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섬서성 최초의 불교사원 와룡사(2019.5.21)

2019. 6. 6. 06:00나의 이야기













시안 와룡사에서 인등을 켜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중국인 처자




인등이란 말의 뜻은 "부처님전에 등을 켠다"는 뜻으로 이 처자가 인등을

 부처님전에 공양하는 속마음은 무엇일까요?


사회주의나 민주주의나 부처님께 의지하는 마음은

같을거라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칩니다. 
























와룡사 출입 도로변 전경























와룡선림 전경




와룡선림은 와룡사로 불리워지면  섬서성 최초의 불교사원으로써 수나라 때 "복용선원",

당나라 때 "관음사"로 불리다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지금의 와룡사로 고쳐 졌습니다.


와룡사는 한령제 시기(168년~189년)에 창건되었습니다.


청나라 광서27년(1901년) 서태후가 시안으로 피난을 왔을 때 돈을 지원하여

 보수하였고 산문 앞에 석패방을 세웠습니다.


당시 몽고, 티벳에서 바치는 불경, 불상은 모두 와룡사에 모셨기에 한 동안은

불경, 불상 수량이 시안에서 첫 번째였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는 옛 시안의 불교문화를 느끼실 수 있으며 시안의

 오랜 역사를 감상 하실 수 있습니다.
























와룡사 돌거북비  
























와룡사 좌,우의 사자상 전경
























지장전 전경

























지장보살























관음전























관음보살























천왕전























종루 전경

























조사전























객당























대웅보전






















달마대사상






















대웅보전 내부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대웅보전 전경





















목어와 운판




범종(梵鐘)·법고(法鼓)·운판(雲板) 등과 함께 불전사물(佛殿四物)에 속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전사물이 보통 범종각에 배치가 되어있는데 이 곳에서는 종루와 구분되어 배치되어 있습니다.


목어는 소리를 내어 대중을 모으도록 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백장청규』에 의하면 식사 때는 길게 두 번을 쳐서 알렸고,

 대중을 모두 모을 때는 한 번 길게 쳐서 알렸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식당이나 창고 등에 걸어두고 오로지 대중을 모으는 데만 사용되었으나,

 뒤에 독경을 하거나 기타 의식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사찰에서는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큰 행사가 있을 때 범종 등과 함께 목어를 치게 되는데,

 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형태도 처음은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차차 용머리에 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로 변형되어 갔으며, 입 사이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태를 취한 것도 있습니다.




운판은 중국 및 우리나라의 선종(禪宗)에서 재당(齋堂)이나 부엌에 달아 두고

 대중에게 끼니때를 알리기 위하여 울리는 기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재료는 주로 청동을 사용하며 형상이 구름 모양을 하였으므로 운판이라 하고, 죽이나

 밥을 끓일 때에 세 번 치므로 화판(火板)이라고도 하였으며, 끼니때에 길게 치므로

 장판(長板)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끼니때에 치기보다는 아침·저녁 예불 때에 범종·법고

·목어와 함께 치는 의식용구로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중생교화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운판은 유독 허공에 날아다니는

 짐승들을 위하여 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비전
























약사불전






















약사불전 내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