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성전 청학동 삼성궁.1(진주 두달살기 2021.5.5)

2021. 6. 3. 17:59나의 이야기

 

배달 성전 청학동 삼성궁의 정문인 홍익문 전경

 

 

칠불사를 돌아 본 후 다음 코스로 향한 곳은 청학동의 삼성궁이었습니다.

 

사실 이 삼성궁은 이른 초봄 꽃이 필 때나 가을에 단풍이 들 때 와야 제대로 된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조금 늦어 버린 탓에.....ㅜㅜ

 

어찌 되었던지 간에 이 곳을 다시 오기도 힘든 만큼 입장료

7,000원을 내고 삼성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봄인데도 제법 무더운 탓에 삼성궁을 입장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청학동의 삼성궁보다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청학동의 맑은 계곡이었습니다.

 

모처럼 맑은 계곡물과 작은 폭포수를 바라다보니 애마의 액셀 레이타를 부지런히 밟아

이 곳을 오면서 달궈졌던 발바닥의 열기가 조금은 시원해지는 듯합니다. ㅎ  

 

 

나 홀로 이 곳을 입장하다 보니 이 곳을 찾았던 관광객에게 부탁하여 핸드폰으로 겨우 제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었는데 전문가가 찍은 사진이 아니다 보니 하반신에 역광이.....ㅎ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게 삼성궁의 유일한 사진이기에 그냥 그대로 포스팅해봅니다.

 

 

 

늦은 봄이 었지만 이 곳 삼성궁은 지리산 중턱인지라 지대가 높은 탓에 늦게나마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매화의 붉은 기운이 아직도 붉은색을 머금고 있습니다.

 

 

제가 사실 이 곳을 처음으로 찾아오다 보니 이 곳에 만들어진 건축물들과 돌로 쌓아

만든 성곽들을 보며 묘한 신비감과 경이로움이 느껴지더군요.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석조 건축물.

 

우리의 선조들이 고대에 이렇게 살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고증은 못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이 것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경이감은 정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환인, 환웅, 단군의 세 성인을 모신 배달성전 청학동 삼성궁은 고려 중기 이후 사대주의와

일본의 침탈에 의해 900여 년간 명맥이 끊긴 민족 고대의 역사와 정통 사상인 선도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한풀 선사가 조성한 민족성전입니다.

 

삼성궁은 동방 제일의 명지인 청학동에 우리 민족의 국조인 한배임,항배웅,한배검(檀君)의

세분을 모시고 소도의 성역을 세워 하늘에 제천하며, 고조선 천지화랑의 신선도를 수행하고

민족 고유의 수도 도량이며,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민족정신을 널리 펼쳐 인류 공영에

기여하고자 하는 민족의 성전으로 한국 고대 석조 건축을 시현하였습니다. 


 

청학동 맑은 계곡의 작은 폭포 

 

 

오늘은 물만 바라다보아도 무척 시원합니다.

 

5월 초의 날씨란 게 초여름 같다 보니......ㅎ

 

 

검달길(신령스러운 길)

 

 

돌로 새겨져 있는 한자가 초서이다 보니 저도 어려운 탓에 무슨 문이라는 뜻이긴

하겠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ㅜㅜ

 

이 곳 삼성궁은 흔한 안내서나 지도 한 장 없었습니다.

 

단지 이 곳에 대한 해설은 입장 영수증에 적힌 이야기가 전부이다 보니 저로서도

이 곳을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지 사실 막막하기만 합니다.

 

따라서  사진으로만 이 곳을 느껴보셨으면 하는 게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ㅎ 

 

 

돌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이런 문양에도 어떤 의미가 있겠지만

이에 대한 해설 조차 없으니.....ㅜㅜ 

 

 

작은 섬이 있는 연못

 

 

섬으로 들어가는 부교가 있었지만 위험해서인지 통행금지를 알리는 금줄이...... 

 

 

사신도를 새긴 출입구

 

사신도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도교의 방위 신을 그린 그림으로 삼국 시대에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여 민중들의 정신적 통합을 이루어 중앙 집권을 도모하였고 고대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불교와 함께 도교도 전래되었는데, 도교의 신선 사상은 산천을 숭배하고

불로장생을 추구하여 삼국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신선 세계가 묘사되어 있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 동물인

 청룡(동쪽), 백호(서쪽), 주작(남쪽), 현무(북쪽)를 그린 사신도가 있습니다.

 

백제의 산수무늬 벽돌과 백제 금동 대향로에도 산천의 모습과 신선의 세계가 표현돼 있고, 

신라의 화랑이 산천을 순례하며 심신을 수련한 것도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한대에 전래되었으며, 고구려 무덤의

수호신으로 적극 수용되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는 도상과 화법의 변화에 따라

크게 3기로 나뉘어 발전했습니다.

