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9. 23:00ㆍ나의 이야기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을 전한 불교의 성지 사르나트 (Sarnath 녹야원) 전경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함께 깨달음을 얻고자 정진했던 다섯 도반(道伴)을
만나 자신의 지혜를 나눠 주기 위해 강가(갠지스 강)에서 강변 13km 지점에 있는
숲 사르나트를 찾습니다.
부처는 이곳에서 다섯 도반에게 불교의 핵심 교리인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가르치며 최초의 설법을 전했고, 그들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사르나트는 불교와
불교 예술의 중심지로 크게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불교로 귀의한 아쇼카 왕은 사르나트에 칙령을 새긴 기둥과 사리탑,
수도원 등을 세웠으며, 640년 이곳을 방문한 현장 법사는 100m 높이의 사리탑과
웅장한 승원에 1,500여 명의 승려들이 살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8세기 중반 힌두교의 번성과 함께 인도의 불교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12세기 이슬람 침입자들에 의해 주요 건물들이 파괴되면서 사르나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녹야원(鹿野園, 사슴 동산이라는 뜻)’이라고도 불리는 사르나트는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Lumbini, 네팔),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 Gaya, 인도) 그리고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Kushinagar, 인도)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입니다.
유적지 주변에는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한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절이
자리하고 있으며, 매년 수많은 불교 신자들이 이곳을 방문합니다.
사르나트의 나무 그늘과 잔디가 덮인 정원은 혼잡한 바라나시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훌륭한 휴식처가 되어줍니다.
인도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곳곳에서 데이트하는 연인이나
소풍 나온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크 직조 공장 내부전경
갠지즈강을 돌아 본 후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나서 호텔 근처의 이슬람교인들이
운영하는 실크 판매점을 돌아본 후 사르나트로 향합니다.
사르나트(녹야원) 출입구 전경
사르나트 박물관 앞 길거리 기념품 노점상 전경
바라니시 사르나트 출입구 도로변을 지나가는 인도 여학생들
사르나트 안내소의 홍보 영상물 사진
사르나트 유적군 항공사진
인도의 국가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유명한 사자받침 기둥 기념상은 이 곳 사르나트 유적지의
아소카기념물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인도의 국가문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불교 유적지이기도
하지만 인도의 정신적 상징 유물이 발견된 곳이 이 곳 사르나트이기도 합니다.
사르나트 유적군 안내도
사르나트 유적군 전경
아쇼카왕의 석주
유적군 서쪽에 위치한 5개의 아쇼카 석주는 본래 15m 높이였으나
현재는 2m 남짓한 하단부만 부러진 채 남아 있습니다.
석주에는 불교의 분열을 경계하는 아쇼카 왕의 당부가 새겨져 있고,
기둥 꼭대기는 4마리의 사자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BC 3세기 마우리아 황제 아소카가 세운 것으로 현재 인도의 국가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유명한 사자받침 기둥 기념물이 있습니다.
사자상은 현재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벽돌에 묻어 있는 금박들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 전경
스투파의 의미는 알이라는 뜻이며 그 안에 사리를 모시는 것은 자궁과 같은 곳에 들어있는
사리가 깨어나서 부처님의 말씀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를 기원하기 위해서
스투파(탑)에 사리를 모신 것이라고 합니다.
근본여래향실
부처님께서 지내셨던 건물로 많은 순례자들이 금박지를 붙여
금박이 반짝이는 곳입니다.
불교의 4대 성지를 찾아 온 동남아시아의 승려와 신도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를 배경으로
인증 샷을.......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전경
사르나트는 8세기초 현장(玄奘)법사가 이 곳을 순례할 당시만 해도 이곳은 약 30m 높이의
정사(精舍)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그 주위에 100여 단이나 되는 감실에는 황금 불상과
부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쪽에도 등신대의 초전법륜상(初傳法輪像)이 줄지어 서있었고 1,000여 명의 승려가
거주하는 등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고 하였지만 13세기 무렵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에게
유린되어 지금은 폐허의 잔해만 남아 있습니다.
불교에 심취한 독인인 처자로 참선을 하는자세로 모델이 되어주는.......ㅎ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탑인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는
지름 28.5m, 기단을 포함한 높이는 34m에 달합니다.
사르나트 잔디밭에서 짙은 애정을 표현하는 유럽의 젊은 여행객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 근처 잔디밭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동남아 승려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의 다양한 문양들
기념물에 금박을 붙이지마라는 안내판 전경으로 스투파의 훼손을 염려해서
붙여 놓은 안내판이겠지만 스투파에는 호일 금박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ㅎ
상단부에 새겨진 꽃과 문양들은 5세기 굽타 양식이지만, 하단부 벽돌의 일부는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양식으로 밝혀져 아쇼카 왕에 의해 처음 세워졌고
굽타 시대에 증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마라지카 스투파(Dharmarajika Stupa) 전경
1835년 영국 왕립 고고학회가 발굴한 사르나트 유적군은 대부분이 파괴되고
유실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유적지의 넓은 터를 보며 번성했던 시기를 상상할 뿐입니다.
유적군 안쪽에 있는 다마라지카 스투파(Dharmarajika Stupa)는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을 행한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여섯 번의 보완 공사를 거쳐 30m 높이의 규모로 확장되었지만 1794년 바라나시의
마하라자가 자신의 궁을 지을 벽돌을 구하기 위해 헐어버려 현재는
기단 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이제 다음 투어 코스로 사르나트 박물관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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