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3. 14:42ㆍ나의 이야기
아들 열여덟과 딸 스물여덟을 형상화한 의인석 전경
송당마을의 설화 안내판
제주시 구좌읍 소재 송당리는 중산간 마을로, 약 9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제주 무형문화재 제5호인 '금백조신당 당굿'의 계승지로 신(神)들의 고향이자,
오름의 본향으로도 불리는 상서로운 곳입니다.
그 옛날 마을에 산재한 오름과 들녘에서 마, 소를 키우고, 밭농사를 지었던 척박한 땅으로,
태우리(목동)가 많이 살아 그 체취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오름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진데다 제주의 문화적 상징을 품고 있는 까닭에
송당리 당오름은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송당리의 송당 본향당은 제주의 문화적 상징이나 다름없는데 구좌읍지에 따르면 송당에는
"송당루(송 당지)"라는 당이 있었는데 당 안에 오래된 소나무가 있어 다른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큰 소나무가 있는 집이라 하여 '송당(松堂)'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그 내력을 적고 있습니다.
송당 본향당의 당신(堂神)은 다산의 상징인 '금 백조'. 전해오는 당신 본풀이에 의하면,
'웃손당 금 백조, 셋손당 세명주, 알손당 소로소 천국이 좌정해 있으며, 이당에서 아들 애기
열여덟,딸 애기 스물여덟, 손자 애기 삼백 스물여덟이 가지가지 송이송이 벌어졌다'라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당굿은 1986년에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로, 당은 2005년에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는 제주 동쪽 내륙 중산간지역에 들어선 작은 마을로 검은 화산토 깔린 왓(밭)에
더덕·당근·유채·콩 따위를 심고 오름과 모루(언덕)에 소 풀어놓고 키우는 오름의 마을입니다.
크고 작은 오름 18개가 송당리 안에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오름은 당오름이
있기 때문인데 이 당오름은 마을을 지켜주는 영험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설문대 할망이 바닷속의 흙을 퍼서 만들었는데 설문대 할망은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라
한라산을 쌓았는데, 한라산을 쌓다가 떨어진 흙이 섬 곳곳에 오름을 이루었습니다.
제주에 내려오는 신화에는 ‘백주또’라는 여신이 제주에서 ‘소로소천국’이란 남자와 아들 18명과
딸 28명을 낳고 살았는데 죽어서 마을을 지키는 신이 되었고, 자식들도 섬으로 흩어져
각 마을의 신이 되었습니다.
설문대할망 설화가 제주 사람이 제주도라는 자연환경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백주또 설화는
제주도에 정착한 제주사람의 일상을 풀이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주또는 제주 당신(堂神)의 원조로 1만 8000명이나
된다는 제주 신의 어머니입니다.
백주또가 살았던 마을이 송당(松堂)이고, 백주또를 모신
본향당(本鄕堂)이 송당 당오름에 있습니다.
사실 제주도에는 송당리 말고도 당오름이라고
불리는 오름이 여러 개 있습니다.
이를테면 와산리(조천읍)·고산리(한경면)·동광리(안덕면) 등지에도
당오름이 있습니다.
당악(堂岳)·당산(堂山)·당산봉(堂山峰) 등으로 불리는
오름도 당오름의 다른 표기일 따름입니다.
물론 이들 당오름에도 본향당이 있는데 그러나 모시는 신이 다릅니다.
이들 당오름이 모시는 신은 모두 백주또할망의 자손으로 백주또 할망의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손주이거나 친척입니다.
백주또 할망을 모시는 신당은 오직 송당리 당오름에만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송당리 당오름은 368개 제주 오름의 어머니 오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당악(堂岳)이라고도 불리는 당오름은 신당(神堂)이 위치한 오름이라는 의미로
높이 274m, 둘레 1,434m, 면적 14만 1130㎡ 규모의 기생 화산입니다.
전체적으로 동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는 오름의 북서쪽 기슭에
송당 본향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주에는 마을마다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 있었고, 이 신당은 보통 마을의 오름에
짓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당오름이라는 이름의 산이 여럿 있습니다.
송당리 당오름(274m)은 송당마을 옆에 있는데 마을의 해발고도가 200m 언저리이니
오름의 비고(比高)는 70m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오름에 들어서면 느낌이 다른데 산은 낮고 작지만 숲은 깊습니다.
삼나무·소나무·밤나무·쥐똥나무 등 온갖 나무로 숲이 꽉 차 있습니다.
밀도가 높은 숲은 명도가 낮은데 햇빛이 나무에 걸려 내려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숲은 사시사철 검푸르른데 어두 컴컴한 숲에서 왠지 모를 신성스런 기운이 느껴집니다.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송당리 본향당 출입로 전경
송당 본향당 안내판
송당 본향당 전경
“송당 본향당"은 역사에서 수차례 훼철(毁撤)되었습니다.
제주목사 이형상(1653∼1733)이 1년 남짓한 재임 기간 동안 제주 곳곳의 신당 129개 소를
불태우고 1000명 가까운 심방을 강제로 귀농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송당 본향당의 신목도 그때 크게 훼철되었는데 성리학을 숭배하는 선비의 시각에는
제주도의 토속신앙이 허튼 미신행위로밖에 비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일제 강점기에도, 1960년대 미신행위 금지령이 내렸을 때도
송당 본향당은 훼철되었습니다.
제주 신의 어머니를 모신 신당이니 일종의 "시범 케이스"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본향당은 의외로 작은 구묘인데 현무암으로 만든 작은 돌 당집이 3개 층으로
이뤄진 석단 맨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따름입니다.
당집 안에 백주또할망을 모신 위폐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동백나무가 드리운 돌담이 당집을 두르고 있었고 당집 오른편에 선 팽나무에 시선이 자연스레 가는데
제주도에서는 늙은 팽나무가 신목(神木)을 주로 담당하는데, 제주 신의 어머니를 모시는
신목치고는 조금 왜소해 보였습니다.
송당 본향당을 둘러보고 나서 당오름 둘레길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봅니다.
오늘 저와 함께 당오름을 같이 한 강선생님 내외분
올해 세 번이나 지나친 태풍 때문에 듬성듬성 쓰러진 삼나무들 전경
이 곳에서 당오름 정상부로 향해 봅니다.
그러나 당오름은 정상부에 숲이 무성하여 조망권은 1도 없습니다.
사실 조망권이 1도 없다는 것은 이 곳을 등산하고 내려오던 가족 여행객 중 꼬맹이가
한 말이었는데 지금 기억이 나서 그대로 표현을 한 것이랍니다.ㅎ
그러나 오름의 묘미란 정상을 올라야 느낄 수 있다 보니
정상 정복에만 의미를 둔 채 오름으로 오릅니다.
화산석 돌탑
표지석 하나 없는 당오름 정상 전경
이제 다시 올라왔던 등로를 따라 당오름을 하산합니다.
당오름 등산을 마치고 이 곳을 찾았던 이주 주민들이 가르쳐준
제주도의 숨겨진 명소 이승만 별장으로 향합니다.
※ 이승만 별장에 관해서는 먼저 올려드렸으니 제 블로그 검색창을
통하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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