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7. 23:01ㆍ나의 이야기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의 아름다운 전경
"바람의 궁전"이라는 뜻의 이곳은 1799년 마하라자 사와이 쁘라땁 싱
(Maharaja Sawai Pratap Singh)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바깥출입이 쉽지 않았던 여성들을 위하여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거리와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900개가 넘는 작은 창문을 벌집과 같이 촘촘히 만들었습니다.
이는 크리슈나 신의 머리에 쓴 왕관을 본 따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와마할은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전체 모습을 보기 좋은 곳은 맞은편 가게 옥상인데, 이곳에 가면 자신의 가게 옥상에서
구경을 시켜 주고 물건을 판매하는 호객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른새벽 호텔에서 식사를 한 후 자이푸르(4시간 소요)로 이동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 휴계소 앞 도로변 전경
휴계소 전경
자이푸르 시가지 전경
릭샤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릭샤가 대다수이지만 전기식과 자전거식 릭샤에다 사람이 타는
인원수도 다양합니다.
이 곳 자이푸르는 4인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ㅎ
자전거식 2인용 릭샤
자이푸르는 남쪽을 제외하고 모두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성벽 도시로서 12세기 라지푸트 일족이 세운 자이푸르 공국의 암베르를 대신할 수도로
1727년 사와이 자이 싱 마하라자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아름다운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곳은 곧은 선형으로 설계한 것이 독특하며,
건물들이 주로 장밋빛을 띠고 있어 '연분홍 도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처음 자이푸르 시내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분홍색으로 칠한 건축물과 담인데
1876년 마하라자 람 싱(Ram Singh)이 영국의 황태자 에드워드 7세를 환대하기 위하여 구시가지를
분홍색으로 색칠한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현재는 관광 산업을
위하여 분홍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인도 교통의 허브이자 상공업의 중심지인 자이푸르는 천연 염색과 면직물,
보석으로 유명해 혼수를 장만하러 이곳을 찾아오는 인도 현지인들이 많습니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인도 연인들
상호 옆에 일련번호가 부여된 상점들
핑크시티 자이푸르는 인구 약 145먼명이 거주하고 있는 러저스탄의 주도로 현재는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지로서 이 도시는 1727년 암베르의 통치자였던
사와이 자이 싱 마하라자 1세가 건설한 성벽도시로 자이푸르는
자이왕의 성이라는 뜻입니다.
자이 싱은 정사를 멀리하고 아메르 건설에 집중하였는데 점점 늘어만 가는 아메르 백성이 거주할
안전한 곳을 찾는 그의 고민은 자이푸르 건설로 귀착되었으며 자이푸르는 직선 방사형의 거리와
길과 도로 가옥과 주요 도로 양편으로 늘어선 일직선의 가게가 9각의 도시 구역으로 정비되도록
격자시스템으로 설계된 인도 최초의 계획도시입니다.
18세기에 만들어진 분홍색의 계획도시 자이푸르 도시전체가 분홍색으로
치장되어 있어 핑크시티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태인드글라스 유리창
하와마할 건물 후면 전경
하와마할 측면 상가동 건물 전경
하와마할 스태인드글라스 창문 안쪽 전경
시티팰리스 지도
자이푸르 시티 팰리스( City Palace)
자이푸르의 마하라자들이 거주하는 궁전 단지로1729년 자이 싱이 외벽을 비롯한 초기 건물들을
지었지만 이후 20세기까지 건물들이 계속 추가되었다. 라자스탄과 무굴 그리고 유럽 스타일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은항하리
살바또바드라(Sarvatobhadra)
개인 접견실이라는 뜻의 ‘디와니카스(Diwan–i-Khas)’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은항아리로 1902년 마하라자 마도 싱 2세는
에드워드 4세의 대관식에 초청받아 영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생 갠지스 강물만 마셔온 힌두교도인 그는 영국에서 이를 지키지 못해서 종교적 신념이
깨질 것을 우려해 갠지스강물을 가져 가고자 했고, 4,091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은항아리를
만들어 영국 방문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항아리는 은으로 만든 가장 큰 물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마하라자 마도 싱 2세
인도 북서부의 라자스탄은 1,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 지역을 지배한 라즈푸트(Rajput) 부족의
터전으로(라즈푸트는 ‘왕의 아들’이라는 뜻) 라자스탄이라는 이름 역시 이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들은 씨족 단위로 왕조를 세워 지역을 통치했고, 정략결혼을 통한
동맹으로 친교를 맺어 세력을 넓혀 나갔습니다.
16세기 부족 내 다툼이 잦아지면서 무굴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지만 무굴 제국이 용맹하고
독립성이 강한 라즈푸트를 통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18세기 무굴 제국이 쇠약해지고 영국의 인도통치가 시작되면서 라자스탄의 마하라자(왕)들은
영국과 동맹을 맺어 독립국으로의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명목상일 뿐이었고, 영국은 마하라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워
라자스탄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마하라자들은 권력과 부를 모두 손에 쥘 수 있었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은 통치하는 도시마다 왕가의 성을 세우고 각국에서 수집한
진귀한 물건들을 보관하곤 했습니다.
인도 독립 이후 라자스탄이 인도에 합병되고 1970년대 초 인디라 간디가 마하라자의 지위를
몰수하면서 마하라자의 후손들은 예전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왕궁과 땅, 보석, 문화재를 기반으로 한 그들의 경제적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현재 마하라자의 후손들은 그들의 거주지를 제외한 성들을 박물관이나 고급 호텔로
만들어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찬드라 마할(Chandra Mahal)
‘달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지금도 마하라자의 후손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1층의 갤러리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외의 공간은 출입이 불가합니다.
무바락 마할(Mubarak Mahal)
‘축하한다’라는 뜻의 무바락과 ‘궁전’이라는 뜻의 마할이 합쳐진 이곳은 이슬람, 라즈푸트,
영국의 건축 양식을 혼합한 건축물로 19세기 말 Jeypore Architectural Portfolios에 영감을
받은 마하라자 사와이 마도 싱 2세(Maharaja Sawai Madho Singh II)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귀빈을 맞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왕족들이 입었던 옷과 장신구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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