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4. 14:46ㆍ나의 이야기
의령군 전통장류 활성화센터 전경
일붕사와 봉황대(학소대)를 돌아본 후 정곡면의 호암길(중교리)에 있는
호암 이병철의 생가에 잠시 들려봅니다.
좁은 골목길 안쪽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가긴 어려운지라 장류활성화센터 앞
노상에 이면 주차를 한 후 걸어서 생가로 향합니다.
의령 한옥마을 리모델링 공사 표지판
공사 중에 있는 의령 한옥마을 전경
이병철 생가 쪽 후면의 산
호암 이병철 생가 출입문
그러나 생가의 출입문은 코로나로 인하여 굳게 닫혀 있는 까닭에 담장 너머로 살펴볼 수밖에
없었는데 담장이 높은 탓에 그 마저도 지붕밖에는 안 보이는지라.....ㅜㅜ
하늘에서 바라다본 이병철 생가( ※ 참고 사진)
사랑채
광(헛간)
집안 좌측의 복 바위
이병철 회장 생가가 부자 터라고 하는 것은 주변 산이 곡식을 쌓은
노적봉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좌청룡 자락에는 쌀가마니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이 생긴 복 바위가 있는데
이를 어떤 사람들은 밭 전(田) 자로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안채와 사랑채
※ 가옥 내부 참고 사진 4장
호암 이병철 생가(호암 생가)는삼성그룹의 창립자인
호암 이병철이 태어난 집입니다.
1851년 이병철의 조부가 대지 면적 1,907m 2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으며, 이병철은
유년 시절 때부터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습니다.
현재의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氣)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地勢)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南江)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明堂)이라고 한답니다.
생가 좌측의 담장 전경
출입문 좌측의 골목 안에서 바라다본 생가
담장 너머로 바라 보이는 곳이 라곤 생가 지붕뿐인지라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 탓에 여러분들께는 참고 사진으로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드립니다.
다시 이곳에서 정암(솥뚜껑 바위)으로 향합니다.
의령관문공원의 정자각 전경
왕복 4차선인 79번 국도를 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정암치안센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의령관문공원을 돌아보면서 정암으로 걸어서 향해 봅니다.
79번 국도의 정암교(왕복 4차선 국도로 의령과 함안을 연결)와 정암철교(현재는 인도교)
망우당(忘憂堂) 친필 자작시 - 영회(詠懷)
平生慕節義(평생모절의) : 평생토록 절개 의리 사모했건만
今日類山僧(금일류산승) : 오늘은 산속의 승려와 같네
絶粒無飢渴(절립무기갈) : 곡식을 안 먹으니 주림과 목마름이 없고
心空息自凝(심공식자응) : 마음을 비우니 호흡 절로 이루어지네
충익공홍의장군전적기념비(忠翼公紅衣將軍戰蹟紀念碑)
경남 의령의 9경은 충익사, 자굴산, 봉황대(일붕사), 벽계관광지, 정암루(솥바위),
탑바위, 수도사, 백산 안희제 생가, 호암 이병철 생가 등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봉황대(일붕사), 이병철 생가 그리고 정암루(솥바위)등을
돌아보았으니 의령 3경을 돌아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결된 통로 좌우에는 창의도와 정암진 전투, 의령 큰 줄 당기기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의병 1000여 명을 이끌고
남강을 건너 전라도로 진격하려면 일본군과 맞서 싸워 승리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남강 강가에 깃발들이 바람이 펄럭입니다.
힘껏 펄럭이는 모양새에서 당시의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곽재우(郭再祐 망우당, 忘憂堂, 홍의장군, 紅衣將軍) 동상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하여, 왜적의 호남 진출을 저지하는 데 공을 세운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 자는 계수, 호는 망우당으로 1585년(선조 18) 정시문과에 뽑혔으나,
글의 내용이 왕의 미움을 사서 합격이 취소되었습니다.
그 뒤 향촌에 거주하고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내걸고 혼자서 말을 타고 적진에 돌진하여 적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했으며, 함성으로 군사가 많은 것처럼 꾸미기도 하여 적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붉은 옷을 입어 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의령·창녕·영산 등지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왜적의 호남 진출을
저지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 월이며, 조식의 외손녀 사위이자 문인으로 대제학을 지낸
김우옹(金宇顒)과는 동문이자 동서지간입니다.
홍의장군 동상 좌우에는 홍의장군을 비롯한 18명 장군의 비장한 모습의 부조
홍의장군과 함께 적을 물리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의병들의 부조
정암철교 전경(국가등록문화재 제639호)
이곳은 옛날 선인들이 나룻배를 타고 왕래했던 나루터지만 임진왜란 때는 나루에서 곽재우 장군이
왜장 혜경이 이끈 수많은 왜적을 잠복 끝에 몰살시킨 승전지로도 유명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솥바위 옆으로는 의령관문 중 하나인 2차선 다리와 정암루가 세워져
있으며 의령관문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암철교 안내판
정암철교에서 내려다본 정암(솥바위)
정암루(鼎巖樓)
정암루 전경
정암루에서 내려다본 정암철교
정암루에서 정암이 있는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
끄리를 잡고 있는 여 조사
부녀지간(?)인지 아니면 이곳을 놀러 온 관광객에게 낚시의 짜릿한 손맛을
보라고 양보를 한 것인지는......ㅎ
끄리
끄리는 약 30㎝로 길고 측편(側扁)하며 피라미와 닮았으나
피라미보다 훨씬 큰 하천 어류 중의 대형어입니다.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와 있고, 눈은 작으며 입은 옆에서 볼 때 弓(궁) 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입을 다물면 서로 맞게 끼워집니다.
몸빛은 등 쪽은 암갈색에 가깝고, 옆구리는 옅은 빛이고, 배 쪽은 은백색입니다.
정암(솥바위) 전경
정암(솥바위) 전경
정암(鼎巖) 또는 솥바위는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남강 가운데에 있는
큰 바위로 솥의 모양을 하고 있고, 특히 강물 속에는 솥의 발을 닮은 형상이 세 개가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의령여씨 시조 제단 비(宜寧余氏 始祖祭壇碑 경남 문화재자료 582호)
의령 정암리 남강변 정암정 동쪽 절벽 아래에 세워져 있는'의령여씨 시조 제단 비'는
해마다 제향 하던 제단에 1807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글은 대사간을 지낸 의성인 김한동(金翰東)이 짓고, 글씨는 단성에 거주하던
선비 합천인 이의선(李宜璿)이 쓴 것입니다.
비문에는 시조 묘소에 대한 족보의 기록을 따라 여러 차례 찾아보았지만 증거가 될 만한 묘소를
찾지는 못하였고, 그래서 ‘우음(牛音)’과 가장 근접한 ‘우무(牛武, 井谷)’에 제단을 마련하여
제향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록을 근거로 보면, 이들은 ‘우음곡’을 ‘우무실’과 같이 보아 ‘정곡’으로 비정하고,
다시 ‘정곡’은 ‘정암’이라 여겨 지금의 정암진 인근 언덕 아래에 제단 비를 설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 이곳에서 방어산의 마애사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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