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3. 16:28ㆍ나의 이야기
수령이 500여 년이 넘는 보호수로 팽나무와 푸조나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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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변의 식영정 주차장 전경
식영정 앞의 휴게 쉼터 원두막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 정자, 식영정 전경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 전남문화재자료 제237호
지정연도 : 2002년 4월 19일
시대 : 조선
종류 : 정자
규모 : 건물 1동 - 정면 3칸, 측면 2칸, 팔짝 단층 와가
무안 식영정(務安 息營亭)은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2002년 4월 19일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3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식영정 전경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林煉, 1589~1648) 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입향 이후 강학 소요처로
지은 정자로 그의 호인 한호처럼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취지로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식영정으로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은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았으며,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 임상덕(林象德1683~1710)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 임 씨 강학 교류 공간이었습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 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에 임연이 지은 복거록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습니다.
식영정은 창건주 임연의 증손인 노촌 임상덕 등 대를 이어가면서
교류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식영정은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 정자라 해도 손색이 없으며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00년대 초반에 중건한 건물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로 팔작지붕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어 그 원형을 알 수 없는 낮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통형의 원주(圓柱)를 세웠습니다.
가구(架構) 형식은 2 고주(高柱) 5량(樑) 구조로서, 종도리와 주심도리는 굴도리로,
중도리는 납도리로 되어 있고 마루 대공은 판대공(板臺工)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앙의 마루방 3면에는 사분합문이 설치되어 들쇠에 매어달게
되어 있으며 후면 벽에는 다락이 있습니다.
식영정은 한호(閑好) 임연(1589∼1648) 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입향 이후 강학 소요처로 지은
정자로 영산강[이호(梨湖)]과 그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곳입니다.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 1683∼1710)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 임 씨 강학 교류 공간이었습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 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경에 임연이 지은
『복거 록(卜居錄)』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다고 합니다.
식영정은 창건주 임연의 증손인 노촌 임상덕 등 대를 이어가면서
교류공간으로 기능하였습니다.
식영정은 인문적 측면에서 보면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 정자라 해도 손색이
없으며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납니다.
현재의 건물은 1900년대 초반에 중건한 건물입니다.
정자의 구조는 2 고주 5량 구조이며 종도리와 주심도리는 굴도리로, 중도리는 납도리로
되어 있고 마루 대공은 판대공으로 되어 있습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고
지붕의 네 귀는 활주로 받쳐져 있습니다.
"연비어약"이라 쓰인 현판의 뜻은 "솔개는 창공을 나르고 물고기는 뛰어오른다."란 의미로
이 식영정에서 내려다보는 영산강의 한가로운 풍경을 나타낸 것으로 느껴집니다.
격실 마루방에서 바라다보는 영산강변 전경으로 현재는 푸조나무와
팽나무가 무성하여 영산강이 잘 보이 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자라기 전에는 잘 보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호는 조선시대인 1610년 에 성균관 진사가 되고 1613년 증광문과에 합격 후 영암군수,
진주목사, 남원부사 등을 지낸 인물로 이 정자는 그의 호인 한호처럼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취지로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식영정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격실 다락 상부 전경
격실 다락 하단부에 방치된 식영정의 현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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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정자에서
식영정 앞 몽탄 노적비 안쪽 영산강변의 코스모스 군락지에서
식영정 하단부 주차장 옆에 세워져 있는 몽탄 노적비
몽탄이란 지명의 유래는 고려시대 왕건 때로 후백제와 전투 중이던 왕건이 동강면으로 퇴각하다가
영산강에 가로막혀 궁지에 몰렸었는데 이때 꿈속에 나타난 노인이 이곳은 잠시 불어난 여울일
뿐이니 건너가라고 하여 이에 용기를 얻은 왕건은 몽탄 나루를 건너가서 전열을 재정비하여 후백제를
무찌르고 통일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글자 그대로 꿈속의 여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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