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7. 09:53ㆍ나의 이야기
조지아 바르드지아(Vardzia) 동굴교회 도시 전경
조지아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타마르 여왕"은 1160년에 기오르기 3세의 딸로 태어나
1184년 제위에 올라 탁월한 외교력으로 조지아의 전성시대를 구가하였다고 합니다.
쿠라(※ 저는 구글 맾을 참조하였는데 네이버에서는 무크바리란 표기를 사용하고 있어 혼동이 있음)강을
따라 길이 500미터 절벽에 19층 높이의 600여 개의 동굴을 파서 만든 교회도시(수도원)는 기오르기 3세의
군사요새 건립계획에 의하여 건축되기 시작하여 타마르 여왕 때에 이르러 완성되었는데 1283년
지진으로 2/3가 파괴되었던 곳으로 지금도 복원공사 중에 있습니다.
이른 새벽 바르드지아 동굴교회 도시로 향하면서 차창 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야한 광고판 전경
조지아의 시골 풍경들
가던 길의 고속도로휴계소 과일 판매점으로 수박,해바라기,사과,복숭아,포도,토마도,배,복분자,
천도복숭아,오디등을 팔고 있었는데 배와 사과는 보통의 유럽과 비슷한지라 맛은 대체적으로 푸석한
느낌인지라 맛이 없었고 수박과 포도 그리고 복숭아 오디는 맛이 있어서 먹을 만 했습니다.
복분자도 한 통을 사서 먹어보았는데 우리나라 복분자보다는
신맛이 강해서 별로였다는 생각이......ㅎ
역시 과일은 우라나라 과일이 열대 과일을 제외하고는
최고란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고속도로휴계소에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에서 타고 다녔던 투어 차량 전경
아할치헤의 Rabati Castle 전경
아할치헤(Akhaltsikhe)는 행정구역상 삼츠헤자바헤티 주에 속한 도시이자 주도로
아할치헤란 뜻은 조지아어로 새로운 요새란 의미입니다.
크베모 카르틀리 주의 동부, 평균해발고도 1,029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동서로
쿠라 강의 지류인 포스코피(Potskhovi) 강이 흐르는 곳입니다.
기후는 온대 습윤기후에 해당하고 연평균 기온은 8°C,
연평균 강수량은 680mm입니다.
구 지명은 롬시아(Lomsia)이며 1936년 이전
아할치흐(Akhaltsikh)라고도 불리었습니다.
10~11세기에 처음 도시가 형성되었고 1576년 오스만제국에 정복되어
1628년 인근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828년 아드라아노풀 화약에 따라 제정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어 구 쿠타이시 주와
티플리스 주에 차례로 속하였으며 조지아 독립 이후 1990년대 삼츠헤자바헤티 주가
설립되어 주도로 지정되었습니다.
포스코피 강을 사이에 두고 북안은 구시가, 남안은 신시가로 나뉘며 주민은 조지아인
외에 아르메니아인이 거주하고 종교는 조지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로마카토맄교회를 믿고 있습니다.
유적으로 라바티(Rabati) 요새와 성채가 있는데 이 지방을 지배한 오스만투르크제국의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성으로 이슬람풍의 궁전 건축양식이나 뜰의 연못,분수들은 알람브라궁전과
비슷한 면모를 가졌다고 합니다.
1828년까지 이 지방을 지배하였던 오스만 투루크 제국의 건축양식다보니 이 지역은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임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라바티 성채는 이 번 여행코스에서 제외되어 있었기에
도로변에서만 바라다 봅니다.
사실 이 곳 아할치헤를 들렸던 이유는 일행들의 용변 문제와
더위에 지친 심신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 탓에 슈퍼에 들려 약간의 간식과 용변이 주목적인지라.......ㅎ
황금 모스크가 바라다 보이는 라바티 성은 투르크족이 건립한 성채임을 멀리서도 확인 가능하였는데
이 아할치헤는 터키와 아주 가까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지금은 조지아 영토지만
오스만 투르크 제국 당시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종교가 다른 민족끼리 서로 국경을 맞대고 살았으니 이 지역은 수시로 영토확장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탓에 터키의 가파토키아 처럼 이 지역에 살고 있던 크리스찬들은 이슬람 군대가 처들어 오기
힘든 깊은 산속이나 계곡속으로 숨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스마트 슈퍼 마켓
아할치헤 경찰서
라바티 성을 뒤로하고서
인구 4~5만의 아할치헤 시가지를 오가는 조지아 아할치헤 시민들
차창밖으로 보이는 아할치헤 알파마켓 쇼핑몰 전경으로 제 짐작에 농산물 마켓 같아보이는......
차는또 다시 소카프카스 산맥 함준한 계곡속으로 으로 더 깊이 들어 갑니다.
지나가는 계곡 절벽에는 토굴들과 작은 망루 같은 성채들이 바라다보였는데
제 짐작엔 투르크족들의 접근을 방어하기위한 요새같아 보였습니다.
바르드지아 동굴교회 도시 전경
12세기 조지아의 타마르 여왕이 완성한 바르드지아 동굴도시는 열 세단에 이르는
수천 개의 방이 있어서 5만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쿠라강변 쉼터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강 건너편 바르드미아 동굴교회 도시를 바라다 봅니다.
