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0. 19:38ㆍ나의 이야기
아름다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민속의상을 입고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모스타르 스타리 모스트 SADRVAN RESTORAN(동유럽식당)의 아름다운 미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지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지도로 모스타르의 위치 확인을 위한 자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럽 동남부와 발칸반도 서부에 위치하며, 수도는 사라예보입니다.
국민 구성은 이슬람교도(48%), 세르비아인(37%), 크로아티아인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종교
또한 이슬람교(40%), 세르비아정교(31%), 로마가톨릭입니다.
동쪽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경계를 이루며, 3면을 크로아티아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대부분 산악지대로 고도가 보통 해발 1,800m 이상에 이르지만
아드리아 해에 닿은 남쪽으로 향할수록 고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사바 강과 드리나 강, 네레트바 강을 비롯해서 그 지류들이 흐르고 디나르알프스 산맥을
비롯해 남서부 지방은 카르스트지형(틈·돌리네·동굴 등이 있는 석회암 지대)이 특징입니다.
보스니아 지방과 헤르체고비나 지방의 기후는 상당히 다른데 헤르체고비나는 남서쪽에서
올라오는 시로코의 영향을 받는 반면 보스니아는 디나르알프스 산맥의 측면 골짜기로
불어내리는 북동풍인 보라의 영향을 받습니는다.
강설량은 매우 적은 편으로 보스니아는 대체로 온화한 편이지만 겨울에는 몹시 춥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헤르체고비나는 10∼1월에 많은 비가 내리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많은 민족이 거주하지만 주요 집단으로는 인구의 2/5 가량의 이슬람교도, 1/3 가량의
세르비아인, 1/5 가량의 크로아티아인 등이 있습니다.
이 3개 민족들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인종적으로 뚜렷한 구별이 없지만
세르비아인들은 대부분 정교회 교도로 키릴 문자를, 크로아티아인들은 로마 가톨릭교도로
라틴 문자를 사용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의 선조는 오랜 투르크(오스만 제국)의 지배 기간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한
슬라브인들로 역사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민족들은 혼재된 양식 속에서 서로 뒤섞여
살아 왔는데, 이러한 혼재된 양식은 평화시에는 세계 시민주의적 분위기를 부여하기도
하였지만 또한 수많은 전쟁이라는 해악을 불러오기도 하였습니다.
여름이 숨막히게 더운 것이 특징이며 겨울에는 카르스트 지역에 비가 내려
이 지역이 아열대 기후대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 면적의 약 15% 정도가 경작이 가능하며, 주로 북부지방의 토양이 비옥한 편입니다.
곡물, 특히 옥수수와 밀 재배에 적당한 토양으로 콩·평지씨·올리브·포도·오디·무화과·석류·
멜론·오렌지·레몬·쌀·담배 등이 헤르체고비나와 혹한이 없는 보스니아 지방에서 재배됩니다.
농작물 재배는 대개 가축 사육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이 나라는 주요 양사육 지역입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철·보크사이트·석탄 등을 비롯해 다양한 광물자원이 있으며,
또한 이 나라 강들은 수력발전의 잠재력이 큽니다.
현대 광업과 산업은 오스트리아 지배하에서 시작되었는데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시절에는
산업, 특히 야금 부문이 장려되었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이었습니다.
터키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원으로 영토를 탈환하고, 1918년 유고슬라비아의
주가 되었으며, 1946년 북부의 보스니아와 남부의 헤르체고비나지방이 합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991년 공화국 국민투표에서 독립이 가결되어 1992년 3월 3일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공화국 거주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세력 간 유혈 민족분규가 발생하여
내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내전기간 동안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만 명의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였습니다.
1995년 11월 내전 3개 당사국 대통령들이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공군기지에 모여 내전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가조인한 뒤, 1995년 12월 14일 파리에서 보스니아평화 협정에 공식 조인함으로
43개월 여에 걸친 인류 최악의 민족 분규가 종식되었습니다.
협정에 따라 이슬람-크로아티아연방(The Moslem-Croat Federation)과 스르프스카공화국
(Republika Srpska)이 국가연합의 형태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공화국을 구성하였습니다.
1996년 9월에 치러진 총선 결과, 29개 정당에서 3000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이슬람계의
민주행동당(SDA)과 세르비아계의 세르비아민주당(SDS), 크로아티아계의 민주동맹(HDZ) 등
3개 민족의 중심 정당 후보들이 압승하였습니다.
