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0. 00:18ㆍ나의 이야기
조려의 호배 도강 전설은 이조 말 선대에서 고조부가 장능의 참봉(종 6품)을
역임하셨기에 익히들었던 전설 중에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재미있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혼령이 호랑이로 변하여 태백산 산신령으로 변했다는
전설도 있는지라 태백산 산신제, 강릉 단오제등의 무격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채미정 전경
조선 단종 때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 위를
차지한 세조의 처신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곳으로
1693년에 창건하였고 1954년에 재건(再建)하였습니다.
정면 4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으로서 백세청풍
(百世淸風)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건물 정면에 방형 연못이 있고 북쪽 절벽 위에 청풍대(淸風臺)에
문풍루(聞風樓)라는 6각정이 있습니다.
조려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본관이 함안(咸安)이고 자는 주 옹(主翁)이며
호는 어계은자(漁溪隱者)이며 시호는 정절(貞節)입니다.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고 명망이 높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함안에 돌아가 백이산(伯夷山) 아래에서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1698년(숙종 24) 단종의 왕위가 복위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정조 때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1703년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배향(配享)되었으며
문집에 《어계 집(漁溪集)》이 있습니다.
채미정(采薇亭)은 조선시대의 누정으로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이
단종 폐위에 분개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곳에 후손들이 1693년에
지은 정자로 지금의 건물은 1954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 합니다.
채미정을 배경으로
흉물스러운 시멘트 교각
채미정(采薇亭)이란 이름은 "고사리나 캔다"는 뜻으로, 백세청풍과 같이
백이, 숙제의 중국 고사에서 따온 말입니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은 중국의 백이 · 숙제를 배향한 이제 묘(夷齊廟, 淸聖廟라고도 한다)에
걸려 있는 글씨를 모사한 것이라 합니다.
주자(朱子 1130~1200)가 썼다고 전해지는 이 글씨는, 약포 정탁의 셋째 아들인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사신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갔다가, 이제 묘에 들러 이 글씨를
모사해 온 것이라 합니다.
중국의 청성(淸聖)이라 불리는 백이와 숙제의 청풍이 영원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 문구는,
조선 시대에는, "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충절을 지킨 의인"을 지칭하는 대명사였습니다.
염립재(廉立齋):청렴으로 나와 가문을 빛내겠다는 의미가 담긴 글
단층 팔작지붕 정면 4칸, 측면 3칸
채미정(菜薇亭)은 1698년(숙종 24) 단종이 복위되고 조려의 사당이 서산서원(西山書院)으로
사액되면서 창건된 것이지만, 현재의 건물은 1902년에 재건된 것입니다.
단층 기와집으로 가운데 2칸은 방이고 바깥 2칸은 마루로 된 특이한 구조의 정자입니다.
또 앞뜰에는 못을 파고 동쪽 언덕 청풍대(淸風臺) 위에 문풍루(聞風樓)라는
육각정을 세웠는데, 지형을 이용한 정원 구성이 볼 만합니다.
육각정자 문풍루(聞風樓)
청풍대 석비
청풍대(淸風臺) 정상부에 있는 육각정자 문풍루(聞風樓)
청풍대에서 내려다보는 좌측의 함안 조 씨 대종회 건물과 진주로 가는 지방도 전경
조종도와 그의 부인을 기리는 곳" 쌍절각 "
조선 선조 31년 정유재란 시 함양 황석산 싸움에서 전사한 충의공(忠義公) 조종도(趙宗道)의
공(功)과 그의 부인이 남편의 전사 비보를 듣고 자진한 절개를 후세에 길이 빛내기 위하여
1616년(광해군 8년)3월에 정려를 명(命) 받아 건립한 정려각입니다.
건물의 구조는 팔작지붕, 정면 2칸, 측면 1칸의 목조 다포와가이며
정려 현판은 1732년(영조 8년)에 부인 정려시에 개판(板) 한 것입니다.
