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의 안식처 타지 마할 .1(2018.12.3)

2018. 12. 24. 10:49나의 이야기










영원한 사랑의 안식처 타지마할 ( Tāj Mahal in Agra, India )





칭기즈칸의 후손인 무굴족 지도자 바부르(Bābur, 1482~1530)는 1526년 힌두스탄의

통치자를 자처하며 인도에 이슬람제국인 무굴왕조를 세웠습니다.


무굴제국은 전성기에 서쪽의 카불에서 동쪽의 벵골만까지, 북쪽의 카슈미르에서

 남쪽의 뭄바이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무굴족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Akbar, 1542~1605)는 농민 3만 명을

 폭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도끼로 난도질해 죽였고 심지어 폭도 2000명의 해골로 피라미드를

 쌓아 반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무굴제국의 통치자들은 잔인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면서도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도

보여주었는데 바부르는 문학을 좋아했고 정원 가꾸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악바르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문답과 철학적 담론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손자인

 샤 자한(Shāh Jahān, 1592~1666)은 건축에 매혹되었습니다.

‘세계의 왕’이란 칭호를 얻은 샤 자한은 서쪽의 칸다하르에서 동쪽의 아삼,

 북쪽의 파미르고원에서 남쪽의 데칸고원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인도 지배자 중 이토록 거대한 제국을 통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샤 자한은 어느 날 시장에서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팔고 있던 열아홉 살의 처녀

 바누 베감을 보고 한눈에 반해 황비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녀를 끔찍이 사랑한 황제는 그녀에게 ‘궁전의 꽃’이라는 의미의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란 뜻으로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의 두 번째 부인이며

 황제의 하렘에는 5000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샤 자한이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은

 뭄타즈 마할이 유일했습니다.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의 부인이면서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었는데 이들은 무굴제국 곳곳을

 함께 여행했는데 전쟁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질투였었는지 이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던 뭄타즈 마할은 임신한 몸으로

 남편과 함께 출정한 데칸고원의 전쟁터 근처 천막에서 아이를 낳다가 서른아홉이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17년간의 결혼생활 중 14명의 자식이 있었음)


 급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에 황제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샤 자한은 하루아침에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아내를 그리워한 황제는 2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사후세계에서의 재회를 기약했다고 합니다.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를

지어주겠다고 한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2년간에 걸쳐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타지마할입니다.



















자이푸르에서 아그라로 향하던중 잠시 들렸던 아바넬라 쿤타의 거대 우물

 찬드 바오리를 돌아 본 후 아그라로 향합니다.


차창 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북인도의 넓은 들녘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잡목을 지닌

 소규모 단위의 농토만 보이는 단조로움의 연속입니다. 


인도는 세계7위의 면적을 가진 나라로 인구수는 세계2위  전 국토의 51%가 농토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넓은 농업 용지를 가지고 있지만 워낙 영세한 소규모 농업이 발달을 한 탓에

 계획적인 영농이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번에 제가 돌아보는 북인도 펀자브지역은 서쪽으로는 많은 부분이 사막지대로

 이루어진 라자스탄지방이 펼쳐집니다.


라지푸트 씨족집단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곳은 초기 이슬람교도의 침입시

강력히 저항했던 계층인 라지푸트 계급 때문에 인도역사에서 힌두 전사계급과

 문화의 요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라지푸트의 행동규범은 고대 힌두 서사시에 등장하는 여러 영웅들에게서 잘 드러나는데 

오늘날은 귀족 출신 통치자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라자스탄은 주로 우다이푸르·자이푸르·조드푸르·비카네르·자이살메르 등

중세 라지푸타나 왕국들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면적 34만 1,900㎢이며,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다양한 라자스탄 방언과 힌디어입니다.


 독립 후 자와할랄 네루, 랄 바하두르 샤스트리, 인디라 간디 등 인도의 정치지도자들은

 주로 우타르프라데시라는 면적 29만 2,700㎢의 거대한 주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야무나 강에서 비하르까지 펼쳐 있는 이 지역은 전설 속에 전해오는 전통 힌두 문화의

고대 중심지였으며 오늘날까지 현대 힌두 문화의 심장부로 남아 있습니다.


우타르프라데시는 마투라·바라나시(바나라스·베나레스) 등의 성도(聖都)를 포함하는데

 특히 인도에서 가장 보수적인 힌두교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바라나시는

 여러 신전들로 유명합니다.


이 지방의 주요 언어인 힌디어는 국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그라로 가던길에 잠시 들린 휴계소 전경으로 이 곳에도 상가 출입구에

 힌두신 코끼리(가네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새들

















차창 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아그라 근처 소도시의 초상화 전문점



















아그라 교외의 간이 음식점 전경

















아그라 시내의 이 동상은 샤자 한의 동상으로 여겨지는데 제 짐작이 맞는지는(?)



















아그라 시내에 있는 오늘 저녁에 묵을 THE RETREAT호텔 전경



















 이 곳 호텔도 힌두신인 갸네샤가 모셔져 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에서 점심을 해결 한 후

 다음 행선지인 타지마할로 향합니다.


















호텔 앞 도로변 풍경들


















전동차를 타고 타지마할 매표소로 향합니다.


















