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23. 08:36ㆍ나의 이야기
고리 스탈린박물관 외부에 전시되어 있는 스탈린 전용 열차 전경
스탈린 박물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생가 모형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은 러시아의 정치가, 공산주의 운동가 · 노동운동가이자
소비에트연방의 군인·정치인·작가·시인, 언론인으로 1924.1.21부터 1953.3.5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지아 출신으로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를 꿈꿨으나,
공산주의 혁명 사상에 감화되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공산주의 운동가·
노동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1924.4.3부터 1953.3.5 까지는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을 지냈고 1941.5.6부터 1945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총리를 지내고 1945년 다시 총리에 재선되었으며 1941.7.19 부터
1947.3.3 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국방상을 겸하였습니다.
1945.6.27 부터 1953.3.5 까지는 소련군 대원수였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전인 1939년에는 나치독일과의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었는데 독일이
1941년 침공하여 발발한 독소전쟁 초기에는 제대로 된 군사정책을 발휘하지 못하여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위협받았으나 모스크바 공방전 , 스탈린그라드 전투 , 쿠르크스
전투를 계기로 전세를 역전시켜, 결국 독일군의 항복과 함께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정적 숙청과 동지들마저 반혁명 혐의로 숙청하여 그의 자위를 확고히 했으며
경제발전과 계속된 승전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철저히 우상화되었으나 죽음 이후, 니키타 흐루초프에
의해 강력한 비판을 받고 격하당했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공산주의 변질과
정적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로 평가되었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사람들이 삶이 어려워지고 국가 위상이 곤두박침에 따라
잠시 스탈린을 그리워하는 여론이 높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집권 이전에는 "선생님"이라는 애칭이 있었으나, 집권기간 중 스탈린은 '만능의 천재', '빛나는 태양',
'삶의 지주', '위대한 조직자',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선생이며 친구'로서 찬양을 받았고,
한때는 러시아 정교회의 부주교로부터 공공연히 '우리의 아버지'로도 불렸습니다.
사후에는 공산주의를 변질시킨 독재자로 재평가받고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그의 수많은 가명 중 하나인 "스탈린'이라는 가명은 "강철"을 뜻하며, 트빌리시 신학교 시절의
필명으로 쓰던 것이 굳어져서 본명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의 본래 이름은 조지아어로 이오세브 베사리오니스 제 주가슈빌리이며,
소소는 그의 초명인 동시에 애칭이었습니다.
스탈린의 생가 위로 건축물을 덮어 세워 생가를 보존하고 있는 전경
알콜중독자에 술주정꾼인 아버지 베사리온을 두었던 그는 어린 시절
무자비한 구타, 폭행을 겪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 베사리온은 불같은 성격이었으며 경제적으로 무능력하였는데 베사리온은 구두 장사가
잘되지 않자 알콜중독에 걸려 계속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어머니 에카테리네는 아버지 베사리온에게 수시로 폭행당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분개한 스탈린은 아버지에게 대들며 칼을 던졌다고 딸 스베틀라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 아버지의 보복을 두려워 겁을 먹었던 스탈린은 아버지의 화가
풀릴 때까지 이웃집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사실 생가라고는 하지만 이 집마져도 자가가 아닌 셋집으로 이 집의 방 한칸과 구두수선공이었던
아버지가 구두를 제작하던 지하실 공간이 생활 공간의 전부였다고 하니 스탈린의 어린 시절은
아주 불행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탈린의 아버지가 구두 수선을 하던 지하 창고 전경으로 철문으로 닫혀 있음
측면 쪽창으로 바라다 본 스탈린의 생가 생활공간
스탈린은 소련 붕괴 이후에도 현재 러시아에서는 그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부정적 평가보다 높으며
그의 고향 조지아에서도 국가적, 민족적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조지아의 역사 교과서는 스탈린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을 종식시키고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인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탓에 스탈린은 세계 역사상 극단적인 양면을 지닌 지도자로 손꼽히는데 그는 분명 2류
강대국 취급받던 소련을 유사이래 최대의 침략을 격퇴하고 항복을 받아내어 초강대국으로
도약시킨 지도자 였지만, 동시에 인민을 학대하고 수많은 자국민을 학살한 전제 권력자
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사를 통틀어서도 이 정도로 극단적인 공과가 병존하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암튼 제 생각에는 조지아 변방 고리출신이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의 권력에 올라 오랜 기간을
철권 통치를 한 것으로 미뤄 짐작할 때 그 것이 좋은 일이었지 나쁜 일이 었던지 간에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에 대하여서는 이의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생가를 돌아보고 나서 스탈린박물관쪽으로 나가서 전용열차쪽으로 향합니다.
스탈린박물관 망루탑에 펄럭이는 조지아국기
러시아 언어로 FA3878 이란 표식이 있는 스탈린의 전용 열차로
마치 이 표기에서는 한문의 가운데 중자 같아 보이는.....ㅎ
전용열차 출입문에서
이번 코카서스 여행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
소비에트 연방시절의 훈장이나 작은 기념품들을 파는 노점상
박물관 직원들만 박물관에 주차를 할 수 있다보니 투어 차량들은
박물관 외곽 공터에 주차를 시킬 수 밖엔 없습니다.
이 박물관에 주차공간이 혐소해서인지는 잘모르겠지만 이런 모든 전경들이 아직도 사회주의적 색채가
남아 있기에 찾아 오는 관광객들 보다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우선시하는 모습으로......
도로변 상점가 주차장에 주차된 투어 차량전경
상점가 벽면에 붙여진 사진으로 고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우프리스치케
철기시대 동굴도시 유적지 전경 입니다.
이번 투어 일정에서는 제외된 곳이었는데 저는 흥미로운 곳이라서 가보고 싶었던 생각이.....ㅎ
이제 다시 투어 차량으로 아나누리로 1시간30여분을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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