 

약수리 고분과 삼실총 등의 초기 사신도들은 초보적 상태를 보이나 무용총과 고산리 1호분

등에는 보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강서대묘, 강서중묘, 통구 사신총, 진파리 1호분, 통구 4호분, 통구 5호분 등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고 합니다. 

 

 

주작

 

사신도의 형상은 시대마다 약간씩 다른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대체로

현실과 상상의 동물이 복합된 내용으로 그 모습이 서로 유사합니다.

 

청룡과 백호는 두 날개와 사지(四肢)를 가진 상상적인 동물로 허공을 나는 자세나 외형이 비슷하게

표현되고 청룡은 몸에 뱀의 비늘로 무늬를 넣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머리에 뿔이 한 개 혹은

두 개 돋아 있습니다.

 

화염(火焰)을 뿜고 있는 것이 통례이고 백호의 경우 호랑이의 특징을 살린 안면과

호피 문(虎皮文)으로 표현되었으며, 혀를 내밀어 위용을 나타냈습니다.

 

주작은 봉황과 유사한 형상이며, 일반적으로 한 쌍으로 등장합니다.

 

거북과 뱀으로 표현되는 현무는 청룡·백호·주작 등과 다르게

실존하는 동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뱀과 거북이 서로 몸을 휘감고 엉킨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청룡

 

 

현무 

 

사신(四神)은 ‘사령(四靈)’ 또는 ‘사수(四獸)’라고도 지칭하며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습니다.

 

사신에 대한 도상(圖像)과 관념이 언제부터 유래했는가는 분명하지 않은데 다만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秦漢時代)에 걸쳐 정착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신에 대한 개념은 오행설(五行說)과도 관련이 깊은데 『회남자(淮南子)』의 「천문훈(天文訓)」에서는

오성(五星)을 설명하면서 동방은 목(木)으로 그 동물은 창룡(蒼龍)이고, 남방은 화(火)로 그 동물은

주조(朱鳥)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앙은 토(土)로 그 동물은 황룡(黃龍)이고, 서방은 금(金)으로 그 동물은 백호이며,

북방은 수(水)로 그 동물은 현무라 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오행사상에 기초한 천문관·방위관·색채관이 사신 사상의

성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방위신(方位神)인 사신은 사방의 수호신으로서 군사적으로는

부대의 깃발, 포진에도 응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좌청룡·우백호·전주작·후현무로 풍수지리(風水地理)에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고대부터 고분의 내부, 건축물, 동경(銅鏡), 동전(銅錢) 등 방위의

의미를 지닌 특정 공간이나 기물에 사신을 장식하는 일이 유행하였습니다.

 

 

선국은 마고성,삼성궁,삼신궁,삼선궁,신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고성은 인류의 시조를 모신

마고신궁이고, 삼성궁은 배달민족의 시조인 삼성(한인,한웅,단군)을 모신 곳입니다.

 

선국은 한풀 선사가 명백이 끊긴 민족 고대의 역사와 정통 사상인 선도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원시반본과 마고복분의 큰 뜻을 지향하고,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민족정신을 널리 펼쳐

인류공영에 기여하고자 하는 민족 성전입니다. 

 

 

마고성(麻姑城)은 신라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 있는 상상 속의 지역으로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의 여신 마고에게 두 딸이 있고 이들에게서 황궁씨(黃穹氏),

백소씨(白巢氏), 청궁씨(靑穹氏), 흑소씨(黑巢氏)의 남녀 각 1명의, 8명이 태어났고, 이들이

각각 3남 3녀를 낳았는데 이것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 대를 지나 자손이 3000여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城) 안의 사람들은 품성이 순수하여 능히 조화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고

수명은 한없이 길고 누구나 스스로 지키는 자재율로 질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백소씨(白巢氏)의 일족인 지소씨(支巢氏)가 지유(地乳)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게 함으로써 5 미(味)의 맛에 취하고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천성을 잃게 되고 수명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이들은 성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성안에도 지유(地乳)가 끊어져 모든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태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의 어른인 황궁씨(黃穹氏)가 책임을 지고 마고 할머니 앞에

복본(復本: 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모든 사람의 4파로 나누어 성을 떠남에 있어 황궁씨

(黃穹氏)는 일행을 이끌고 북쪽 문으로 나가 현 동북아시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갔습니다.

 

황궁씨(黃穹氏)와 그의 자손인 유인씨(有因氏) 그리고 유인씨(有因氏)의 자손인 한인씨(桓因氏)가

천년씩 3천 년 동안 복본을 위해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은 결과 기후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상승하여 인성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고성의 마고는 막고 와 같으며 마고는 단지 오래된 옛을 마고라 합니다.

 

 

큰 연못

 

 

제법 물고기도 많이 있는.....ㅎ

 

 

※ 삼성궁은 2개소의 청학동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건축된 워낙 넓은 지역인지라

찍은 사진이 많은 탓에 3부로 나누어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