중앙정부의 대통령단 선거에서도 각각 이들 정당의 지도자인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Alija Izetbegovi○)와
몸칠로 크라이스니크(Mom○ilo Kraji○nik), 크레시미르 주박(Kresimir Zubak)이 당선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최다 득표를 한 이제트베고비치가 1998년 선거 때까지 2년간 수석대통령으로서
중앙정부의 집단지도체제를 이끌었습니다.
3인의 공동 대통령은 8개월씩 윤번제로 정권을 담당하며,
그 아래 총리는 내각을 이끌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를 표방하고 있으며, 1992년 유엔에 가입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돌아 보고 다음 코스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로
향하면서 버스 차장 밖으로 바라다 보는 주변 경관들
크로아티아의 농촌 풍경들
아마 이 지역은 크로아티아에서도 농사가 잘되는 고원지대의 평야같다는 생각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농촌 풍경들
날이 거의 어두워지면서 저녁 해가 질 무렵되어 모스타르에 도착을 합니다.
천주교 성당 앞을 지나가는 패키지 여행객 일원
스타리 모스트가 있는 지역은 구시가지인 탓에 주차가 어려운 골목인지라 주차가 가능한
천주교 성당 후면쪽 주차장에 버스를 주차한 후 가랑비를 맞으며 투어에 나섭니다.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 네레트바 강을 끼고 있으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주요 관광지입니다.
버스 터미널이 위치한 신시가지는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조금 걸어서
구시가지로 넘어 오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에서 쉽게 방문이 가능한데
모스타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도시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스타르 천주교 성당 전경
내전에서 페허로 변한채 아직도 방치되어 있는 상점들
이 지역은 그래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그런대로 먹고사는 지역이라고
하는 곳인데도 내전의 참상은 아직도 깊습니다.
주변 풍광이 어두운 탓에 제대로 사진에 담지를 못했지만 모스타르 근교 농촌의
파괴된 성당, 모스크, 가옥등 페허의 잔해는 여기저기 많이 보였습니다.
스타리 모스트로 향하는 골목길 전경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들
스타리 모스트의 다리 첨탑이 바라다 보입니다.
이 식당가 골목에서 스타리 모스트 다리 하류 쪽 네라트바 강변으로
내려가는 골목길이 있습니다.(사진촬영 명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스타리 모스트 부근 지도로 빨간 점선이
제가 모스타르를 돌아 본 곳의 표시랍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 하류에 있는 모스타르의 또 다른 다리
모스타르 스타리 모스트 전경
"스타리 모스트"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모스타르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한 뒤 네레트바 강을 건너기 위한 다리로 1557년 건설을
시작했으며, 9년의 건축 기간을 거쳐 1566년 완공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구간의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였으며, 석재만 이용해
만들어진 거대한 아치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건축 기술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리의 폭은 4m, 길이는 30m이며, 네레트바 강에서 터의 높이는 약 24m입니다.
유럽을 휩쓴 여러 번의 전쟁 속에서도 건재했던 스타리 모스트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복구되었으며,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스타리 모스트의 명물 중 하나는 매년 7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벌어지는 다이빙 대회로 네레트바 강은
유속이 빠르고 수온이 상당히 찬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숙련된 다이버가 아니면 스타리 모스트에서
쉽게 다이빙을 하기 어렵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무슬림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터키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돌로 장식된 바닥과 기념품 가게들이 상당히 인상적이므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폭우로 2시간정도가 지체가 된 탓에 모스타르에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여
어두운 초저녁에 스타리모스트를 돌아보게 되었지만 이게 저는 더 전화위복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정상적인 여행시간대였다면 환한 대낮에 이 곳을 돌아보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모스타르의
스타리 모스트를 이른 초저녁에 돌아 본다는 것도 나름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 출입문전경
스타리모스트 다리에서 바라다 본 모스크
스타리 모스트에서 바라다 본 하류의 모스타르 다리
스타리 모스트 다리에서 바라다 본 상류쪽 모스크 전경으로 이 다리 모스크
위쪽에 사진촬영하기 좋은 곳이 있습니다. (지도의 1번 )
스타리모스트 다리위에서의 안사람
다리 주변의 레스토랑과 숙박 시설들
스타리 모스트 안내판
줌으로 당겨 본 스타리 모스트 다리 건너편 강변의 상점들
다리 건너편 이슬람 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골목 전경들
대다수 관광객들의 스타리모스트 사진촬영장소
상류쪽에서 바라다 본 스타리 모스트 전경으로 하단부 네레트바 강변 돌출부로 내려가는 길은
다리 건너편 동유럽 레스토랑 사거리쪽에서 내려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진촬영의 명소 지도상 2번)
이슬람지역의 골목에서 군것질을 하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젊은 처자들
이슬람지역의 어두운 골목 상가들
모스크 위쪽 지도상 1번 위치에서 앵글에 담아 본 스타리 모스트
모스크 근처 강변에서 바라다 본 네레트바강 건너편의 천주교 성당 전경으로
근처에 유료 주차장이 있습니다.
