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9. 01:42ㆍ나의 이야기
나이칼라 언덕에서 바라다보는 트빌리시 시가지 전경
트빌리시는 트리알레티 산맥과 카르틀리 산맥 사이를 흐르는
쿠라(조지아어로는 므트크바리)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458(또는 455)년에 건설되었으며, 같은 해에 조지아 왕국이
수도를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옮겼습니다.
트빌리시는 자카프카지예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길을 장악하고
있던 전략상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1386년에는 티무르에게 약탈당했으며, 투르크인들에게도 몇 차례 정복되었고
1795년에는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거의 불태워졌습니다.
마침내 1801년 러시아인들에게 점령되었으며, 블라디카프카스에서 대(大)카프카스 산맥을
가로질러 트빌리시에 이르는 조지아 군용도로를 건설하여 교통장애를 개선했습니다.
1872년에 흑해의 포티, 1883년에 카스피 해의 바쿠까지 철도가 부설되었습니다.
1921년 조지아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트빌리시는 문화 및 교육 중심지로서 종합대학교와 그밖의 여러 고등교육기관을
비롯해서 100여 개가 넘는 연구소들이 있습니다.
또한 공업 중심지로서 경공업이 활발하여 전동차·공구·농기계·전기장비 등이 생산되며,
기관차 등의 각종 철도차량 수리소가 있습니다.
직물, 가죽제품, 신발류, 가구, 맥주, 포도, 알코올 음료 및
다양한 식품도 생산디고 있습니다.
1966년에 지하철이 개통되었습니다.
트빌리시(Tbilisi)는 조지아의 수도로 도시의 면적은 726km2이며
인구는 134만 5천명 입니다.
트빌리시는 5세기에 사카르트벨로 왕 바흐탄그 1세 고르가살리
(452년~502년)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트빌리시는 수차례, 특히 아랍인과 투르크인들에게 점령당하기를 반복했다가
1801년 러시아의 점령하에 들어갔습니다.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조지아는 독립 국가로 남아 있었으며
트빌리시는 수도가 되었습니다.
1921년 트빌리시는 자캅카스 SSR의 수도가 되었고 후에
그루지아 SSR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991년 4월9일 이후 트빌리시는 독립 조지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트빌리시 케불카 타는 계단에서 트빌리시를 배경으로
여러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Public Service Hall 과 쿠라강에 놓여진 Nikoloz Baratashvili Bridge와
전면의 평화의 다리 그리고 Rike concert hall 과 후면에 바라다 보이는 Presidential Palace
Tbilisi cable car 전경
트빌리시 시가지를 배경으로
조지아의 어머니상 후면 전경
측면전경
건국 1500년을 기념해 세워진 높이 20m의 "조지아의 어머니상"
정면 사진을 찍을수는 없는데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있는데,
이 의미는 적에게는 무력을 친구에게는 와인을 주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Kartlis Deda View point
절벽위에 시가지를 배경으로 세워진 탓에 전면 모습을
앵글에 담기는 아주 부적절한......ㅎ
조지아의 국립 보타니칼 정원과 폭포가 있는 곳 전경
나이칼라언덕의 기념품 판매점 전경
코카서스의 아름다운 나라 조지아는 아직 우리에게
그루지야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합니다.
그루지야는 러시아에 오랜 지배를 받았던 조지아의 러시아식 명칭으로 최근 들어서야 공식 국가명이
영어식 발음인 조지아로 바뀌었지만 정작 이 나라의 본래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사카르트벨로(Sakartvelo)", 조지아 민족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카르트벨인의 땅"이란 의미입니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역사는 서기 5세기 무렵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지는데
그전에는 트빌리시에서 25㎞가량 떨어진 므츠헤타(Mtskheta)가 이베리아 왕국
(조지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무려 1600년의 세월을 품은 고도(古都)지만 지나온 역사는 파란만장했는데 소아시아와 동유럽을 잇는
경계의 땅,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지리적 특이성은 이 작은 나라에
축복과 동시에 저주로 작용했습니다.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아는
주변 강호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했습니다.
비잔틴, 아랍, 셀주크 튀르크, 몽골,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 등 주변 세력의 잇따른 침략이
이어졌고 18세기부터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독립을 선언했지만 1,028일 후
또다시 구소련에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소련이 무너진 1991년이 돼서야 조지아는 비로소 독립국이 됐는데 시가지의 중심인
자유 광장 한가운데 솟아오른 탑 꼭대기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는 동상이 있습니다.
동상의 주인공은 조지아의 수호 성인 성 게오르기우스(Saint Georgios)로, 악한 용을
무찌르는 전설 속 모습을 황금빛 조각상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자유 광장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곳은 자유를 향한 조지아인들의 투쟁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로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제창한 수많은 저항운동과 2003년 조지아를 통치했던
셰바르드나제(Shevardnadze)의 부패 정권에 대항하는 장미 혁명(Rose Revolution)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뒤바꾸고자 한 굵직한 사건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나이칼라언덕 후면의 계곡 전경
이 곳에는 폭포가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내려가보지
못했기에 조금 아쉬움이......
나이칼라 요새 전경
나이칼라언덕(Kartlis Deda View point)을 돌아본 후 요새로 향합니다.