절벽에 토굴을 파서 만든 수많은 방들과 교회, 왕의 처소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 음식을
해 먹었던 식당과 물을 길어 먹었던 곳까지 있었는데 이슬람의 침략에 대비하여 만든
피난처로서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건설 당시엔 약6천여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와이너리만 25개가 있었으며 약700여명의 수도승이
상주하고 있었고 투르크군의 침략시 주변의 마을주민 5만여명이 대피하였다고 합니다.
쿠라(무트크바리) 강변을 따라 길이 500미터 절벽에 19층 높이의 600여 개의 동굴도시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1283년 지진으로 2/3가 파괴되었는데 지금도 복원공사는 계속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바르드지아 동굴 교회 도시를 뒤로하고......
바르드지아 동굴교회 도시는 조지아의 외딴 산골짜기 소카프카스 산맥의 가파른 계곡 절벽 표면을
파서 만든 복잡한 구멍들로 이루어진 벌집 같은 형상의 교회도시입니다.
무크바리 강변 건너편에서 지금은 잘바라다 보이는 곳이지만 이 동굴교회 도시가 만들어져 있던
시기에는 울창한 수목들로 인하여 잘보이지 않는 곳이 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곳에 거주하던 아니면 이 곳 주민들에 의하여 이 곳에 있던 울창한 수목들은
취사를 위한 땔감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을 것으로 유추해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광대한 동굴도시가 그런 연유로 무크바리강변에서 겉으로 들어나
보이는데 보이는 경관만으로도 대단한 규모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슬림인 투르크인들의 침입으로 피해가 심해 골치거리였을 때 조지아의 기독교 왕 기오르기 3세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국경 가까운 곳에 있는 바르드지아를 군사 요새로 만들고자 하였는데
바르드지아란 이름은 기오르기 왕의 딸인 타마르가 동굴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자 외쳤던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기오르기가 1184년 죽자, 타마르가 이 계획을 이어받아 바르드지아를
요새화 된 수도원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여왕이 된 타마르는 조지아가 강력하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위대한 시기를 다스렸으며,
바르드지아는 그녀의 미래상을 표출하는데 잘 어울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12세기경이면 세계사에 있어서 그렇게 문명이 발달한 시기는 아니었기에
이 동굴 교회도시는 기적적인 창조물로 여겨졌을 것 입니다.
열세 단에 이르는 수천개의 방은 5만 명의 사람을 수용할수 있었으며 이 동굴 안에 연회장, 마구간,
도서관, 빵집, 목욕탕, 와인 저장고, 그리고 웅장한 주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의 북쪽벽에는
타마르와 그녀의 아버지를 그린 유명한 프레스코화가 벽화로 그려져 있으며 정교한 관개 체계로
물을 공급해 주었으며 경작중인 계단식 밭까지 물이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1200년대 후반에 지진이 일어나 동굴교회 도시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겉으로 들어난 출구는 한 때
보이지 않게 가려졌다가 1500년대에는 페르시아인들이 침략해 약탈을 일삼아 이 도시의 멸망을
가속화 했다고 합니다.
지진으로 파괴되기 전에는 외부로 전혀 노출된 것이 없는 상태였다고 하는데 그 속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현재는 외벽이 무너져 내려 벌집 모양의 동굴이 그대로 보이는 상태입니다.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히 도달하기 힘든 곳에 있었던 이 유적지는 거의 눈에 뛰지않은 채
감춰져 있었으나, 최근의 복구작업과 홍보로 근자에는 크리스찬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관광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동굴교회도시까지 운행되는 4륜승합차량
매표소 근처에서 내려 매표소까지 걸어가서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4륜 승합차에 차례를 기다리다
갈아타고 동굴교회도시까지 좁은 도로를 타고 올라가야만 하였는데 운행되고 있는 차량이 낡은
탓인지 손님들을 태우고 아래로 내려가서 매표소 아래 평지에서 탄력을 받아 올라가는......ㅎ
순서를 기다리는 일행들
동굴교회 도시보다 더 높은 지형의 맞은편 산 정상에 성벽이 바라다보여 줌으로 확대하여
찍어 본 사진으로 성벽이 아니라 자연 절벽이었는데 안내자의 말로는 이 곳 정상에도
작은 마을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짐작으로는 이 지형 자체가 천연요새의 구조를 지녔던 것으로 여겨져 12세기 무렵에는
트르크족들이 기마민족인지라 말을 타고 주로 계곡을 따라 거슬러 침입을 하였던 것으로 유추해
볼 때 이 곳 정상부에도 동굴교회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을 해봅니다.
바르드지아 동굴교회 도시보다 높은 지역의 무스크다리 강 맞은 편 정상부 전경
사진을 찍는 저를 보고는 손을 흔드는 유럽 여행객들
이제 거대한 동굴도시 출입구에 다왔습니다.
바라다 보이는 성채같은 곳을 지나면 거대한 동굴교회도시(수도원)가 나타나게 됩니다.
※ 찍은 사진이 많은 탓에 2부로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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