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와 두물머리(2020.6.4)

2020. 6. 8. 16:01나의 이야기

 

 

수종사(水鐘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59년(세조 5) 세조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수로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도중 양수리(兩水里)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와 기이하게 여겨 다음날 조사해보니 운길산에 고찰(古刹)의

유지가 있다고 하여 가보았는데 그 바위굴 속에서 16 나한을 발견했으며 굴 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종소리처럼 들린 것임을 알게 되어, 이곳에 돌계단을 쌓고 절을 지어

수종사라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절에는 현재 1439년(세종 21)에 세워진 정의옹주(貞懿翁主)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창건은 그 이전이며 세조 연간에 크게 중창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뒤 조선 말기에 고종이 풍계(楓溪 : 楓漢)에게 비용을 하사하여 중창하게 했고, 1939년에는

태욱(泰旭)이 중수했으며 6·25 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4년에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대웅보전 등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나한전·약사전·경학원·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로는 수종 사부 도내 유물(보물 제259호)이 있고, 조선시대 금동불감(金銅佛龕)과

금동불·보살상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수종사 다보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이 있습니다.

 

 

수종사 경내의 은행나무
불교방송에서 촬영하는 전경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부

 

 

 

대웅보전의 용머리 장식

 

 

응진전

 

응진전 내부 전경

 

 

 

운길산의 빼어난 풍광을 느낄 수 있는 곳, 수종사는 광주산맥이 남서로 내려오면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운길산은 웅장하지 않지만 그윽함이 감도는 명산입니다.

 

특히 수종사에서 바라본 풍광은 빼어난데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한강으로 합류하기

직전의 북한강의 물길이 장관입니다.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세조가 이 절에 친히 행차하여 땅을 파서 샘을 찾고,

혹은 종을 발견했다고 해서 수종사라 하였다고 전하며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1439년

(세종 21)에 조성된 부도로 확인되어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산신각 내부 전경
산신각
산신각에서 내려다보는 두물머리
약사여래불
응진전

 

 

수종사 부도와 다보탑 

 

다보탑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 높이 330㎝. 본래 수종사 경내에서 동쪽으로 벗어난 언덕진 곳에

있던 것을 1970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습니다.

 

기단부는 2단의 8각 지대석을 계단식으로 올린 위에 상대석·중대석·하대석으로 이루어진 기단이 있고

다시 그 위에 5층의 탑신이 있는 구조로 8각 지대석에는 각 면마다 안상을 음각하고, 기단부의 하대석과

상대석에도 안상과 함께 단판의 복련과 아연을 각각 선각에 가깝게 부조했습니다.

 

5층의 탑신은 높이와 폭이 점차 줄어들었으나 기단부가 높고 좁아

전체적으로 세 장 한 형태로 안정감이 적습니다.

 

탑신 표면에는 각 모서리마다 원형의 석주형을 모각하고

그 옆으로 가는 우주를 새겼습니다.

 

옥개 받침은 3단이며 낙수면과 전각부의 반전은 있으나 옥개석의

폭이 좁고 두터워 둔한 느낌을 줍니다.

 

옥개석의 전각 끝마다 풍경이 달려 있고, 상륜부는 일부 파손되었으나

8각의 노반·보륜·보주가 놓여 있습니다.

 

1957, 1970년에 탑의 여러 부분에서 금동불감, 목조 불감 및 목조불상,

금동불 보살상 등 조선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탑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출토된 불상과 관련하여 1459~9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와 거의 같은 모습의 8각 7층 탑이 인근 남양주 군 와부읍 월문리의 묘적사에 있어

주목되고 있습니다.

 

수종사 부도는 그 안에서 발견된 유물이 보물 제259호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제 9층 탑

(높이 12.7㎝)·은제도금 6각 감(높이 17.4㎝)·청자 유개호(높이 31.4㎝, 입지름 25.7㎝)로 이루어졌는데,

발견 당시의 장치 상황이나 위치는 알 수 없고 청자호 안에 6각 감과 9층 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금동 9층 소탑은 정사각형 평상형 기단 위에 세워진 정사각형 9층 탑으로 기단 위에는

얕은 2단의 굄이 있으며 기단부에는 안상이 투각 되어 있고, 격자무늬·복련·어자무늬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범종각

 

양수리(두물머리) 전경

 

 

양수리는 두 물줄기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두물머리는 양수리의 우리말입니다.

 

과거 양수리 나루터는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던 강원도 정선과 단양, 그리고 물길의 종착지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인 탓에 매우 번창하였습니다.

 

그러나 1973년 팔당 댐이 완공되면서 육로가 신설되고, 양수리 일대는 그린벨트로 지정되면서

어로행위와 선박 건조가  금지되면서 양수리는 나루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양수리의 400년 된 장대한 느티나무와 이른 아침 물안개 피는 모습은 자연의 운치를 느끼게 하며

최근에는 양수리가 영화, 드라마, CF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