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에 물들어 가는 연천 숭의전(2018.10.16)

2018. 10. 21. 20:19나의 이야기












가을 빛으로 물들어 가는 연천 숭의전 전경


고교동창 절친들 11인 모임에서 가을나들이로 파주와 연천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행사를 진행한 절친이 두지리 근처에서 부대장으로 군생활을 한 탓에 잘아는 매운탕집이

 있다고하여 그 곳에서 점심을 우리들에게 대접하기위한 나들이였지만, 가는 김에 근처의

아름다운 곳들을 탐방하며 임진강의 가을 빛에 젖어보았습니다.  
















평화누리길 안내판

















평화누리길 11코스(임진적별길)인 숭의전



평화누리길은 DMZ 접경지역인 김포시, 파주시, 연천군, 고양시를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 걷기 길로

 연천구간은 총 3코스로 나뉘는데 둘째 길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고려 멸망의 한이 서린 '썩은 소의 전설'을 따라 걷는 '숭의전 둘레길'과 '고구려 보루 숲길'로

 다시 구분되는 연천구간 둘째 길은 황홀한 자연경관을 자랑합니다.


숭의전지 옆으로 아미산 언덕을 오르며 평화누리길이 시작되고, 길이 1.5㎞에 이르는 동이리 주상절리는

가을 빛에 물들어가는 나무 잎새들의 고운 향연들과 어우러져 멋진 장관을 연출합니다.
















숭의전 초입의 어수정 우물전경


















연천 숭의전 안내판


















연천 숭의전 배치도




















앙암재 전경


 앙암재는 제례때 사용하는 향,축,패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 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이랍니다. 


















숭의전 (崇義殿 사적 제223호) 전경 


숭의전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습니다.


1397년(태조 6)에 태조의 명으로 묘(廟)를 세우고, 1399년(정종 1)에는 고려 태조와 혜종ㆍ정종ㆍ광종ㆍ

경종ㆍ선종ㆍ목종ㆍ현종의 7왕을 제사지내고, 1423년(세종 5)과 1452년(문종 2)에 중건하였습니다.


문종은 이곳을 ‘숭의전’이라 이름짓고, 이와 함께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외 열다섯 사람을

 제사지내도록 하였으며,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중종은 1512년(중종 7) 여름에 작은 소를 잡아 제사지내게 했고, 선조 때는 고려조 왕씨(王氏) 후예로

 참봉을 제수하여 전각(殿閣)의 수호와 제사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영조는 1731년(영조 7) 승지를 이곳에 보내 제사지냈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이 건물을 고쳐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사(使, 종3품), 수(守, 종4품), 영(令, 종5품), 감(監, 종6품), 여릉참봉(麗陵參奉, 종9품)의

 관리를 1인씩 두었으나 뒤에 와서 사와 수는 없앴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였으나 6ㆍ25로 전각이 소실되었습니다.


그 뒤 1973년 왕씨 후손이 정전을 복구하였고, 국비 및 지방보조로 1975년 2월에는 배신청

 13평을, 1976년 1월에는 이안청 8.7평, 이듬해 2월에는 삼문(三門)을 신축하였습니다.


이 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6년)에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건립을 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배신청 전경으로 고려의 16공신(복지겸,홍유,신숭겸,유금필,배현경,서희,강감찬,

윤관,김부식,김취려,조충,김방경,안우,이방실,김득배,정몽주)을 모신 사당


















이안청 전경


















숭의전 정전 내부 전경으로 태조 왕건의 위패와 영정

 그리고 현종,문종,원종의 위패를 모심




























썩은소는 미산면 아미리(峨嵋里) 숭의전  옆 임진강변에 있는 소로 이 곳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등극하면서 고려

왕족인 왕씨(王氏)를 멸족시키려 하자 왕씨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갖가지 인연에 따라
변성(變姓)을 해서 생명을 보존하고자, 전씨(田氏, 全氏)·김씨(金氏)·옥씨(玉氏)·
금씨(琴氏)·박씨(朴氏) 등으로 변성을 하고 피신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 뜻 있는 왕씨 몇 사람이 모여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모두 이렇게 변성을 하더라도 우리 조상님은 한 분이니, 왕건 태조(王建太祖)

할아버지의 신주는 우리들이 안전한 곳에 편안하게 모시도록 해 드립시다.” 

 
하여, 돌로 배를 만들어 송도에 안치된 왕건의 신위를 그 돌배에 모신 후 송도 앞 예성강에

띄우고 신위에 고하기를  “이곳 송도 땅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느니 차라리 이 돌배를 타시고

안전한 곳을 찾아 피신합니다.란 말씀을 드리고는 그 돌배는 임진강과 합류 지점에 도달하여

 임진강을 역류하여 강원도 철원과 경계인 황해도 안악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하여, 지금의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 어느 벼랑 밑에 멈추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신위를 모신 돌배를 차마 홀로 떠나 보낼 수 없어 이 돌배를 같이 타고 있던 왕씨 몇 사람들은,
“이 곳을 피신 장소로 태조 할아버지께서 정하신 듯하니, 이 곳에 모시도록 합시다.”
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고 배에서 내리면서 쇠로 만든 닷줄을 매어 놓고, 근처에 사당을

지을 명소를 물색하여 정한 후 강가에 나가 보니, 하룻밤 사이에 쇠닷줄이 썩어 끊어지
고 돌배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었습니다.


급히 하류 쪽으로 가서 찾아보니 그 곳에서 4㎞쯤 떨어진 곳의 ‘누에머리[蠶頭]’라는 절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아니하였는데 이에 그곳 절벽 위에다 사당을 지어 태조 왕건의 신위를 모시고

 ‘숭의전(崇義殿)’이라고 이름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 곳이 지금의 미산면 아미리에 있는 숭의전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도 청명한 날에는 누에머리 절벽 밑에 가라앉은 돌배가 보인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며,

썩은소의 유래는 하룻밤 사이에 쇠닷줄이 썩었다고 하여 ‘썩은쇠’라고 불리던 것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말소리가 변하여, 오늘날에는 ‘썩은소‘로 불리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썩은소라 불리워지는 장소 전경으로 아쉽게도 나무들이 가려져 있는 탓에 

 임진강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엔 부적합한 탓에......ㅜㅜ


















전망대 아래의 잡목들을 좀 제거하여 시야가 확보되면 좋으련만......































숭의전 출입구쪽의 임진강 전경