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12. 01:04ㆍ나의 이야기
방어산 일주문
청운당
종각
극락보전
산령각
이곳에서 약사여래 마애삼존불까지 이정표상으로는 0.5km로 표기가 되어 있었지만 생각보단
계단 경사가 심했었고 근자에 산을 탄 적이 없다 보니 무더운 날씨까지 겹쳐 무척 힘이 들 수
밖엔 었습니다.
이정표만 보아도 오르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이 들다 보니.... ㅜㅜ
주변의 암석을 이용하여 용머리가 방어산을 향하게 만들어져 있는 조형물
방어산 약사여래 마애삼존불이 보물임을 알리는 표지석으로 왜 이렇게 비딱하고
글씨도 제대로 안 보이게 세워 놓았는지 참 한심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게 우리나라가 조상들이 물려준 귀한 보물을 대접하는 현 위치란 생각이......ㅜㅜ
방어산 절벽에 새겨진 마애 약사 삼존불 입상으로
통일신라 애장왕 2년(801)에 만든 것입니다.
본존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서 약사여래상임을 알 수 있으며
얼굴이 타원형으로 길게 표현되었습니다.
어깨는 거대한 몸에 비해 좁게 표현되었고, 힘없이 표현된
신체에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는 불상 양식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모두 본존을 향하여 자연스럽게 서 있는데 왼쪽은 일광 보살로 남성적인
강렬한 인상이고, 오른쪽은 월광보살로 눈썹 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글이 새겨져 있어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으며,
통일신라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작품입니다.
함안 방어산 마애 약사여래 삼존 입상(보물 제159호) 전경
咸安防禦山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은 801년 작으로 보물 제159호. 높이 본존상 285㎝,
좌협시 245㎝, 우협시 264㎝. 바위면이 깨지고 금이 간 곳이 많아 불상도 부분적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본존상의 발목 밑이 땅속에 묻혀 있고, 불상 앞의 대지에는 기왓장이 흩어져 있으며
주춧돌 같은 것도 보여 이 불상을 덮는 불당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본존불 입상은 몸체가 긴 편으로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왼손은 약함을 받치고 있습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얼굴은 갸름하고 삼도(三道)는 가슴 위에
늘어진 목걸이처럼 선각되어 있습니다.
좁고 둥근 어깨에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가슴으로부터 흘러내린 U자형 주름이
넓은 간격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하체는 중간에서 주름이 끊기고 있습니다.
양쪽 협시보살상은 본존의 어깨 밑으로 낮게 서 있어 상체만 지상에
드러나며 모두 본존을 향해 몸을 틀고 서 있습니다.
보관은 없고 머리를 틀어 올린 것으로 짐작되며 우협시는 갸름한 얼굴에 양손을 합장했으며
가슴에 걸친 간단한 목걸이와 팔에 걸쳐 배 앞으로 늘어진 천의 자락이 거칠게 선각되어 있습니다.
좌협시는 우협시에 비해 얼굴이 둥글고 크며 이목구비 표현도 거친 편이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며 가슴 앞에 들고 있고, 왼손은 검지를 세우고 손등을 보인 채 들고 있습니다.
두 보살상은 이마 중앙에 둥근 무늬가 있으므로 해와 달이 표현된
일광(좌협시)·월광(우협시) 보살로 생각됩니다.
우협시의 팔꿈치 옆에 새겨진 명문(成人彌刀秦貞元十七年辛巳三月)에 의해
801년(애장왕 2)에 조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형식화된 옷 주름 표현과 장대해지고 긴장감이 줄어든
신체 표현에서 시대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삼존상은 연대가 확실한 9세기 초 약사 삼존불의 조상(彫像)의 예로 중요하며
신라 하대 불상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본존불 입상은 몸체가 긴 편으로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왼손은 약함을 받치고 있습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얼굴은 갸름하고 삼도(三道)는 가슴 위에
늘어진 목걸이처럼 선각되어 있습니다.
좁고 둥근 어깨에 통견의 법의를 걸치고 가슴으로부터 흘러내린 U자형 주름이
넓은 간격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하체는 중간에서 주름이 끊기고 있습니다.
양쪽 협시보살상은 본존의 어깨 밑으로 낮게 서 있어 상체만 지상에 드러나며
모두 본존을 향해 몸을 틀고 서 있습니다.
보관은 없고 머리를 틀어 올린 것으로 짐작되며 우협시는 갸름한 얼굴에 양손을 합장했으며
가슴에 걸친 간단한 목걸이와 팔에 걸쳐 배 앞으로 늘어진 천의 자락이 거칠게 선각되어 있습니다.
좌협시는 우협시에 비해 얼굴이 둥글고 크며 이목구비 표현도 거친 편이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보이며 가슴 앞에 들고 있고, 왼손은 검지를 세우고 손등을 보인 채 들고 있습니다.
함안 방어산 마애 약사여래 삼존 입상(咸安 防禦山 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은
경상남도 함안군 방어산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불상입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159호 방어산 마애불(防禦山磨崖佛)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7부 능선의 방어산 마애불 옆의 등산로 전경
방어산(530.4m) 능선으로 형하는 계단으로 이곳에서 오른쪽 능선을 타고 나가면 방어산 정상부에
다다르게 됩니다만, 오후 해 질 녘 늦은 시간에 이곳에 도착했는지라 아쉽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밖엔 없습니다.