Metekhi bridge와 강건너편 언덕위의 Metekhi St. Virgin Church 전경
쿠라강과 평화의 다리 그리고 Rike concert hall
나이칼라요새 전경
Narikala Fortress로 향하는 언덕길 전경
Saint Nicholas Church 전경
나이칼라 요새는 4세기께 최초로 세워졌는데 수 차례의 증축과 개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본래 "부러워할 만한 요새"라는 의미의 슈리스 치케(Shuris Tsikhe)로 불렸지만 조지아를 점령한
몽골인들에 의해 작은 요새를 뜻하는 나린칼라(Narin Qala)로 바뀌었다가 이후 현재의
명칭인 나이칼라로 변경됐습니다.
나이칼라 요새위에서 트빌리시 시가지를 배경으로
나이칼라 요새 전경
나이칼라 요새안에 세워진 Saint Nicholas Church 돔 전경
Saint Nicholas Church 내부 전경
Narikala Fortress의 출입문 전경
Tbilisi Central Mosque
트빌리시에 있는 오래된 사원 중 하나로 수니파와 시아파가 공존하는 특이한 모스크로 트빌리시가
작은 도시이지만 종교적으로도 국제도시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첨탑 모양이 다른 모스코보다 독특하지만 이 곳의 관리자는 매우 친절하여
이교도의 견학도 얼마든지 안내해 줍니다.
Tbilisi Central Mosque
여느 관광 도시와 마찬가지로 트빌리시 또한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은 현대식 건물들로 대체가 되었고 잦은 전쟁이
남긴 상흔들은 콘크리트 건물들로 로 덕지덕지 메워졌습니다.
그러나 구석구석 남겨진 트빌리시의 좁은 골목길들은 화려하고 깨끗한 것만이
트빌리시의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빨래와 구름이 대롱대롱 매어 달린 푸른 하늘, 빛바랜 파스텔톤의 가옥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낡은 테라스 너머 잔잔한 미소를 건네는 트빌리시 사람들. 이 소박한 풍경들이야말로
수십 번의 파괴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는 트빌리시가 지닌 가장 따뜻하고 진실한
얼굴들이 아닐까요?
Tbilisi Central Mosque
The Forty Martyrs of Sebastian Monastery
공중목욕탕 전경
트빌리시 건립에 관련된 전설 중 하나에 따르면 어느 날 바흐탕 왕은
이 지역에서 꿩(혹은 사슴)을 사냥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화살을 맞고 뜨거운 물가에 떨어진 꿩의 상처가 치유된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을 본 바흐탕 왕은 이곳에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믿었고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을 합니다.
트빌리시라는 이름은 "따뜻한"이라는 뜻을 지닌 조지아어
트빌리(Tbili)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메테키 교회에서 쿠라(므츠바리)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트빌리시의
유황온천 지대인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입니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둥그런 지붕이 얹어진
이슬람식 온천탕 형태를 띠고 있는데 지금은 10여 개 온천탕만 남아 있지만 중세에는
60여개가 넘는 온천탕이 존재했을 만큼 성업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푸시킨도 트빌리시 온천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자주 찾았던
오벨리아니 목욕탕 입구에는 "내 생에 트빌리시의 온천보다 더 황홀한 온천을 가본 적이 없다"는
푸시킨의 시구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Heydar Aliyev Park
이 헤이다르 알리에브 파크는 제 짐작에 조지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젠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으로 여겨지는데 이 흉상은 아제르바이젠 헤이다르 알리에브
초대 대통령의 흉상이란 생각이 ......
종교는 달라도 제 짐작에 아제르바이젠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많이 받았던 탓에 그 고마움에
보상하기 위하여 이웃 나라의 초대 대통령을 기념해서 만든 공원이란 생각입니다.
사실 아제르바이젠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나라인지라 코카서스 3개국중에는
제일 잘사는 나라로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는 영토문제로 서로 적대를 하고
있지만 조지아와는 친근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트빌리시 나이칼라언덕과 요새 구경을 마치고 투어 차량편으로 트빌리시 시가지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향합니다.
차창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시가지 전경
조지아 트빌리시 한국식당 Cafe OM 전경
전라도 출신 아줌마와 두 딸이 운영하는 CAFE OM은 코카서스로 여행을 와서 처음으로 대하는
한국식당이었는데 된장찌게와 밑반찬 그리고 수제 아이스크림들은 한국 전라도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곳 카페 OM 은 패키지 관광객들에게 단체 식사를 제공하는 전문식당은 아니었지만
가이드가 다행히 잘아는 집이었기에 예약이 가능했다고 하더군요.
이 곳 조지아에서도 K-POP의 위력이 큰 탓인지 조지아 젊은이들에게
BTS는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이런 탓에 이 곳 카페 OM에서는 한국 음식을 시켜 먹으면 한국에서 구입해 온 BTS의
홍보사진을 손님들에게 선물로 드리기도 하더군요.
저도 한국에서 구하지도 못하는 한 장의 BTS 그룹 사진을 얻는 행운을......ㅎ
카페 OM의 식당 내부 전경
이제 카페 OM에서 저녁을 먹은 후 트빌리시의 야경을 보러 푸니쿨라를 타고
트빌리시 TV 타워가 있는 Mtatsminda View Point 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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