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성전 청학동 삼성궁.3(진주 두달살기 2021.5.5)

2021. 6. 4. 16:41나의 이야기

 

삼성궁은 청학동에 위치한 선원(仙院)으로

'배달성전 삼성궁'이라고 불립니다.

 

단군 이래의 홍익인간 정신을 계승하는 한국 선도(仙道)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며

여러 돌탑을 쌓고 솟대를 세우는 등 한민족 특유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한풀 선사가 이끄는 단체로 한풀 선사와 삼성궁의 약력은

 삼성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을 남쪽에 재건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곳에서는 선도수련을 주로 하며

 선도라고 표방하지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며 그 근간은 대종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공부는 대종교의 경전을 토대로 삼일신고, 참전계경, 천부경

기본으로 하여 명상 및 삼법 수행을 한다고 합니다.

 

삼법 수행이란 지감, 조식, 금촉을(性.命.精) 단련하기를 주로 하는데,

아리랑 검의 완성을 위한 기초이자 마지막 공부입니다.

삼법 수련 외에도 무술로서 본국검, 택견,국궁을 하기도 합니다.

 

삼성궁은 80년대에는 나름 진지하게 수련을 해왔으나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국유 관광지로 변화되어 수행을 하는 흔적을 찾기는 힘듭니다.

 

대종교는 한국의 민족기원 신화에서 비롯되었으며, 교리에 민족의

정통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단군의 강림을 개천 일로 하여 개교한 날로 삼았으며, 1909년

나철이 근대적인 종교로 중광 했습니다.

 

총전교가 교단을 대표하며, 중앙기구인 총보 사는 대일각, 원로원, 삼일원, 종무원으로

구성되고, 산하에 도본사, 시 교당, 수도원을 두고 있습니다.

 

 

재를 넘어가면 바라다 보이는 두 번째로 큰 연못

 

지리산 청학동의 산골짜기 2개소를 이용하여 만든 성전이라고 생각을 해보시면

이 삼성궁의 규모를 상상하실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제가 바라보아도 그 규모가 참 크다는 생각밖에는.....ㅎ

 

 

우리 민족의 천신 신앙과 제천의식은 고조선부터 조선말까지 우리의 정신에 흐르는

중요한 물줄기이며, 민족문화를 구성하는 주춧돌 성격을 지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신은 고대부터 지고 신(至高神)으로서의 위치를 가졌으며, 지금도

무슨 일이 있으면 하늘(또는 하느님)을 찾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천의식은 고대에는 부족사회의 전통에 따라 전승되다가

점차 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국가의례로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국가의례로서의 제천의식도 각 시대의 역사적 조건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습니다.

 

고조선의 단군신화는 천신이 내려와 인간을 다스리는 건국신화의 형태를 보이는데,

여기서 천신이 내려온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의 신시(神市)는 천신이 정사를 보는

도읍이자 천신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제단으로 파악됩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부여는 영고(迎鼓)라 하여 은정 월(殷正月:12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올렸으며 고구려의 제천의식은 10월에 올리며 동맹(東盟)이라 불렀고,

동예는 10월에 무천제(舞天祭)를 지냈습니다.

 

특히 부여는 군사(軍事)가 있을 때에도 제사를 지내 소의 발굽 뼈로

점을 쳐서 길흉을 가렸다고 합니다.

 

또 삼한에서는 천군이라는 전문 사제를 두어 제천의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삼성궁의 본전인 건국전 전경

 

 

온갖 모형의 소도

 

 

소도(蘇塗)란 『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진서(晉書)』·

『통전(通典)』 등에 이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그중 가장 자세한 기록인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에서는

소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도망자가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마치 부도(浮屠)를 세운 것과 같으나

그 행해진 바의 선악은 달랐다.”

 

소도는 제의가 행해지는 신성 지역이며 별읍이 바로 성역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것은 읍락의 원시 경계표라고도 합니다.

 

그리하여 소도는 신단(神壇)의 의미인 ‘수두’나 높은 지대의 의미인

‘솟터’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성역으로서의 소도는 대마도(對馬島) 등에 일부 전하기는 하나 우리 민족의 현존

민속에서는 전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신간(神竿)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소도란 ‘솟대’·‘솔대’·‘소줏대’ 등에서 온 말로, 여기의 ‘소’는 ‘길게 또는 곧게 뻗은’이라는

의미이고, 대는 ‘간(竿)’이므로, 소도는 입간(立竿)이라 합니다.

 

혹은 소도는 고간(高竿)의 몽고어 발음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합니다.

 

그리하여 소도는 현재 우리 민족의 민속에 나타나는 세 종류의 장간(長竿)을 의미하는데,

첫째는 개인의 가정에서 경사나 기도를 드릴 때에 임시로 세우는 신간이요,

둘째는 마을의 동구에 건립하는 ‘솟대’·‘거릿대’·‘수살목(木)’ 등이고,

셋째는 등과 자(登科者)가 자기 문전이나 산소 또는 마을 입구에 세우는 화주(華柱)입니다.

 

또한 이러한 의미의 소도는 만주의 신간이나 몽고의 오보(鄂博), 인도의 찰주(刹柱)나

인타라 주(因陀羅柱)와 같은 성격을 가진다고 합니다.

 

곧 소도는 종교적인 일정한 성역이며, 그 안에 긴 장대를 세웠고

그것을 중심으로 제의가 행하여졌습니다

.

한편, 소도의 의례는 천군이 주재한 것으로 정설화 되어 있지만, 소연 맹국 안의 별읍이 소도여서

그곳에서는 지신(地神)이나 토템 신(totem神) 등 귀신이 숭배되었고, 천신을 제사하는 천군은

국읍에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담긴 단군 신화

 

옛날, 하느님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삼위태백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지므로,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며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자 환웅이 풍백(風伯) · 우사(雨師) · 운사(雲師)를 비롯한 삼천 명의

수하를 이끌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고

일컬으며 다스렸다.


그는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 등 360여 가지

일을 맡아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그때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들의 간청을 들은 환웅은 쑥 한 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그것을 먹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은 시키는 대로 하여 삼칠일 만에 여자로 변하였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곰 여인[熊女]은 혼인할 상대가 없자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 갖기를 기원하였다.

 

그러자 환웅은 잠시 인간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였다.

 

그 후 웅녀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단군왕검이다.


- 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

 

 

단군왕검에 얽힌 고조선의 건국신화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을 건국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단군신화를 통해 고조선은 제정일치 사회였고 농경생활을 하던 부족 연맹체였으며,

사유재산을 인정하던 계급제 사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군신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이며, 그 이후에도 제왕운기,

세종실록 지리지, 응제시주,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좌청룡

 

우백호

 

이제 삼성궁 관람을 끝내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사실 저 혼자 왔었으면 좀 더 여유롭게 돌아보고 싶었는데 제 차에서 제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은퇴자마을의 이웃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 좀 더 세밀하게 삼성궁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