매표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타지 마할 전경

















타지마할 출입문 전경





















타지 마할 출입문 앞 광장 전경

















타지 마할 출입문 앞에서


















붉은색 사암과 대리석으로 건축한 30미터 높이의 출입문 전경
























인도어로 된 타지 마할 안내도



















타지 마할 안내도



1.서문 2.동문 3.남문 4.앞마당 5.카와스푸르사 6.사헬리 버즈 7.정문 8.짜르 박

 9.수로 10,다이애나 의자 11.타지 마할 12.4개의 첨탑 13.모스크 14.자와브

 15.대리석 풀랫폼 16.야무나 강


















타지 마할 출입문의 천정 전경






















출입문에서 바라다 본 타지마할



붉은색 사암과 대리석으로 건축한 30미터 높이의 출입문을 지나면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측의 정원 · 연못 · 나무 등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체적 대칭구조와 건물에 적용한 기하학적 계산의 완벽함은

 지금의 건축학자들이 보아도 감탄할 만합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계획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무굴제국에서는 건축물을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고 합니다.





















제가 요청한 사진은 타지마할을 제 손바닥에 올려 놓고 찍어 달라는 것이 었는데

 워낙 관광객들이 많고 이번 여행을 함께한 친구가 찍사가  아니다보니.....ㅎ
















이 사진도 제가 타지마할의 첨탑끝을 잡은 모습이기를 바랐지만  이 역시도 .......ㅎ


이런 탓에 여행 중  제 사진을 찍는 것이 대체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탓에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타지마할의 반영


















출입문 돔 부분의 전망탑 전경


















출입문 옆의 긴회랑

















카와스 푸르사 전경

















중심부의 기다란 연못에 비쳐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은 그 신비스러움을 더하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타지마할 입구에서 묘까지 250미터의 거리가 한층 멀게 느껴집니다.


 ‘백색의 진주’, ‘꿈의 궁전’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은 낮에는 흰색으로 보이지만 아침에는 자줏빛,

황혼녘에는 황금빛으로 변하며 시시각각 보랏빛과 푸른빛 등 그 색채가 수없이 변한다고 합니다.


달빛에 반사되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중간 부분에서 뒤돌아 본 출입문 전경



















중간 부분에서 출입문을 배경으로.....


















중간 수로 전경





















닐 파킨은 영묘(靈廟, mausoleum)인 타지마할이 인도 · 이슬람 건축의 가장 완벽한

전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첫째, 타지마할은 샤 자한 가즈(80~82센티미터)를 기준 단위로

 삼아 측량함으로써 엄밀한 기하학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대칭구도를 일관적으로 관철시켜 중앙 축을 중심으로 한

 좌우동형 속에서 각 부분들을 통합했습니다.


셋째, 자재 · 형태 · 색채에서 아주 세밀한 장식에 이르기까지 질서를 부여했습니다.


 즉, 누구나 감탄을 금치 않는, 좌우대칭의 균형미와 세련미가 넘치는

 빼어난 예술적 건축물을 구현한 것입니다.


















타지 마할은 궁전도 아니고 50미터짜리 미나레트(minaret, 모스크의 일부를 이루는 첨탑)도

 네 개가 있지만 모스크도 아닙니다.


미나레트는 원근법적 효과를 고려해 바깥쪽으로 약간씩 휘게 건축했고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가운데의 영묘 안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분수대 조형

















자와브 전경


















백색 대리석으로 마감한 본당 건물은 지면에서 6~7미터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기단의 크기는 한 변의 길이가 96미터인 정사각형으로 영묘 건물 자체의 크기는

 56.7미터의 정사각형이고 바닥 면에서 돔의 정점까지는 57미터에 달합니다.

이중의 돔(양파껍질처럼 안쪽 덮개 위에 바깥 덮개가 있는 돔)은 페르시아 양식 그대로이며

흰 대리석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하지만 벽돌에 흰 대리석을 씌운 것입니다.


벽돌은 당시 널리 사용하던 표준 크기인 19×12.5×3센티미터의 것을 사용했으며 벽돌을 주로

 긴 쪽으로 쌓았지만 석회 모르타르를 두텁게 바른 다음 짧은 쪽으로 쌓기도 했습니다.

둥근 천장은 모르타르를 두텁게 바르고 동심원의 고리들을 만들어 쌓았습니다.


이 건축기법을 통해 내부에 강화벽을 세우지 않고도 반구형의 내부 돔과

 공 모양의 외부 돔을 지지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 돔 위에는 9미터 높이의 작은 청동 뾰족탑을 얹었고 돔 전체에는 금박을 입혔으며 

돔은 이스탄불 출신의 이스마일 에펜디(Ismail Effendi)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영묘 정면은 기하학적 형태들이 차분하게 통일된 모습을 보여준주며 반대로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대리석 안에 반질반질한 장식용 돌들을 연결부 없이 집어넣은 ‘플로렌스 모자이크’와 반석에

 새겨진 보주들은 페르시아의 모티프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모스크 전경




















타지 마할 출입문 전경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곳 타지마할 입장시 약간의 특권이 주어지는데 인도인들은 국내인 전용의

 긴 관람줄을 따라 장시간에 걸쳐 맨발로 입장을 해야하지만, 외국인들은  외국인 전용 출입구로

 신발 덮개를 쒸운 후 지름길로 타지마할 내부로 진입을 하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것은 인도인들에 비하여 굉장한 특권이기에 인도가 얼마나 외국인들의

 관광수입에 의존하는지를 증명하는 한 예로 보아도 무방하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지마할 내부는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전문가용 카메라 소지는

 가능하지만 내부 사진 촬영은 불가합니다.





※ 찍은 사진이 많은 탓에 2부로 나누워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