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달랏의 바오다이황제의 여름별장(2019.1.4)

2019. 2. 7. 21:04나의 이야기











달랏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만들어진 바오다이 황제의 여름 별장내의 정원 




달랏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2km 정도 거리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 속에

 응우옌 왕조 최후의 황제인 바오다이와 그 가족을 위하여

1933년에 지어진 여름 별장이 있습니다.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달랏 전체가 사방으로 내려다 보입니다.


바오다이 궁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건물 외관이 궁전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간소하지만 내부에는 거실과 연회실 등 모두 25개의 방이 있습니다.


궁전에는 각종 예술 작품과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바오다이 황제 여름별장 출입문 전경 




















정원에서 퉁소를 불고있는 관리인































돈을 받고 황제와 황후의 고유의상을 대여하여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만든 사진촬영장소






















바오다이 황제의 흉상



베트남이 황제국을 자처했던 응웬 왕조(1802~1945)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기(1885~1945)를 비교해보면 말로만 황제국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후레 왕조 후기, 북부의 찐 가문과 남부의 응웬 가문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각자의 지역을 통치했었습니다.


 그러나 두 가문이 대립하면서 농민에 대한 착취가 심해지자 1771년,

 베트남 최초의 농민 반란인 떠이 썬 (Tây Sơn)이 일어났습니다.


 나라는 점 점 혼란스러워 졌고 결국 찐, 응웬 가문과 후레 왕조는

 모두 무너지고 떠이 썬 왕조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남부 응웬 가문에서 살아남은 응웬 안 왕자가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비엣남"이라는 국호로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웬 왕조를 열었습니다.


 이후에 응웬 왕조는 중국과 우호를 다지면서 프랑스를 등한시하게 되는데 결국

프랑스 선교사 박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군이 베트남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1883년에는 아르망 조약으로 베트남 전 국토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나폴레옹Ⅲ세는 해외 팽창을 목적으로 베트남 침략 구실을 찾다가 1857년

 응웬(Nguyen)왕조에 기독교의 자유보장, 프랑스 통상대표부를 허가해줄 것

 등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1858년 9월 1일 15척의

 전함에 1500명의 병력을 실어 다낭(Da Nang)에 상륙시켜

베트남 식민지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 이후 1862년 6월 5일 제1차 사이공 조약 체결, 1874년 3월 제2차 사이공 조약,

1883년 6월 5일 제 1차 후에(Hue)조약으로 이어지면서 베트남은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고

 외교권 역시 상실되고, 급기야 1885년 6월 청(淸)나라의 이홍장(李鴻章)과 중국 주재 프랑스 공사

 빠뜨노뜨르(Patenotre)사이에 제2차 천진조약(天津條約)이 체결되면서 청(淸)나라는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프랑스의 보호권을 인정하여 줌으로써

 베트남의 전 영토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30일에는 바오다이 황제가 권력의 상징인 황금 보검을 월맹 대표에게 넘겨줌으로써

 143년의 응웬 왕조는 종언을 고하고 3일 후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 바딘 광장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탄생을 선포합니다


















바오다이는 베트남 웅우옌 왕조의 마지막 제13대 황제(재위: 1925년 11월 13일(정식 즉위는 1926년 1월 8일)

 ~ 1945년 3월 11일)이자 베트남제국의 황제(재위:  1945년3월11일~ 1945년 8월23일)이고

  베트남국( 베트남공화국)의 국가원수(재임:  1949년6월13일 ~1955년4월 30일)입니다.


재위기간 중  프랑스와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서 형식적으로 제위를 유지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바오다이는 다시 베트남에서 패권의 발톱을 드러내던 프랑스의 지원으로

 남베트남의 베트남국 국가 원수(元首)가 되었으며, 1949년 프랑스와 조약을 맺고

통치권을 인정받지만, 1955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총리 응오딘지엠이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을 폐지하자 프랑스로 망명해서 칸느에서 살다가 프랑스육군병원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신 약소국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