑으로 길게 늘어진 연봉 오리형 대의 끝처리가 주목되며 가섭 존자 상의

불의는 다리 사이로 늘어진 긴 옷단의 표현이 특이하며, 아난존자상은 얼굴이 동안이고, 머리 정수리

부분이 튀어나오지 않게 표현된 점이 특이합니다.

 

이 목조 삼존불상은 조성연대가 정확히 밝혀져 있고, 법당 화재 시에도 훼손되지

않고 무사히 보존된 불상입니다.

 

또한 이 불상을 조각한 승려들이 17세기 중반에 전라도 각 지역 사찰의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이 시기 불상 연구의 기준작이 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쌍봉사 철감선사탑(雙峰寺澈鑑禪師塔)은 국보 제57호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사에 있는 부도(浮屠)로 신라 말기에 건립되었습니다.

 

 8각 원당 형식(圓堂形式)에 조각이 정교하고 치밀하며, 높이는 2.3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