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30. 16:59ㆍ나의 이야기
봉황대 전경
일붕사 출입문 범종루 전경
2020년 가을 초입에 제주도에서 거문오름 축제 기간 중 둘레길 코스를 걷다 보니
도로변에 낯선 스님의 동상이 보여 자세히 보았더니 일붕 선사란 동상이어서 왜
이렇게 스님을 신성시하였는지 무척 궁금했었는데 오늘 이곳에서
그 해답을 구합니다.
제주가 고향인 스님에다가 일붕종 창시자이다 보니.....ㅎ
일붕사는 천혜의 자연 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위치한 사찰로 이 사찰이 유명한 것은
동굴법당인데 이 법당은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습니다.
이 법당의 크기는 456.2m²(138평)과 297.5m²(90평). 현재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 도량으로 하루 평균 2백여 명의 불자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일붕사는 사찰 대지 16,529m²(5천 평), 임야 99,174m²(3만여 평), 신도수 2천여 세대,
석굴 대웅전 456.2m²(138평), 석굴 무량수전 297.5m²(90평), 제1요사, 제2요사, 조사 전,
약사전, 북극전, 나한전, 산신각, 종각 등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서기 727년 신라의 혜초 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으로 일붕사는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최고의 격전지였습니다.
당시 왕 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태종 무열왕의 삼 왕자가 계셨던 중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덕사도 이조 성종 25년 국경으로 불사 33개소를 회합함으로써 그 영향을 받아
승려를 학대하고 사찰을 파괴함으로써 봉황대 성덕사는 어쩔 수 없이 사찰을 궁류면 운계리
팔사곡 자사산으로 옮겨 정수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후 (148년 전)에 장사 곡 출신의 어떤 인물이 들어와 승을 축출하고 암자를 파괴할 때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도 미륵불상 한불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주승이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그 불상을 업고 합천군 연호사로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의 연호사 불상 중 일부분이 성덕사 불상이라고 전해져 오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자로 있다가 1934년 8월 26일 당시의 면장이 산주와 더불어 봉황대의 덕경을 도우기 위하여
벚꽃나무를 심고 관세음보살상과 여래 불상을 모셨으나 소실되어 다시 이 야용 스님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1984년 10월 24일 누전으로 인하여 또다시 성덕사 법당이 완전 소실되었으나 1986년
7월 26일 사단법인 일붕 선종회 (지금의 재단법인 일붕선교종) 창종주 일붕 서경보 종정 큰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 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흥을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 사찰명을 일붕사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천왕상
종무실 전경
나반존자와 산신각
칠성각
칠성각 내부
관음전
관음전 내부
극락보전
극락보전 내부
화려한 극락보전 전경
산신각
독성각
용왕당
포대화상
용왕당
대웅전
대웅전 내부
무량수전
무량수전 내부
일붕 대종사 9층 사리탑 전경
대한 불교 일붕 법왕종 총본산인 일붕사에는 세계 최대의 석굴법당과 바위틈에 자리 잡은
나반존자, 병풍바위 밑의 약사여래불, 삼천불의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 지장전이 있으며,
83과의 일붕존자 진신 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서경보 스님의 유품이 마련된 기념관도 있습니다.
일붕사가 소재한 봉황산은 신라시대 삼국을 통일에 기여한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첫 요새지로서,
신라 최고의 군사부대였던 봉황대의 이름을 따 봉황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727년 신라 성덕여왕 26년에 혜초 스님이 중국과 인도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중 꿈에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절벽에서 지장보살님이 환하게 웃으며 이곳에 호국영령들을 위로해 줄
불사를 하면 훗날 큰 보배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스님은 귀국하는 길로 성덕여왕께 말씀드리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 헤매다가, 꿈에 본 기암절벽과
모습이 흡사한 이곳 봉황산에 사찰을 건립하여 당시 성덕여왕의 이름을 따 성덕사라고 하던
것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봉황루 전경
봉황대에서 바라다보는 전경
봉황대에서
봉황대는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이곳에서 벽계저수지를 향해 꺾어 드는 길
초입의 산과 바위 그리고 정자 이름이 모두 봉황대입니다.
의령읍에서 동북간으로 의령 기점 약 20km 지점에 있는 봉황대는 한마디로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일대 장관입니다.
봉황대 중턱에는 약간의 평지를 깎아 누대 하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봉황루로 50여 명이
앉아 놀 수 있는 봉황새의 머리처럼 생긴 이 봉황루에서는 인근의 유생들의 잦은
시화 모임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아래의 옆에는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잘 알려진 일붕사라는
큰 절이 있어 불자들의 내왕이 많은 곳입니다.
봉황대 기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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