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9. 13:34ㆍ나의 이야기
남악 서원 전경
진주 남악서원(晉州 南岳書院)은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중수된
서원으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호 남악서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김유신·최치원의 영정과 홍유후·설총·문창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680년경에 지었고 1919년 지방유림들이 다시 세웠는데 경주 서악서원의 이름을
본떠 남악 서원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경내에는 사당, 서원 2동의 재, 솟을대문이 있습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서원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대청이 없이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합니다.
서원 좌우에 마주 보고 있는 재는 각각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입니다.
남악 서원의 역사적 의의는 김유신 장군에 얽힌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는 점으로 우리나라
역사의 여러 위인들이 사당에 함께 모셔져 있다는 점으로 비교적 유래가 깊은 서원입니다.
솟을대문인 도남문 전경
이곳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 중요한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이곳 금산 아래에서 진을 치고 휴식하던 중에 꿈결에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1919년에 이 지방의 유림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서원을 세우고
경주 서악서원의 이름을 본 따 남악 서원이라 하였습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의 기와집 형태의 사당에는 김유신 장군님과
최치원의 영정, 홍유후, 설총, 문창후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사당 앞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 형태의 강당이 있는데 이 강당의 특이한 점은
대청이 없는 대신 전면의 툇마루를 확장하여 대청의 기능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남악서원 전경
강당의 서편 협실은 봉양제
남악서원 강당의 편액들
서재 전경
서재에는 시습당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전사실도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재 전경
서재 시습당 전경
내삼문의 편액은 내사문
1919년 개국 공(開國公) 김유신(金庾信)의 사당이 있었던 곳에 지방 유림들이 중건한 서원으로
남악서원에는 김유신과 관련된 전설만 전해지지만 서원으로 승원 하면서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의
사례에 따라서 유학자인 홍유후(弘儒侯) 설총(薛聰)과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을 함께
제향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원의 명칭은 동일한 인물들을 제향하고 있던 서악서원을 본 딴 것이며,
시습당(時習堂)·도남문(道南門) 등의 건물 명칭도 유사합니다.
1983년 7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전설에는 김유신이 삼국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전략상 요지를 찾아다니다가 현재의
남악 서원 자리에서 신령을 만나 삼국통일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남악 서원의 기원은 680년경에 세워진 김유신의 사당에서 창건 연대를 잡고 있으며,
서원으로 완성된 정확한 연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건물들은 사당·서원·솟을대문이 남북의 축상에 놓여 있고, 서원 좌우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동·서재가 각각 마주 보고 있는 口자형 좌우대칭 배치의 전학후묘 형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솟을대문인 도남문을 지나면 정면에 강당이 위치해 있는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오량 가구(五樑架構) 팔작지붕으로 대청이 없고 툇마루가 확장되어 대청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강당의 서편 협실은 봉양재(鳳陽齋)이며, 강당의 정면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동재는 편액이 없지만 서재는 시습당이란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강당 뒤편 돌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인 내사문(內祠門)이 있습니다.
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인 남악사(南岳祠)가 있는데, 김유신·설총·최치원의
위패와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남악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3량 구조 팔작지붕이며,
전퇴간(前退間)이 없습니다.
향사일은 매년 음력 3월 18일입니다.
남악 서원이 중수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으나, 이미 그 이전부터 김유신의 내력이 전해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한국의 여러 위인들이 사당에
함께 모셔져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유래가 깊은 서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남악사 전경
진주에서 생각지도 않은 직계 조상님을 모신 서원을 보니 김유신 장군의 후손으로
예를 갖출 수 밖엔 없었는데 아쉽게도 관리인도 보이 지를 않고 내사문이 잠겨 있는
까닭에 돌계단에서 배례를 올립니다.
살림채 전경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도 보았음 이 서원의 건립 유래라도
들어보았으면 좋으련만 바쁜 농사철인지라.....ㅜㅜ
살림채 앞에 곱게 핀 해당화
남악 서원 앞에서
바로 남악서원 옆에 있는 종증 제실로 마침 공사 중인지라 대문이 열려 있어 들어와 보았으나
공사를 하고 있는 작업자 한 분 밖에 없다 보니 어떤 종중의 재실 인지도 잘 모르는.....ㅎ
남악 서원 측면 전경
남악 서원이 위치한 죽곡마을 표지판
애마에 무임승차한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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