진주시 지수면 승산 부자마을의 둥지를 향하여 날아가는 형상의 방어산은 좌측의 괘방산과
연결이 되어 있으며 웅산이라고 불렸으며 정상에는 옛날 성의 자취가 남아 있고 정상에서는
지리산과 동남쪽으로 어항산이 바라다 보인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300 근짜리 활을 쏘는 묵 신우라는
장군이 병자호란 때 성을 쌓고 성문을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적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때 장군이 타던 말의 발굽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선연하다고 합니다.
정상은 큰 바위로 되어 있어 장군 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그곳에서 50m 아래와
200m 아래 지점에는 마당바위와 흔들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흔들바위는 높이 8m 폭 6.5m의 끄덕 바위라고도 부르며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서쪽 진양 사람과 동쪽 함안 사람들이 바위 앞에 올 때면
서로 자기 쪽 마을로 바위를 기울게 해 놓았다고 합니다.
방어산 정상부 전경 사진(※ 참고자료)
방어산 정상에서 바라다본 지수면 전경으로 앞의 돌출 부분이 학의 머리 부분(※참고사진)
지난번에 제 블로그에 올려드렸던 부자의 기가 오랜 역사를 타고 흐르는 진주 승산 부자마을 편에서
방어산에 관하여 언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왜 이 방어산이 승산 부자마을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를 알려드리기 위하여 방어산에서 바라다보는 지수면의 사진을 올려드려 보았습니다.
또한 남강물이 군계를 이루는 의령군과 함안군 사이에는 항상 물속에 잠겨 있는 솥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솥바위’ 또는 ‘정암(鼎巖)’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도인이 바위에 앉아 나라를 움직이는 국부( 國富)가 태어날 것이라 예언한 뒤
이 지역에서 세 부자가 태어났다는 것으로 그들이 바로 삼성 이병철(의령군 정곡면 증교리 722)
금성(현재의 LG) 구인회(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360) 효성 조홍제(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3구)
회장이라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창업자 생가는 솥바위 반경 20리 이내며 방향이 남과 북, 동남 쪽이어서
세 곳을 연결하면 솥단지의 세 다리가 된다고 합니다.
빈 솥은 곡물로 채우는 것이며, 물에 항상 잠겨 있으니 재물 또한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와 함께....
지수면 승산마을의 지형은 우수 지좌 출(右水之左出·물의 흐름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기운 것)로 자연 생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지형의 등뼈인 백두대간이 동쪽에 치우쳐 있어 대부분 물길이
동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동출서류(東出西流) 형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한강에서 합류돼 서쪽으로 빠지는 것처럼
물길은 어디서든 동쪽으로 역류했다가 합류해야 생기를 얻는 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지수면의 승산마을은 수구가 남향판에 서출동류(西出東流·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 다음 다시 합류되는 것)한다고 합니다.
강이나 냇가에서 흘러가는 물과 함께 내려가면서 고기를 잡기가 어렵듯이
물길을 역류하는 고기들은 힘이 세다고 하는데 역으로 한번 뒤집어야 생기를
타고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랍니다.
의령과 함안의 경계인 남강변에 위치한 정암(솥바위) 전경 사진으로 곧 올려드릴 예정입니다.
마당바위와 방어 산성(※참고사진)
용마의 발자국(※참고사진)
방어산 마애삼존불 앞 우측 등로에 세워진 비로자나불 표지판
방어산 마애삼존불을 돌아보고 하산을 하려다가 위의 표지판에 호기심이 생겨 50m 정도면
금방 가볼 수 있겠단 생각에 비로자나불 부처가 있다는 곳으로 향해봅니다.
그러나 착각은 자유라고 50m 거리라고 하였지만 실제론 이곳이 산인지라
한참을 가야만 하다 보니 생각보단 힘이 듭니다.ㅋ
방사탑 전경
약수터 전경
약수터 위쪽은 절벽의 틈새를 이용한 허술한 움막이 있었는데 제 생각엔
이곳 비로자나불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들의 임시 거처 같다는 생각이......
비로자나불 부처
참 기이하게도 이곳의 지형이 방어산 마애삼존불 배 경하고 닮아 보이는 탓에
호기심에 후면 암벽을 자세히 살펴볼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암벽에 무언가 새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 것이 정확한지에 대하여서는.....ㅜㅜ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암벽에 무언가가 새겨진 것 같습니까?
오늘 이곳이 초행길이다 보니 저로서도 무척 궁금합니다만, 이곳에 대한 자료나
지식이 전혀 없다 보니 저로서도 무척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곳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아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댓글이라도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재질 자체가 훼손되기 쉬운 암벽이다 보니 많이 마모가 되었겠지만
무언가가 새겨져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비로자나불 부처님이 있는 곳에서 다시 U턴하여 마애삼존불을 거쳐
차가 주차된 마애사 쪽으로 하산을 합니다.
처음으로 접한 야생화(?)
처음으로 접한 야생화(?)
아버지상
어머니상
2층 명부전, 1층 만수전
나무아미타불 표지석 밑에는 태광그룹의 박연차 회장 내외와 박주환 대표이사 내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 사찰은 유명한 사찰은 아니지만 태광그룹의 많은 후원을 받는
사찰처럼 여겨졌는데 그런 탓인지 생각보단 규모가 제법 커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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