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6. 14:17ㆍ나의 이야기
피서산장의 아름다운 호구 풍경중 금산 전경
피서산장은 황제가 머물고 집무를 보던 궁전구(宫殿区)와 황제가 좋아하는 명승지와
자연을 테마로 꾸민 원경구(苑景区)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원경구는 다시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강남의 수향을 축소해 놓은 호구(湖区), 몽골의 대초원을
옮겨 놓은 듯한 평원구(平原区), 동북의 삼림 지대를 빼닮은 산구(山区)가 바로 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곳이 무척 넓고 광할한 곳이기에 저도 이 곳 전체를 돌아보지 못한
까닭으로 인하여 여러분들께는 호구 중심으로만 올려드립니다.
사실 이 곳 피서산장은 2일 정도는 돌아 보아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데 겨우 반나절 동안에
이 곳을 돌아보아야하니 제대로된 피서산장을 여러분들께 보여주기는 한계가 따릅니다.
피서산장 안내도
호구 안내도
멋진 자세로 포즈를 잡아주는 멋쟁이 중국인 아줌씨 관광객
호구(湖区)
궁전구를 빠져나오면 49.6만㎡에 달하는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데 그 호수 안에는
여러 개의 섬을 만들어 많은 건축물들을 세워 놓았습니다.
강희제와 건륭제는 여러 차례 강남을 행차하면서 강남의 원림 풍모에 반했고, 이를 피서 산장에
옮겨 놓기로 결심하고는 크고 작은 8개의 인공 호수를 파고, 강남의 명승지를 모방한 건축물들이
호수를 에워싸도록 조성했습니다.
하호 앞에서
하호 청암정
하호의 청암정
호구는 중국 강남 정원의 축소판을 거니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는데 문원(文园)은
장쑤 성 쑤저우의 4대 정원 중 하나인 사자림(狮子林)을 빼닮았습니다.
호수 한가운데의 가장 큰 인공 섬 여의주(如意洲)를 궁전구와 연결한 제방은 항저우 시 호(西湖)의
백제(白堤)를 모방하여 시 호 강둑을 거니는 기분을 짧게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여의주는 강희제가 자주 머물던 장소로 안쪽에 호수를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누각이 있는데, 지금은 여행자들이 이용합니다.
상호의 금산 전경
비 오는 날 건륭제가 차를 마시며 풍경을 감상했다는 연우루(烟雨楼)는
저장 성 자싱(嘉兴)에 있는 연우루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관광객 서비스 센터로 단장해서 성수기면 늘 혼잡하다고 하는데 호수 구역을
거닐다 보면 야트막한 언덕 위로 우뚝 솟은 누각이 멀리에서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것은 장쑤 성 진장(镇江)의 금산사(金山寺)를 본떠 만든 금산과 상제각(上帝阁)입니다.
건륭시절 '제일재자(第一才子)'라는 명성을 얻었던 대학사(大學士)이자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 책임자였던
기효람(紀曉嵐)은 자신의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연꽃은 여름에 피는데 유독 피서산장의 연꽃은 가을이 되어야 피기 시작한다. 장성의 이남과 비교하여
1개월 남짓 늦는 셈이다. 그러나 꽃은 비록 늦게 피지만 지는 것도 늦다. 9월 초순에 비취빛 덮개에
붉은 옷을 입은 듯 완연한 모습으로 정원에 피어나니 만국(晩菊), 한매(寒梅)와 더불어 풍류와
운치를 견주는 듯하다."
제가 생각을 해보아도 8월 중순인데도 기효람의 글처럼 연꽃이 늦게까지 피어 있는.....ㅎ
여의호의 환벽
여의호의 환벽
호수구에는 호수가운데 3개 섬이 있는데 서쪽에는 환벽(環碧), 북쪽에는 여의주(如意洲),
동쪽에는 월색강성(月色江聲)이 있는데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화벽섬은 고요하고 그윽해 원래 왕자가 책을 읽는 곳이고 여의주에는 고대 건축이 비교적 집중된 곳으로
그중 연훈관(延薰館)은 정궁이 세워지기전 황제가 정사를 처리하는 곳입니다.
등호의 얀유루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건물은 연우루(烟雨楼)인데, 즉슨 절강(浙江) 가흥(嘉兴) 남호(南湖)의
연우루(烟雨楼)을 모방하여 지었습니다.