모스크 전경으로 이 모스크는 지도상 1번 강변쪽 전망대에서는 바라다 보이나
모스크로 진입하는 출입문은 안쪽 골목길에 있습니다.
어두웠던 탓에 모스크 출입구를 못찾아 헤메이는.....ㅋ
모스크 내부 전경
모스크 내부전경
1617년에 세워진 오래된 모스크로 골목길 상점가에 있습니다.
기념품 판매도 다리 건너편인 현재 머무는 쪽 이슬람 지역 골목과 강건너편인 반대편
세르비아 정교쪽 골목 지역은 서로 달라보입니다.
스타리 모스트 건너편인 이쪽은 아랍 냄새가 나는 기념품들이
좌판에 많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창고 같아 보이는 골목안의 문닫은 상점들
다시 스타리 모스트를 건너 세르비아 정교 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넘어 갑니다.
다리 옆 레스토랑위에서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을 촬영하는 유럽여행객에게
제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제게 손을 들어 흔들며 웃어줍니다.
역시 앵글에 무엇을 담는다는 취미는 서로 공통분모이다보니 서로 통한다는 생각이.....ㅎ
SADRVAN(동유럽) 레스토랑 전경
동유럽레스토랑을 낀 어두운 골목길로 내려 온 스타리 모스트 다리 밑 강변
스타리 모스트가 네라트바강에 어린 반영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서부에 위치한 모스타르에는 스타리 모스트라는 다리가 있는데
"오래된 다리", "다리의 파수꾼"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네라트바 강이 흐르는 모스타르는 투박한 흰색 건물들과 잔잔히 흐르는 강, 짙푸른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소박한 그림을 보는 기분이 듭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는 아치형 석조로 이루어진 곳으로 옛 도시의 다리라 불리는데
1566년에 건설된 스타리 모스트 다리는 길이 30m, 폭 5m 규모로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이기도 했습니다.
백색 계단을 오르면 다리 입구가 나오고 이 입구를 지나면
모스타르의 정취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볕이 뜨거운 여름엔 이곳에서 네라트바 강 밑으로 다이빙을 하는 사람을 종종 목격할 수 있으며
다리에 올라서서 보는 모스타르의 경관은 여행객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아마 환한 대 낮에 이 곳 스타리 모스트를 찾았다면 흔한 풍경사진 하나 건졌겠지만, 지금은 어두운
초저녁이다보니 이런 반영이 어린 스타리 모스트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ㅎ
이래서 여행은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되는 대로 받아 들이고 즐겨야하는 모양입니다.
※ 사실 이 위치보다는 네바라트강 건너편의 위 사진 작은 하천 반대편의 돌출부가
더 포인트 같아 보였는데 물이 많은 탓에 건너가기가 어려운 ....ㅎ
상류에서 바라다 본 스타리 모스트(※참고자료)
※네라트바강이 만수위일 때의 사진같아 보이는데 이 위치는 제가 내려가 찍은 위치보다는
작은 하천 건너편이란 생각인데 위 사진에서 보듯이 하단부 돌출부가 좋아 보였습니다.
스타리모스트 다리위에서 네라트바강 하류로 다이빙하는 사람들(※참고자료)
네라트바 강을 감싸는 백색의 건축물들과 모스타르를 감싸는
높은 산맥이 인상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민속의상을 입고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SADRVAN RESTORAN(동유럽식당)의 아름다운 미녀
제가 밝은 곳에서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포즈를
잡아주는 친절한 마음씨가 낮선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오늘 이 곳에서 저녁식사라도 하고 호텔로 향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우리 일정상으론
치트뤀으로 향하여 그 곳 호텔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것으로 되어 있는 일정 인지라
아쉽기만 합니다.
TURKISH HAMMAM MUSEUM의 야경으로 높은 첨탑을 지닌 박물관 전경
스타리 모스트를 진입하는 골목길 상점 처마밑에서 내리는 가랑비를 피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슬람 처녀로 사진을 찍어도 좋겠냐는 제 말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이런 국민들을 지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인데 이런 국민들의 고운 심성을 모두 망각하고
내전에 휩싸여 20만명이라는 인명이 살상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벌써 어둠은 깊어만 갑니다.
이제 이 곳을 떠나 오늘 저녁에 묵을 숙소인 치트룩으로 향합니다.
그 곳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내일은 오전에 메주고리에를 돌아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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