함안 조 씨의 시조는 조정이나 실제 함안에 뿌리를 내린 시조인 조열의 신도비
함안 조씨 십 삼충(13명의 충신과 의인) 기념비
서산서원 홍살문
숭의문
서산서원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 곽억령(郭億齡) 등이 생육신인 조려, 이맹전, 원호, 김시습, 남효온, 성담수 등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서원입니다.
서산이라는 명칭은 중국 사기열전에서 고죽국의 백이. 숙제가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죽기 전에 채미가를 지으면서 그 첫 구절에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사리나 캐지"에서 절개를
지킨 수양산을 말하는 것으로, 곧 절개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숙종 계사년(1713)에 국가에서는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신미년(1871)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됐다가 그 후 조려 선생의 후손들이 1981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생육신의 충절과 절개를 배향하고 덕의를 숭모코자 세운 서원으로 조려 선생을 포함하여 생육신 모두를 배향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매년 음력 9월 9일 국천제의 향례를 지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재
동재
정절공 어계 조 선생 행적비
생육신 육각비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외문(外門), 육각정(六角亭), 3칸의 고사(庫舍)와 육각비(六角碑), 조려의 사적비 등이 있습니다.
묘우에는 조려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원호·김시습·이맹전·
성담수·남효온 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어계 고택
대문채
대문채의 정려문
忠臣贈 吏曹參判趙旅 之閭肅宗癸未 命旌正宗辛丑 加贈吏曹判書諡 貞節
충신 증 이조참판 조려 지려 숙종 계미 명정 정종 신축 가증 이조판서 시 정철
이 정려문은 조려의 사후에 왕이 내린 정려문으로 숙종대왕이 1703년(숙종 계미)에 충신 조려를
이조참판에 증직하고 집에 정려(旌閭)를 세우라 명령하였으며, 정조대왕은 1781년
(정조 신축)에 추가로 이조판서로 증직하고 시호를 정절공(貞節公)이라 내렸습니다.
어계 고택(漁溪古宅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은 경남 함안 군북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漁溪 趙旅, 1420~1489) 선생이
태어난 집입니다.
고려말 조선 초에 조려(趙旅)의 조부(祖父)인 전서공 조열(典書公 趙悅) 선생은 이성계가 고려 공양왕을
폐위(고려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여 태조왕이 되자 공조전서(工曹典書, 정 2품, 오늘날 국토건설부장관)의 벼슬자리를 내던지고 경기도 두문동으로 들어가 몇 달 살다가, 경남 합천 두 심동으로 내려와 거기서 2~3년간 살다가, 다시 지금의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정착함으로써 함안 조 씨(咸安趙氏)가 되었으니, 함안 조 씨라는 본관이 태생된 집이 바로 어계 고택(漁溪古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계 고택인 재실인 원북재
어계고택 편액
금은 유풍(琴隱遺風)의 금은(琴隱)은 어계 조려의 조부인 조열(趙悅) 선생의 호
사당인 조묘(祧廟)
사당은 어계 선생과 부인에게 제를 올리는 곳으로 어계 조려(趙旅,1420~1489)는 조선 세종, 문종,
단종 때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자는 주 옹(主翁). 호는 어계 은자(漁溪 隱者)입니다.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함안에 돌아와 백이산(伯夷山) 아래에 숨어 살았습니다.
사당 전경
어계 고택의 안채로 추정되는 건물
제 짐작으로는 어계 고택에 붙어 있는 이 건물이 어계 고택의 안채로 보였는데 훼손이 된 까닭에
담장으로 구분되거나 후대에 이르러 다른 분의 소유가 된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함안 생육신 조려 유적(咸安 生六臣 趙旅 遺蹟)은 경상남도 군북면 원북리에 있는
생육신 조려와 관련된 서산서원과 채미정 그리고 원 서산서원 터인 원동재를 포함한
유적으로 2015년 3월 19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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