여기서 동쪽을 바라보면 멀리 보락사(普樂寺) 뒤에 솟아 있는 봉추산(棒錘山)이 바라 보이고
금산도(金山岛) 역시 강소(江苏) 진강(镇江)의 금산(金山)을 모방했습니다.
호수에서 탈 수 있는 유람선은 금산도(金山岛), 연우루(烟雨楼), 총 두 곳에 머무르고
최종적으로는 열하에 다다릅니다.
등호의 얀유루
우측에 바라다 보이는 경추산(봉추산) 전경
경추봉은 방망이를 세워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방추봉(棒槌峰)이라고 불리는데
높이가 38m로 무려 300만년 째 쓰러지지 않고 곧추 서 있습니다.
봉추산의 모습은 모습은 남성의 발기된 성기를 연상시킵니다.
좌측에 바라다 보이는 경추봉(봉추산) 전경
얀유루(Yanyu Tower) 전경
금산 전경
금산 전경
동북쪽에 있는 열하천(热河泉)도 주목을 해야하는데 길이가 300m 남짓한
이 하천은 피서산장의 호수 물이 흘러나오는 수원입니다.
겨울에도 수온 8℃를 유지하여 얼지 않기로 유명한데 비석에 붉은색으로
‘열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청더(승덕)의 옛 이름인 열하가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열하비 전경
열하천은 일종의 온천으로 징호(澄湖)의 동안(東岸)에 있는데 열하천은 호수를 이루는 주요한
세 수원 중에 하나로, 이곳에서 솟아나는 물로 600m길이의 열하(熱河)를 만들었습니다.
강희황제가 이곳에 피서산장을 건설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열하천이었으며,
그는 열하천 외에 경추봉(磬錘峰)이 마음에 들어 이 곳을 선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겨울에도 수온이 6도에 달해 주변 전체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도 얼지 않으며,
비록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온천처럼 수온이 높지는 않지만, 겨울에도
얼지 않기 때문에 열하(熱河)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열하천은 원래 몽골어로 "빠가하룬꿔러"라고하는 목동들이
몸을 씻고 가축에게 물을 먹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산장을 건설하고 물를 끌어서 호수를 만든 후에는 그 물이 흘러 무열하로 흘러들어 가게 되는데
"열하일기"에서는 산장에 온천이 있는데 열하행궁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며 열하가
된다."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열하라는 이름이 기록된 것은 강희9년인 1670년이 처음이었는데
열하천 옆에 열하 두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습니다.
원래는 일본군이 중국을 점령하였을 때 세운 비석이 있었는데 1957년 중국이 건국되면서
새로운 비석으로 대체되었고 1979년에는 열하천비로 바뀌었다가 1987년 다시 지금의
열하비가 세워졌습니다.
호구에서 북쪽으로 걸으면 평탄한 초원 지대와 숲이 드넓게 펼쳐지는데 호구와 엇비슷한 규모로,
느릅나무가 울창한 동쪽은 만수원(万树园)이라고 합니다.
만수원은 궁전구와 더불어 정치 활동의 중심지였었는데 지금은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지만,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속에 화려한 불꽃놀이와 등불놀이 행사가 열린 곳으로 등장합니다.
8각 9층의 영우사 사리탑(永佑寺舍利塔)전경
※ 참고 사진
호구에서 북쪽으로 걸으면 66m의 아이보리색 영우사 사리탑(永佑寺舍利塔)이 있는데
1754년 건륭제가 항저우의 육화탑(六和塔)과 난징(南京) 보은사(报恩寺)의 빼어난 점을
결합하여 사원과 탑을 세운 것입니다.
영우사는 황실의 불교 사원이었으나 중일전쟁 때 파괴되었으며
현재는 8각 9층의 사리탑만 남았습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은사에 찾아 온 봄.2(2020.3.8) (0) | 2020.03.09 |
---|---|
봉은사에 찾아 온 봄.1(2020.3.8) (0) | 2020.03.09 |
청 왕조의 여름 행궁 청더(승덕) 피서산장 궁전구(2018.8.14) (0) | 2020.03.05 |
중국 텐진 하얏트 리젠시 징진시티 리조트&스파 호텔(2018.9.23) (0) | 2020.03.05 |
북경 스차하이 옛거리 인력거투어(2018.9.22) (0) | 2020.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